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사월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쥔 양반 계시유?" 겨우 눈을 뜬 나는 대충 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서 계셨다.
"뉘신지 ?" 족히 여든은 되어 보이셨다. 잠이 덜 깬 나는 일단 안쪽으로
드시라 하고 영문을 몰라 뒷머리만 긁적였다.
할머니는 뜬금없이 고맙다며 불쑥 발을 내밀고는 흉터가 들어앉은 복사뼈를
만지셨다. 그제야 생각났다. 발을 덴 할머니를 인근 병원까지
태워다 드린 일, 그러고는 급히병원을 나오는 길에 근처 파출소에 들려,
진료가 끝나면 할머니를 꼭 좀 모셔다 달라던 부탁, "아. 할머니, 발
다 나으셨네요."
그러니까 2008년 삼월 말쯤이었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익산에 있는
한 대학으로 강의하러 가기 위해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마을 인근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웬 할머니만 덩그렇게 정류장 앞에 앉아 계셨다.
버스를 놓치신 게 틀림없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거둥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를 조심조심 태워 드리는데, 가장
먼저 할머니 발이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 안 보태고 탁구공만 한 물집이
방울 방울 잡혀 있었다. 묵은 때를 빼려고 빨래를 푹푹 삶던 솥단지를
들어 옮기다, 그만 발등에 덜퍼덕 엎으셨다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나오신 게 천만다행이었다. 물집이 터진 곳에서 투명한 고름이 질질
흘러내렸다.
환히 웃는 할머니 말에 의하면 경찰 둘이 진료가 끝나기 전부터 기다렸다
집까지 태워 주었단다. 덕분에 편히 집으로 오실 수 있었단다.
할머니는 비닐봉지를 내미셨다. 한 되박이나 될 성싶은 참깨였다. 혼자
산다는 할머니는 공짜로 차를 얻어 탄 어마어마한 신세(?)를 갚기 위해
일년 넘게 나를 물어물어 찾았다고 하셨다. 성도 이름도 모르니 '검은색
지프차' 와 비쩍 마른 젊은 남자' 라는 단서로 말이다.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참깨 차비' 를 끝까지 내미셨다.
대체 우리는 몇 가마니나 되는 참깨를 들쳐 메고 누군가의 집을 찾아 나서야
하나? 받은 참깨 한 봉지 들고 파출소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_____박성우 님/ 시인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