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북쪽을 향한 우리 집 현관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경치가 찬란하다. 가을의 참나무 황갈색 단풍과 진초록의 소나무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서 벌써 싱그러운 봄 경치를 바라본다. 가을의 단풍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어쩐지 사라져가는 모습이라 그런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그러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 산은 약동하는 생명의 싱그러운 기운이 넘쳐흘러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뒷산은 바위산이라 봉우리 위쪽은 항상 푸른 소나무가 차지하여 변함이 없지만 아래쪽 기슭으로는 아카시아와 참나무들이 차지하여 지금 한참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다. 멀지 않은 날에 아카시아 흰 꽃의 향기가 우리 집 현관을 통해 스며들 것이다. 내가 30여 년 전에 군인들을 위해 지은 수락산 기슭의 이 아파트에 입주했었다. 처음에는 10여명의 동기생이 입주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기생들이 속속 강남으로 분당으로 수지로 이사가버렸다. 나중에는 경제적으로 가장 미약한 나와 또 한 명의 동기생만 남아 지금까지 이곳에 버티고 산다.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명산을 떠나지 못해 계속 이곳에 살아왔다. 처음에는 동기생들이 다 떠나가고 나만 남는 것이 슬펐지만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활동력이 떨어지면 차를 타고 몇 십분 걸리는 산에 가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 현관을 열면 뒷산은 오라고 손짓하는 듯해서 바로 배낭을 지고 산으로 갈 수 있다.
70대 후반이 되니 걸음이 늦어져 젊은이들을 따라 장거리 산행은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하루의 시간을 내서 북한산 도봉산은 물론 수원의 광교산 동두천의 소요산 마차산 강촌의 검봉산 봉화산 삼악산 가평의 연인산 명지산에도 혼자 자주 갔었다. 80세 까지는 걸으면 걸을수록 다리에 힘이 축척된다. 이런 깊은 산의 7,8백고지도 순식간에 올라갔다 내려와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점심을 먹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커피를 마시며 몇 시간을 고요히 보내다가 시골버스 막차를 타고 나와 낭만적인 기차여행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먼 곳으로 가는 것은 깊은 산의 정적을 느끼고 새로운 경치를 보고 낫선 곳의 풍물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올 봄에도 멀리는 못가더라도 하루의 날을 잡아 북한산이나 도봉산에는 꼭 오르고 싶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나날의 시간이 아깝다. 남이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내가 하는 것을 즐기는 일로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조금만 무얼 하다보면 점심때가 되고 점심을 먹고 나면 하루의 일과인 산이나 헬스장으로 가야한다. 개미 채 바퀴 돌 듯 하는 나의 이 생활이 남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습관이 돼서 그런지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즐겁다. 나는 타인으로부터 아무 간섭받지 않은 나만의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나의 성격은 심심함을 참지 못해 친구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자와는 다른 것 같다. 나는 늘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다 가면 가장 행복한 생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