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50) - 꾸준하고 무심하게 걷자
며칠 후면 한 더위 지나고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처서(處暑), 아침저녁으로 한결 상쾌한 기분이다. 아침 산책길에 살피니 들판의 곡식이 풍작이고 햇과일이 잘 여문다. 각박한 세상에 풍성함 가득하라.
처서를 앞둔 들판의 풍요로움
주말인 토요일 새벽, 어둠 속 산책길에 나서려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TV를 켜니 ‘세상을 걷다’는 산행 르포가 눈길을 끈다. 눈에 들어온 화면은 지리산 노고단 풍경, 광주에 사는 동안 자주 찾던 곳이라 친숙한 경관이다.
20여 년 전 대학동료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바 있는데 근자에 노고단을 찾은 것은 6년 전의 일, 그때의 기록을 살펴보자.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 포근한 정기와 웅혼한 기상을 마음에 담으려고. 낮 12시쯤 노고단 입구의 성삼재에 도착하여 산행에 나섰다. 언제 내린 눈인가, 등산로가 미끄럽다. 한 시간 반쯤 걸어 노고단 정상에 오르니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무등산도 시야에 잡힌다. 남해안으로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가 선명하고. 동행한 가족들과 온화하면서도 웅혼한 산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평화로운 세상, 번영하는 사회, 집안의 평강, 후예들의 형통을 염원하며. 휴게소에 내려오니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들며 폰에 담은 풍광을 카톡에 올렸다. 어머니처럼 포근한 지리산의 정기를 받으라고. 여러 곳에서 멋있다는 감탄이 쇄도한다. 아름다운 세상이어라.’
수년 전에 오른 노고단의 수려한 풍광
‘세상을 걷다’는 르포를 살피노라니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변 여러 나라를 열심히 걸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본격적으로 걷기에 나선 것은 은퇴를 맞은 2009년 (사)한국체육진흥회의 주관 제2회 서울-도쿄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를 시작으로(이후 2011년, 2013년, 2015년, 2017년, 2019 도합 6차례) 2012년 서울-목포-부산과 2014년 부산-속초-서울의 한국일주 걷기, 2016년 55일간 대만일주 걷기와 부산-고성 통일전망대 해파랑길 연결걷기, 2017년과 2020년 서울-순천-합천의 이순신백의종군길 걷기, 2018년 제주도일주 걷기, 2021년 서울-부산과 부산-서울 왕복 걷기, 2022년 진주-곡성-진도 명량해전 승리의 길 걷기가 이어졌다. 특히 금년에는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여km 내외를 열심히 걷는 중, 마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설파한 안중근 의사의 술회처럼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발이 근질근질하다’고 표현해야 할는지.
지난주 대청도 트레킹 때의 복장, 모자는 서울-부산 걷기 때 쓴 것이고 조끼는 백의종군 걷기 때 입은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장거리 걷기 때의 각오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한국일주의 소회를 압축하면 ‘인심은 순후하고 산천은 아름답다’, 일본걷기의 다짐은 ‘바다 건너 친구들아, 사이좋게 지내자’, 대만걷기의 수확은 ‘대만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익힌 학습’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십년 넘게 열심히 걸은 결과 30대 이후 꿈쩍 않던 체중이 최근에 훌쩍 줄어들었고 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지표도 정상으로 나타나는 등 건강상태가 좋은 것이 과외의 소득이다.
엊그제 지인이 카톡으로 전한 메시지가 그럴듯하다. 그 내용,
‘꽃 모닝
인생의 꽃은 만남입니다.
성품의 꽃은 겸손입니다.
청년의 꽃은 열정입니다.
중년의 꽃은 배려입니다.
노년의 꽃은 건강입니다.
꽃 중의 꽃은 그대입니다.’
어느새 건강이 우선인 노년의 삶, 매일 걷는 무심천 따라 꾸준하고 무심하게 걷자.
* 때에 맞게 걷기(산책)를 예찬하는 이가 쓴 글,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에 눈길이 간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
나는 산책 중독자다. 나는 많이, 아주 많이 걷는다. 나에게 산책은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일정 시간 걷는 것 이상의 일이다. 산책은 쇠퇴해가는 나의 심장과 폐를 활성화한다. 산책은 나의 허리를 뱃살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안구를 노트북과 휴대폰 스크린으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마음을 스트레스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심신을 쇠락으로부터 구원한다. 나는 산책을 통해 일상의 필연적 피로를 씻는다. 그뿐이랴. 산책 중에 떠오르는 망상은 메모가 되고, 메모는 글이 되고, 글은 책이 된다.
나는 산책을 즐기다가 죽은 스위스의 작가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를 생각한다. 1956년 12월 25일, 발저는 홀로 산책하다가 눈 위에 쓰러져 죽었다. 로베르트 발저는 산책을 이렇게 찬양한다.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최고로 아름답고, 좋고, 간단하다. 활기를 찾고, 살아 있는 세상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진다. 산책하는 일과 글로 남길 만한 것을 수집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다.”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그것은 출장이다. 나는 업무 수행을 위한 출장을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위도식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열심히 일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이런저런 성취도 있을 수 있겠지. 성취는 내가 산책하는 도중에 발생한다.
사람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다. 혹자는 살아남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척하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산책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삶을 원한다. 산책보다 더 나은 게 있는 삶은 사양하겠다. 산책은 다름 아닌 존재의 휴가이니까.’(2022. 8. 18 중앙일보 김영민의 글, ‘나는 왜 산책하는가’에서)
늠름한 모습의 한국체육진흥회의 걷기동호인들(2022. 8. 12 대청도 트레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