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악산길 산책로 트레킹 #2
11:55 스카이웨이2교
북악산 2번 출입문 건너편의 북악 팔각정 서쪽방면 등로인 북악산길 산책로 이정표
11:56 북악산 2번 출입문
북악산 정상의 조망
인왕산 정상의 조망
12:03 창의문 950m 갈림길 이정표
12:11 구 경계초소
북악산 및 인왕산, 청와대 외곽 경계를 담당하는 제1경비여단에서 사용하던 초소로
2006.4.1. 백악산 탐방로의 부분개방(숙정문 권역)되면서 부터 사용하지 않는 초소가 되었으며
2020 북악산이 확대개방되면서 탐방로 상의 일부 철책과 초소들의 재단장을 통해 기억으로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12:04 청운대 안내소(북악산 3번 출입문)
청운대 안내소에는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가능하다.
청운대 안내소에서 한양도성으로 오르는 데크계단
12:07 북악산 청운대 안내소 위의 쉼터
12:11 옛 군견 훈련장터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이 사용하던 곳으로 2020 철거 후 일부를 남겨 시민들이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12:14 옛 군견 훈련장터에서 조금 오르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난다.
가로 세로 60㎝의 성돌로 쌓은 성곽으로 이 구간은 약 200년 전인 순조 때 축성했다.
순조 때 축성한 구간은 성돌이 커 성곽이 튼튼하고 아름답다.
<청운대로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 보현봉>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 경계를 표시하고, 수도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됐다.
태조 5년인 1396년 한양을 안쪽에서 둘러싼 내사산인 백악, 낙산, 남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축성했다.
12:41 청운대(293m)
서울의 진산인 북쪽의 최 정상인 백운대(836m)를 본떠 청운대(293m)라는 이름을 붙였다.
북악산에서 경복궁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청운대 정상 표시석
북악산 성곽 탐방로 개방 이야기
1968년의 1.21 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2007년 4월 북악산 전 구간을 처음으로 개방하고 전체가 아닌 성곽길 탐방로로 출입을 제한하였으나
2020이후 현재와 같이 한양도성 북악산 성곽으로부터 북악스카이웨이 사이의 성곽 측면 탐방로가 개방되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
성을 쌓는 과정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이다.
한양도성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각자(14C)와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각자(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각자(18C 이후)로 나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각자성석이 290개 이상 남아 있다.
12:26 1.21 사태 소나무(총탄 흔적이 있는 나무)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일당은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김신조 등 북한군 31명은 1968년 1월 21일 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을 벌인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다.
이후 이 소나무의 이름은 ‘1·21 사태 소나무’로 불리게 되었고 15발의 총탄을 맞았는데도 소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북한에서 침투한 31명 중 29명은 사살되었고, 1명은 도주, 1명은 생포되었다.
생포된 1명인 김신조는 이후 우리나라로 귀순하여 신학을 전공한 뒤 목사가 되었다.
북악산 정상 갈림길(정상 2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