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동상 (출처: 정읍시 공공저작물 개방)
동학과 관련하여 정읍에서는 매년 5월 행사 하나를 개최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제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56회를 맞은 이 행사는 좀 더 특별했다. 정부는 2019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여 별개로 행사를 치러왔다. 이번 2023년에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를 정읍시에서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제와 함께 거행했다는 점에 의미가 새롭다.
행사 이틀 전에는 정읍시 주최의 ‘제2회 동학농민혁명 국제컨퍼런스 세계혁명도시 연대회의’가 있었다. 근대 인권 혁명이 있었던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독일, 중국, 일본 5개국의 6개 도시가 참여해 ‘혁명과 사람’이라는 주제를 두고 토론의 장을 열었다. 회의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세계와 공유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올해 동학농민혁명기념제의 주제어는 ‘피어나는 녹두꽃, 자라나는 평화’이다. 자유와 평등, 인간 존중이라는 동학혁명 정신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속에 지속 발전케 한다는 뜻이다. 행사는 문화체육부 1차관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동학농민군의 위패를 모신 구민사(救民祠)의 갑오선열 제례, 이름 없는 동학군의 넋을 기린 무명동학농민군 위령제, 동학농민혁명대상 시상 등의 공식 행사로 이루어졌다. 이어진 특별기획 행사로 정읍지역 학생들과 시립국악단원 등 511명이 펼치는 퍼포먼스 ‘동학-그날의 함성’은 큰 볼거리와 감동을 주었다.
▲ 구민사 갑오선열 제례
퍼포먼스는 황토현 전투 당시 총칼 대신 북과 꽹과리를 들고 전장의 선봉에 선 재인부대(才人部隊: 광대들로 구성된 동학군 부대)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빗발치는 총탄 가운데 죽음의 순간까지 풍악을 울리며 동학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천인(賤人)으로 박대받던 이들의 고통이 전장의 풍악 마디마디에 깊은 한을 새겼을 것이다. 풍악 소리와 함께 쓰러져간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1960년대까지 동학혁명은 반란을 뜻하는 ‘동학란’으로 역사 교과서에 기록되다가 1970년대가 되어 비로소 ‘동학혁명’으로 바뀌었다. 이는 동학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반란의 오명을 벗고 국가가 기념하는 혁명으로, 이러한 극적인 반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민중 주체적인 의식으로 역사 이해에 다가서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역사 인식이 지닌 문제를 자각한 지금의 발전적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로써 2019년 정부가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기념일 제정을 확정함으로써 한국사에 묻혀있던 민족의 유산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 하늘이 되다’, ‘그날의 위대한 전사들에게 바치는 헌사’. 2019년 4월 방영되었던 드라마 ‘녹두꽃’의 포스터 문구이다. 숭고한 민족의 역사, 사람이면 누구나 하늘처럼 존중받고 자유와 평등 가운데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피울음을 쏟았던 그들을 지금의 대중은 ‘반란군’이 아닌 ‘위대한 전사’라 이른다.
5월 18일, 반갑게도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키로 최종 승인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기념제 행사 얼마 후 들려온 희소식이다.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도인으로서 축하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소식 가운데 한편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인근에 자리한 상제님 생가터를 떠올리게 된다. 생가터는 2021년에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된 바 있지만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 터는 하늘과 땅이 새롭게 깨어나고 인류의 운명이 새로운 길을 찾은 곳이며, 이를 발굴하고 귀중한 인류사의 유산으로 보존할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기 때문이다. 제56회 동학농민혁명기념제를 바라보며 상제님의 대순하신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빛으로 떠올라 참 동학이 펼쳐질 그날을 발원해본다.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권지 1장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