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성자
김맹선
나는 나를 비워 그릇이 된다
참새떼처럼 오가는 공사판 인부들의
허기진 하소연 듣고 비우는 귀로 살아왔다
쓴소리, 굽은 소리, 푸념 소리 모두 받아 흘려보낸 시간
손들이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한 끼의 위안이고 싶다
바닥을 보이는 빈 그릇으로만
허기진 속을 달려주는 위로이고 싶다
피곤과 시름의 시간을 달려주는 둥근 신앙이고 싶다
청국장 냄새 배인 빈 그릇으로 나는 씻기고 닦인다
삼십 년 땀 냄새가 이제는 허름해져 간다
나는 나를 온전히 내어주고
빈 그릇으로 충만해진다
술김에 누군가는 나를 비움의 성자라 부르지만
나는 한 끼의 거지
누군가의 아린 속을 풀어주기 위해
바닥까지 국물을 퍼주고 아무것도 없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충만한 성자
첫댓글 멋진 시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