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이야기
야고 5,9-12; 마르 10,1-12 / 연중 제7주간 금요일; 2024.5.24.
오늘 복음의 상황은 제자들에 대한 교육을 일단락 지으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갈릴래아 지방을 떠나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셔서 일어난 일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 대한 명성이 그곳까지 퍼져 있었기 때문에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고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침의 주제는 늘 하시던 대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위기와 상관없이 바리사이들이 또 끼어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 하고 물은 것입니다.
질문 자체가 매우 고약합니다. 이혼 가능성 여부를 묻는 이 질문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따른 혼인 질서와는 상반되는 도발적 질문입니다. 이미 질문의 의도가 당신을 시험에 빠뜨리려는 것임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마르 10,3) 상황 구도가 올바르지 못할 때 이 구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프레임을 바꾸려는 잘못된 문제 제기에 대해서 올바른 프레임으로 되물음으로써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혼인에 대한 모세의 율법은, 일부일처제를 준수하는 현대 사회의 혼인 질서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선진적인 질서 규정이었는데, 다만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 불가피하게 이혼을 허락하지만 그녀가 재혼을 할 수 있도록 이혼장을 써 주고서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단서를 붙인 것뿐입니다. 기혼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조치였던 겁니다.
그런데 되물음을 받은 바리사이들은 이 단서 조항을 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마르 10,5)이라고 맞받아치신 다음, 창세기를 인용하여 혼인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6-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바리사이들은 모세도 허용한 이혼을 예수님께서 반대하실 경우 이를 모세의 권위에 대항했다는 빌미를 잡으려고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세법보다 더 근원적인 근거로써 조건부 이혼 허용 조항을 문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혼의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혼인한 부부가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해서 행복한 혼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더는 할 말이 없어 물러났습니다. 이로써 남녀의 결합은 하느님의 뜻이며, 자유의사로 혼인한 이상 이혼은 허용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이 둘의 결합을 혼인으로 축복하신 이상 부부의 화합으로 이룩한 가정은 하느님 나라 질서의 기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야고 5,11)는 야고보 사도의 말은 혼인한 부부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당사자들은 물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로 이룩되는 가정이 작은 세상이요 작은 천국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기본 질서입니다.
혼인에 관한 복음으로 더 어울리는 대목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이 이 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 기적으로 이 카나 고을에서 혼인하던 신랑과 신부도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혼인적령기에 접어든 젊은 남녀가 성적으로 서로 이끌리는 본성은 물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부부로 맺어진 이 남녀가 서로에 대한 헌신으로 바치는 희생이 포도주에 해당됩니다. 그 어떤 가정에서도 성적인 본성이 헌신적인 희생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부부도 일치되기 어렵고, 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행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에서 사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축복 기도는 바로 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혼인 예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약을 주고 받고 나서, 이 서약을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사제는 다음과 같은 축복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힘으로 만물을 창조하시어 우주의 기원을 마련하셨나이다. 사람을 주님의 모습대로 만드시며 남자에게 여자를 불가분의 내조자로 주셨나이다. 이로써 남녀가 더 이상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며 결코 갈릴 수 없음을 가르치셨나이다. 하느님께서는 부부의 인연을 숭고한 성사로 축성하심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결합을 미리 보여 주셨나이다. 하느님께서는 여자와 남자가 결합하여 이루는 가정에 복을 내리시고 이를 원죄의 책벌로도, 홍수의 심판으로도 거두지 않으셨나이다. 주님, 혼인으로 결합하여 주님의 강복을 청하는 이 부부를 자애로이 굽어보소서. 성령의 은총을 내리시고 주님의 사랑을 이들 마음에 부어 주시어 부부의 신의를 끝까지 지키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딸 ( )에게는 사랑과 평화의 은총을 성서에서 칭송하는 거룩한 부녀들을 언제나 본받아 살게 하소서. 남편은 아내를 진심으로 믿고 대등한 반려자로 여기며 영생의 은혜도 함께 누릴 것으로 알고 마땅히 존경하고 위해 주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이 부부가 언제나 신앙에 충실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성실한 혼인 생활로 모든 이에게 모범이 되고 복음의 힘을 입어 그리스도의 훌륭한 증인이 되게 하소서. 또한 덕망이 높은 부모가 되어 그 자손이 번영하고 함께 대대로 후손을 보며 장수를 누리다가 마침내 하늘나라의 영원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이상에서 인용한 혼인 축복 기도에 나타나듯이, 혼인한 부부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목숨을 바쳐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는 예수님께 대한 충실함으로 온 세상에 그분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 관계가 바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사랑의 원형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5,21-33에서 이 신비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성적인 매력이나 경제력 같은 조건을 혼인과 가정이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요소로 꼽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목표로 삼는 이 영적인 신비의 힘이 이 세속적 조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힘은 마치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세상의 악으로부터나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의 위협으로부터 부부와 자녀가 살아가는 가정을 보호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