마이아트뮤지엄은 언제나 옳다
도심 속의 작은 뮤지엄에서 어쩜 이리도 큰 기획으로 작품을 모셔와 전시하는지 뮤지엄 대표의 마인드가 존경스럽다
내 취향에 맞는 기획을 해 주는 이 뮤지엄이 고마워 새 기획이 발표되면 언제나 달려가게 된다
때론 한권의 책이 강한 욕망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트디렉터 이소영의 블로그를 우연히 접하고 그녀가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은 아카이브에 놀라
즐겨찾기에 저장해 놓고 많은 그림이야기들을 접했다
그리고 그녀가 출간한 책은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 읽었다
그중 칼 라르손의 일생을 다룬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를 읽고 욕망이 강해졌다
칼 라르손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직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마이아트뮤지엄이 내 열망에 답을 주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데려온 것이다
정말 잘 내어주지 않는 작품까지 설득해서 데려왔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전시인지....
그야말로 잘 접하기 어려운 북유럽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실물을 보고 싶어 했던 칼 라르손이나 함메르쇠이의 작품을 말이다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목소리 정우철 도슨트 시간이다
그야말로 도슨트계의 아이돌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아 이 시간에 맞춰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금요일 3시경에 도착했기에 한산할 줄 알았다가 깜놀
나도 구름관중에 쓸려 다니며 듣는다
내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라 그다지 신선한 충격은 없었지만 조리 있는 말솜씨가 인기를 끌만 하다
<새벽> <정오> <황혼> <아늑한 빛> 이렇게 4개의 섹션으로 구분한 전시인데
각 섹션마다 벽 페인트 색을 달리해 전시장의 멋을 더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 측에서 직접 꼼꼼히 칠하고 조명설치까지 세밀하게 챙겼다고 하니
그들이 작품을 대하는 경건함이 느껴진다
햇빛이 부족한 북유럽 화가들이 예술의 다양한 장르로 실험적인 화풍이 존재했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들도 빛을 이용한 그림을 접하게 된다
이른바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추운 실외에서의 작업은 상상도 못 하던 그들이 빛의 인상을 그려내는 화풍에 감탄하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휴고 삼손의 <이삭 줍는 소녀>는 아마도 바르비종파인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그림이다
칼 스콘베르그의 <베니스 대운하>라는 작품은
사진에 이 분위기가 다 잡히질 않아 안타까울 정도로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베니스의 모습인데 이 거대한 건물을 담아낸 구조도 아름답지만
대리석 바닥의 촉촉한 물기를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는지 감탄이 나온다
내가 베니스의 운하에서 우산을 들고 있는 느낌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안나 보베르크의 <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프랑스에서 인상파의 그림을 접한 많은 북유럽화가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미술활동을 하던 곳이 스카겐 지역이다
스카겐은 덴마크의 저지대에 위치한 곳인데 화가들이 이곳에 몰려든 이유는 바로 프랑스에서 느꼈던 햇살을 그나마 담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외광화풍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던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몰려들어 예술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곳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북유럽의 빛'이라 불리며 북유럽 특유의 회화로 여겨졌다
칼노르드스트림의 <세른의 호가밸리>
이 작품은 그야말로 북유럽여행 때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으로 늘 바라보던 풍경이다
내가 달리는 버스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인 양 느껴져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이번 전시회에서 또 주목할 점은 여성들에게 일어난 혁신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붓을 들 기회조차 갖지 못하던 여성들이 프랑스로 떠나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돌아와 살롱전에 출품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활동이 열리기 시작한다
베르타 베그만의 <정원에 있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라는 작품은
마치 인상파 화가 모리조 혹은 마리 카셋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인상파 화가 초대전에 유일하게 작품을 출품했던 여성화가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며 수많은 사랑스런 작품을 남긴 모리조, 마리 카셋의 삶과 베르타베그만의 삶이 느껴진다
디테일한 레이스나 빛을 받은 정원의 꽃이 볼 수록 아름답다
자세히 허리를 굽히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행위는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의 특권이 아닌가 싶다
화가의 붓터치 하나하나를 눈을 쫓아가는 행복
북유럽 여성화가의 활약에 한나 파울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인 <아침식사 시간>
그림 안에 쏟아진 빛에서 난 점심시간이 아닐까 했는데 아침이라고 한다
스톡홀름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한나 파울리는 파리에서 국제 미술학도들과 교류하여 식견을 넓히고
자국의 소녀들이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림 예술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미술수업을 제공했다고 하니
여성의 권위를 올리기 위해 노력한 시대의 선구자라고 생각된다
순간의 빛을 담아내는 인상파 화풍이 강렬하다
이 테이블보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 듯하여 그림을 감상하며 살짝 실눈이 떠질 정도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나뭇잎 그림자를 이리도 멋지게 표현하다니
당시 여성들의 그림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비평가들은 이 테이블보의 어두운 부분은
화가가 붓에 묻은 물감을 닦아낸 것이라고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고 하니.....
북유럽화가 중 내가 칼 라르손 못지않게 많이 접한 화가가 바로 함메르쇠이다
함메르쇠이의 <책 읽는 여인이 있는 실내풍경>
함메르쇠이의 작품은 책에서 많이 접해봤는데
인물을 그렸음에도 내 눈엔 정물화처럼 느껴졌었다
정적이며 어둑신한 실내에 인물을 담은 그의 그림은 마치 귀한 빛을 한 줌 얻어와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내 눈길을 길게 끈 이 작품은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의 <아침식사 중에>라는 작품이다
아침에 짠딸 출근시키고 나면 배웅할 때 들고 들어온 신문을 식탁에 펼쳐놓고 읽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가끔 저 그림 속의 커피잔처럼 실제 커피를 마시며 읽기도 한다
이 제목을 '아침식사 중에' 보다는 '아침식사를 마치고'로 해야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식사중에 저렇게 신문을 읽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 실물영접의 기쁨을 누린 칼 라르손의 작품을 만날 시간이다
칼 라르손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카린이란 금수저여인을 만나 반전의 인생을 살게 되며 말끔히 버리게 된다
그리고 아내 카린의 부친이 제공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작품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칼 라르손의 <로코코를 위한 습작>
이번에 들여온 칼 라르손의 작품 중 유화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작품 외엔 수채화만 들여왔는데 수채화를 보호하기 위해 작품방의 조도까지 낮춘 스웨덴 국립미술관의 세심함에
우린 작품을 존중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작품감상을 한다
이 꽃무늬 드레스를 보며 나와 짠딸은 동시에
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봄의 여신이 입고 있는 드레스와 여신이 비너스에 입혀주기 위해 들고 있던 드레스를 단번에 떠 올렸다
그래서 자꾸만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런데 인상파작품은 가까이 보면 추상, 멀리서 보면 구상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서 봐야 더 멋진데 붓 터치를 보고 싶어 자꾸만 고개를 작품 앞으로 내밀게 된다
칼 라르손의 <저장고에서>
칼 라르손 <책 읽는 리스베스>
칼 라르손 < 전원>
난 솔직히 저 느끼하게 쳐다보는 저 남자만 없었으면 그림이 더 멋지겠는 걸 했다
그런데 저 남자가 없었으면 여인이 휘늘어진 나뭇가지에 올라앉지 못했겠지?
저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말이다
굿즈샵에 들어오니 이소영 아트디렉터의 책이 개정판으로 나와있다
칼 라르손의 많은 작품이 담겨 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검색해서 보지 뭐 하는 마음에 패스~
칼 라르손의 작품도 좋지만 스웨덴 아카데미 출신의 화가였던 아내 카린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난 사실 카린이 그림을 포기하고 아이를 8명이나 낳아 기르는 주부로 살아간 점이 못내 안타까웠는데
사실 카린은 그녀의 예술혼을 집안 인테리어에 쏟아붓고 살았다
칼 라르손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그녀의 직물 디자인이나 가구 디자인의 솜씨는 훗날 이케아 창립자에게 영감을 주어
이케아 가구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가슴에 가장 많이 품고 다닌 책은 성경과 더불어
따뜻한 집과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칼 라르손의 화보책이었다고 한다
사실 칼 라르손이 그린 그림은 모두 아내 카린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림 속의 가구, 커튼, 식탁보, 화초 등 모든 것들이 카린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