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르네쌍스를 꿈꾸었던 정조대왕이 당신의 원대한 포부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1800년 6월 28일 비운의 승하를 한다.
정조대왕의 왕위를 이어서 계승한 순조는 당시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며, 왕실의 관례대로 증조모뻘이 되는 정순왕후가 수렴첨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이듬해 정조대왕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던 대부분의 남인계 학자들을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일대숙청을 일으키니 이를 역사에서는 신유옥사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신유옥사가 일어난지 4년이후에 정순왕후는 임종을 하게 되니 이때가 1805년인 것이다.
순조는 사실 정조대왕이 승하한 해에 정식으로 왕세자로 책봉이 되었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왕세자 수업을 받으려고 하는 순간에 청천벽력같은 부왕의 승하를 겪게 되며,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보위에 오르게 되는 어찌보면 매우 불행한 왕이었다.
이러한 순조에게도 하나의 희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유일한 외아들인 효명세자인데, 바로 순조는 자신의 못다 이룬 부국강병의 꿈을 효명세자가 이어 받기를 바랐으며, 이는 부왕인 정조대왕의 유지이기도 하였다.
효명세자는 1809년생으로서 이러한 부왕의 깊은 뜻을 잘 이어받아 임종하기 3년전인 1827년에 이미 대리청정을 수행할 정도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왕세자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세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있는 순조로서는 얼마나 속으로 대견하였겠는가 !
그러나 하늘의 깊은 뜻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부인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였으며, 부왕의 꿈을 이루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효명세자가 통탄스럽게도 불과 22세라는 한창 꽃필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임종을 하니 어찌하여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
이러한 세자의 임종을 접한 부왕인 순조의 충격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효명세자를 통하여 처가인 안동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던 순조의 꿈이 뜻밖의 세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한을 품은채 순조는 결국 1834년 보령 45세에 승하하게 되니 앞으로 조선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
순조의 뒤를 이어서 보위에 오른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자 젊은 나이에 임종한 효명세자의 아들이 되는데, 순조가 승하할 당시 불과 8세라는 어린 나이였기에 이번에는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첨정을 하게 된다.
순원왕후는 바로 당시 안동김씨 가문의 핵심인물인 김조순의 딸이기도 하다.
이렇게 8세라는 어린 보령에 보위에 오른 헌종은 15년을 재위하다가 불과 23세라는 젊은 보령에 왕으로서의 권위도 거의 가지지 못한채 승하하게 되니 그야말로 불행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윽고 헌종의 뒤를 이어서 보위에 오르게 되는 왕은 영조의 현손이며, 정조대왕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인 강화도령 출신인데, 바로 조선왕조 25대왕인 철종이 되는 것이다.
사실 철종은 강화도에서 어린 시절부터 거의 농부로 자랐기 때문에 학문하고는 거리가 먼 왕족이었는데, 안동김씨 가문이 그야말로 자기들에게 편한 꼭두각시 같은 왕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임금이니, 엄밀히 말하면 왕실의 법도와는 거리가 있는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철종이 즉위한 해인 1849년에 보령이 19세였는데, 이로부터 14년을 재위하다가 1863년에 보령 33세로 승하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철종의 유일한 혈육은 영혜옹주이었기에 보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은신군의 손자인 흥선대원군과 당시 왕실의 최고어른인 신정왕후의 합의에 의하여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이 효명세자가 추존이 된 익종의 아들로 입적이 되어 익성군에 봉하면서 철종에 이어서 조선왕조 26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니 바로 이가 고종황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