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볼이 얼면 / 신복희
찬 바람이 불자 새색시의 볼이 빨갛다. 식구 모두가 모여 함께 저녁밥을 먹는데 시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신다.
“아범아, 어멈 얼굴이 왜 저러냐? 밤에 잘 때, 팔베개도 안하나?”
“예……”
아들은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고 며느리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다. 어른들은 며느리의 얼굴이 얼어서 빨갛게 터지면 그 책임은 남편인 아들에게 있다고 했다. 그것은 단지 팔베개를 안 한다고 나무라시는 게 아니라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아내를 돌봐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군불을 때던 온돌방은 방석만한 아랫목만 따끈할 뿐 언 몸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곳이 못된다. 종일 참바람 속에서 일한 탓에 얼어 버린 얼굴이 방안에 들어온다 해도 목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남편의 팔베개를 하고 자는 여인은 사정이 한층 달라진다. 팔베개는 메밀이나 솜으로 만든 보통 베개와는 달리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라 따뜻한 피가 심장이 울리는 율동에 따라 밤새도록 돌고 또 돌기 때문이다.
매일 밤 팔베개를 하면 따뜻한 체온으로 실재로 얼굴이 언 아내의 볼이 화샇게 풀릴 수 있다. 또는 남편이 아내에게 소홀하던 시이면 팔베개를 하고 자면서 다시 금실이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팔베개를 하려면 두 사람의 거리는 보다 가까워야 하고 그러는 가운데 부부의 정은 더욱 쌓일 것이다. 그 꾸지람은 인정 맣고 결험 많은 어른들의 일깨움이다. 철없는 자식들이 날마다 만나는 생경한 삶에, 부부가 살아가는 방법을 쉽게 훈도 하는 말이었다.
옛사람들은 열다섯, 열일곱에 혼인을 했다. 이금으로서는 어리지만 당시로는 성인의 나이이다. 다 자란 처녀가 혼인하면 전혀 낯선 가문에 법도에 적응해야 한다. 뿌리 뽑힌 나무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살면서도 할 일은 친정보다 더 많다. 이를테면 적진에서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나의 영역을 확실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 편이 없는 곳에서 내 자식이 탈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신뢰를 얻어 세력을 넓히고, 출가시킬 능력이 생길 때까지 힘을 키워야 한다.
며느리들은 수천 년 그런 역사를 사람으로 써 내려왔다. 그러기에 자리가 없는 남의 가문에서 고방 열쇠의 주인이 되고, 내 뼈가 그 선산에 묻힐 땅이 확보될 때까지 조용히, 그러나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은밀하게 자신의 영토를 넓혀 나가는 것이다.
그곳에 나서 자란 남편은, 조상이 살던 땅을 대물림하여 그대로 뿌리를 내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하는 며느리의 입지를 따뜻하게 밀어 주기 위해서 어른들은 ‘팔베개’를 앞세운 게 아닐까. 아내가 가문의 안주인이 되기까지에는 남편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도 자리를 옮기면 몸살을 한다. 회초리같이 아주 어린 묘목을 심었을 땐 처음부터 잘 자라서 내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란 나무를 옮겨 심으면 일 년이 넘도록 시들하고 부실하다. 살아 있다고는 해도 잎사귀는 누렇고, 옮겨 심을 때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몽당빗자루 같은 꼴을 하고 몇 잎 되지 않는 잎사귀로 여름을 나고 겨울을 이겨야 새봄에 싹을 틔운다. 그렇더라도 몇 해는 더 기다려야 마당에 있는 다른 식물과 키를 맞추며 어울려 꽃을 피울 수 있다.
하물며 인간이야 더하지 않을까 남편에게 팔베개를 해 주어 아내의 볼이 얼지 않도록 하라는 가르침은 낯선 곳에 시집온 며느리가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시부모의 사랑을 우회적으로 전달한 말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신복희의 ‘그대에게 드리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