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온전하게 하루를 만끽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천국행으로 만들어 주었다.
도대체 얼마만에 맛보는 완벽한 자유로움 이더란 말이냐....
사실 뭐든 그냥 아무렇게나 결정하고 쓰윽 예정 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나
더러는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루를 소진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러했다.
그냥, 이른 아침에 서방이 출장을 가버리는 바람에 속박이라 하긴 뭐하지만 매어진 하루가 갑자기 자유로움으로 바뀌었다.
해서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온 화가이자 시인인 지인과 점심 약속을 하게 되었고
흔쾌히 동반을 허락한 그녀와 들뜬 마음으로 휘리릭 지인 화가가 운영하는 청학대로 날아갔다.
코로나 시절 전에는 엄청나게 들락거렸던 "청학대" 이긴 하지만 한동안 뜸했었다.
찾아들지 못할 개인적인 이유가 하도 많아서 미안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간만에 맛보는 스파게티와 돈가스.
그리고 동행인의 남편을 위한 피자까지 주문을 하고 그동안 밀린 수다를 마구마구 풀어내고 보니 결국 목이 쉴 정도.
하여도 좋았다....얼마만에 담을 넘어갈 수다였더란 말인가 싶게 물꼬를 튼 수다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다가
불현듯 남겨져 있던 아니 안성시민으로서 받아야 할 혜택을 포기하지는 말자 싶어 농협으로 달려가 교통지원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미처 생각치 못했던 안성시민으로서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룰루랄라 면사무소로 고고고.
웃기는 일이었지만 왠지 뿌듯하게 몇푼되지 않는 지원금을 카드에 충전받으면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여"를 되뇌이다가
아니지 나랏돈이 아닌 시비였을테니 안성시민으로서 뿌듯함을 느끼던 찰나의 순간, 뭐 안주는 도시도 많으니까 탱큐지 라고
그렇게 우리가 내었던 세금은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공돈인 듯 신나게 헤벌쭉 거리며 카드를 받아들고는
이름도 거창한 "황금다방"에 들러 자칭타칭 미남 바리스타에게 맛있는 커피를 주문하였다.
이름을 생각하면 촌스러운 곳인가 싶어도 그게 아니다.
도예가 쥔장들의 성을 따와 지었음은 물론 이중적 중의 의미를 따지자면 황금은 돈일 테고 그곳에서 커피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꽃과 도자기가 함께 하는 곳으로서의 매력을 듬뿍 지닌 곳이 되겠다.
얼마나 근사하냐....금광저수지 앞을 상징하는 황금다방은 그래서 유일하게
무설재 쥔장이 카페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한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볶아 내리는 커피도 일품이요 실내도 아기자기한 것이 탐나는 도자기도 굿굿이요 꽃들의 천지이기도 하다.
암튼 그렇게 장시간 수다를 다시 한번 휘리릭 날리다가 불현듯 "살구나무 책방"이 생각나서 찾아들기로 했다.
이미 작년에 안성 금광면에 살구나무 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을 지면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밀어놓다가 별안간 생겨버린 자유로운 시간을 마구 써 제끼기로 하였다.
해서 동행인에게 "가볼까나" 물었더니 역시 "콜"....아주 죽이 맞는다.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발에 스윽 힘을 주고 "복거마을로" 찾아든다....사실 황금다방에서 5분 거리 정도다.
구불거리는 길을 찾아들어가다 보면 그런대로 치장된, 허름의 탈을 벗은 농가가 스윽 나타난다.
주위 환경보다는 좀더 세련된 그런 집이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주인은 공석이다.
해서 전화를 걸어 쥔장 소개를 하고 책방을 둘러보고 싶다고 전했다.
자초자종은 길었으나 흔쾌히 책방주인이 키 번호를 알려준다.
역시나 한때 무설재 쥔장이 사용하였던 방법이기도 하다.
취재중이거나 안성을 비울시 차를 마시러 오던 발길들에게 알려주었던 고전의 방법이 일레트로닉하게 바뀌었을 뿐.
역시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사용할 방법이렸다.
그런 점이 일단 마음에 들었고 어차피 예약제인데다가 기껏해야 하루에 한 두팀만 받는다고 하였으니
온전히 안성살이를 하지 못하는 주인장으로서는 궁여지책이었을 듯하다.
어쨋거나 해미읍성에서 시낭송 공연기획을 회의하고 달려오던 참이라는 책방주인 "이종일"씨와는
30분 정도 기다려 잠깐의 만남으로 그를 파악하기는 어려울 일이나 그래도 "척보면 안다" 가 쥔장의 지론인지라
그 또한 무설재 쥔장꽈라는 것을 알겠다.
연극, 공연 기획, 안성 남사당패 자문, 한때 "백스테이지"라는 세계에서도 드문 잡지 발행인으로서의 지난한 세월.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는 일도 많은 그런 예술적 마인드의 총집합체이자 자유로움의 대명사가 될 이종일.
원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라고 말하자니 좀 머쓱하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하튼 그렇게 바깥을 서성이며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살구나무 책방의 어원을 듣게 되었다.
들어가면서 리모델링 되어진 책방을 기준으로 왼쪽켠에 살구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27년 되었단다.
살구나무 책방으로 변신하게 될 폐가를 구입하고 처음에는 그저 쉴 목적으로, 자유롭게 노닐 장소로 점찍었단다.
그러다가 이래저래 핑계있는 책방으로 변신시키게 되고 그렇게 달라진 폐가에
어느날, 중년을 지난 초로의 여자가 찾아들었단다.
그리고 그녀는 조그마한 쪽창 앞에 차 한잔을 두고 바깥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책방을 나서더란다.
해서 책방주인이 쫓아나가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단다.
그녀는 "이집이 제가 자란 곳이고 이곳에서 살림을 살았으며 저 살구나무는 아들이 태어나서 기념으로 심었던 나무"라고 하더란다.
2년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 아들이 25살이라 하였으니 올해는 27년이 되었다고...
해서 살구나무의 탄생을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살구나무 책방"이 탄생되었노라고 한다.
망서릴 이유가 없었다며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듣게 된 살구나무 책방의 어원은 감동이었다.
그후로 그녀가 다시 찾아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아들은 그곳이 궁금할까나 싶은 염려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당연히 그 순간이 기꺼웠으니까.
그렇게 짧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고 주인을 무설재로 초대하였다.
언젠가는 찾아들겠지....싶으면서 무설재 자락에 가득한 책과 다양한 부류 작가들의 온갖 작품들이
어쩌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미 1톤 트럭으로 두번, 박스로 이십여 박스가 다른 이들에게 건네졌으므로
이제 남겨진 책들 또한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무설재 쥔장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였으며 마음의 양식을 충분히 담았으므로
또 다른 이들에게 그 활자중독증의 매력과 행복감을 나누고 싶기도 하니 말이다.
무설재 쥔장은 이미 도시를 뒤로 하고 근거지를 옮길 때마다 그 많은 책을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까워서
성남 아파트에서 그 이후로는 안산 기거처에서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도 꾸준히 책읽기를 권장하고
나눔 도서관을 개인적으로 운영하였던 흔적이 있었던 쥔장으로서는 그의 이런 노력과 시도가 보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긴 했다.
자신의 영혼과 실제를 키워줄 지적재산과 환경적 요인을 거부하다니 싶어서 말이다.
무튼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복거마을 안쪽에 있다는 "장미꽃 마을"로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 장미꽃 마을을 안내해줄 건축가는 부재중이고 그가 추구하는 5월 장미축제는 어찌 되는지 궁금하였어도
그냥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그저 막연히 건축가가 꾸밀 카페 공간의 5월 오픈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사실 도시를 버리고 안성으로 기거처를 올겨 살아온지 20년이 넘었다.
그래도 여전히 외지인 대접을 받으며 아무리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내어주어도 늘 그렇게 그만그만이었다.
처음에 안성으로 옮겨올 때 마음은 엄청 열정적이고 의욕적이었으나 외지인의 족쇄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시간이 흘러갔나 싶도록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쥔장과 다르게 외지에서 찾아든 자유로운 영혼들이
안성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설재 쥔장의 마인드는 너무 일렀던 것이다.....시일이 흘러야 받아들여지는 것을
너무 일찍 감행했던 것이다 싶었어도 사는 동안 무설재 뜨락에서 벌였던 많은 일들은 나름 행복하다 여겨질 만큼 즐거웠다.
이제는 이후에 도출될 일들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뜨락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요즘은 뭔가를 하지 않아도, 더 이상 바라지 않아도, 명예나 경제력 혹은 호기심 충족을 위한 제스추어나
마음살이, 사람살이를 늘리지 않아도 "그저 이만하면 됐다"로 족하고 있다.
나름 잘 살아진 삶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휘몰아친 하루, 자유로음을 만끽하며 흘러다닌 하루 끝에
여전히 일상의 만족감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개인의 성향과 취향 그리고 끊임 없는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할 일상의 만족도는 그리하여 개인적으로는 충분하였다.
잘 살았다 싶도록...
그리고
동행인으로 부터 카톡,
덕분에 오늘 즐겁고 보람찬 하루! 스트레스가 확 풀렸수....란다.
답신은 미투......
첫댓글 덕분에 나도 함께 나들이 한번
잘했네요. 온갖 상상의 날개는
덤으로~! ㅎㅎ
ㅎㅎㅎㅎ
살구나무책방은 이룸 근처이니
나중에라도 찾아보시길요.
@햇살편지 오호~! I ge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