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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역시, 제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을 그대로 올립니다. 제 블로그에 같은 제목의 글 1,2에서는 주로 야쿠트인의 기원과 발전문제에 대해서, 유전자인류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내용도 길고, 한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적어서, 올리지 못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http://yayul.egloos.com/2873608 으로 가서 읽어 주시길 부탁합니다. 3은 신라사 및 한국사와 관계가 깊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앞으로, 적어도 신라고분에 나타나는 북방유목민족 요소를 논함에 있어, 설득력 있는 논거도 없이, 인구집단의 이동이 아닌 문화전파로만 설명가능하다고 하는 분들은 자신의 주장을 재고해봤으면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나는 앞의 1,2에서 유전자인류학이 야쿠트인의 기원과 변화의 역사를 탐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러한 유전자 인류학의 방법론으로 한국인의 기원과 형성의 역사도 야쿠트인들의 경우와 같이 명쾌하게 밝힐 수 있을까? 우선, 야쿠트인과 한국인 집단의 차이를 보아야 한다. 야쿠트인은 그 형성의 역사가 겨우 천년 남짓한 민족이고, 시베리아 동북방의 인구집단의 교류가 드문 지역에서 발전하여, 부계 유전자도 90% 넘게 하나의 하플로 그룹에 속하는 극단적으로 homogeneous한 집단이다. 한국인의 기원은 이보다 휠씬 복잡한 문제이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단위로 분해해서, 단순화시켜서,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짧은 글로는 도저히 한 번에 해결가능하지 않지만, 나는 그 해결을 위한 작은 단초를 보일 것이다.
먼저, 한국인에게 야쿠트인과 같은 N1c1(M178)의 야쿠트 모달 하플로가 존재하는가? 야쿠트 모달 하플로는 이미 우리가 바이칼호 부근이라는 그 기원지역을 알고 있고, 이들의 사용언어가 turkic 혹은 proto-turkic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에게서 만일 야쿠트 모달 하플로타입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바이칼호 부근에서 왔고, 이들의 애초 사용언어는 투르크계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그 기원이 어디인지, 그들의 애초 사용언어가 무엇이었는 지 아직 오리무중인 한국인 부계 중 다수를 차지하는 O2b(M176)보다는 휠씬 나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그래프를 보자. 이것은 Kim Wook <O2b korea 2010>에 하플로 N으로 표시된 샘플을 각 인구집단별로 CA 분석을 한 것이고, 사용한 통계 팩키지는 R의 adegenet이다.
위 그래프를 보면, 한국인(Kor)의 부계 하플로 N은 Khalka 몽골(Monkh), 일본인(Jap)의 N과 가까운 위치에 있고, 그래프 하단에 위치한 부리야트 몽골(Mon-br), 오른쪽 멀찍이 야쿠트인(Yakut)의 N이 있다. 우선 이 그래프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인의 하플로 N은 Chn-han으로 표시된 중국 한족이나, Viet 베트남, Tibet 티벳의 N과는 거리가 먼 대신 , 몽골이나 부리야트와 가까운 북방계 유목민족에서 유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만일 江上波夫의 기마민족도래설이 옳다면, 한반도와 일본을 말을 타고, 휘젓은 기마민족의 후예는 이 하플로 N들일 것이다.
내가 한 한국인 Y-SNP 추정 분석(http://yayul.egloos.com/2870315)에서 한국인에게 N1c는 약 3.2%만 나온다. 현대의 한국인에게 이렇게 적은 수로 존재하는 하플로가 한국인 집단의 형성에 어떤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다른 유라시아 유목 민족이 민족과 국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국가의 사례를 보면, 현대의 헝가리 국민 대부분이 마쟈르어라는 핀-우그릭 언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헝가리의 부계나 모계의 하플로를 분석하면, 거의 대부분 이웃 인도-유럽피안계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유럽의 국가와 차이가 없이 부계는 R1b,R1a, I2a ,모계는 H, 혹은 U가 다수를 차지한다. 우랄언어 계통과 관계가 있을 N1c1의 슬라브 모달은 거의 1~2% 정도만 나온다.
터키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터키국민 다수는 투르크어군의 분지인 Oguz어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들의 주요한 부계는 J2, R1b, G, E3b 등으로 이웃 아랍국가, 인도유럽피안, 코카시안어군의 인구집단과 비슷하지, 투르크어군에 특징적인 하플로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들 민족과 국가의 형성과정에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족 집단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이들의 현재와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맑스가 그랬던가? "한 사회의 언어는 그 지배계급의 언어이다" 라고... 그러므로,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족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큰 N1c가 현재 한국인 하플로에서 소수의 비율로 존재한다고 해서, 이들이 한국인 집단 형성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에도 그 비율만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 분석에 동원된 각각의 개별 샘플들이 모두 나타나는 PCA 분석 그래프를 보자. 여기에는 비교를 위해서, Scand이라고 표시된 스칸디나비아 지역(주로 핀란드, 스웬덴)의 하플로 N 샘플을 추가하였다.
이 PCA 그래프에서는 야쿠트인들의 샘플은 왼쪽 중간에 몰려 있고, 하단부 중간에 스칸디나비아 샘플들, 그리고 많은 한국인 샘플들은 오른쪽 하단에 있다. 그러나, 야쿠트인들 샘플들의 중심지 가까이, 다른 스칸디나비아, 일본, 중국 한족, 티벳들은 보이지 않지만, 한국인 샘플 몇개는 그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인 샘플 중에 다수의 N과 약간 다른 야쿠트 모달 하플로와 가까운 샘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야쿠트 모달에 속하는 샘플들을 모아서, 앞서 2의 야쿠트 모달 샘플들처럼 Ancestral type으로부터 분기 년대를 추정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O2b korea>에 나온 야쿠트 모달은 너무 숫자가 적어서, 그래도 여전히 샘플의 숫자가 부족하지만, 연세대의 <Genetic characteristics of 22 Y-STR loci in Koreans>로부터 샘플을 몇 개 더 모았다.
자료 중에, kor-cc로 된 , ht224, ht253 으로 나오는 것은 김욱교수 논문에 나온 것은 아마 충남 대전의 샘플일 것이다. 나머지 연세대 신경준교수팀의 샘플은 아마도 서울에서 수집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자료들은 모두 Y-SNP를 측정하지 않고, STR값에 의해 N1c1이라고 추정된 약점이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인에 대한 STR과 SNP가 모두 하플로 N의 하위 하플로까지 잘 측정된 많은 샘플이 나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방법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와 같이 Klyosove가 제안한 방법에 의해 95% 신뢰도로 기원년대 추정을 보면, 74 ±10.2 generations, 1850 ± 260 years 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이들 korean-yakut modal이 한국에 도착한 시기는 대략 B.C. 100 년~ A.D 42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유라시아 초원의 투르크계 유목민족이 한반도로 올만한 사건이 있었을까? 나는 1) 삼국사기에 근거한 년대라면, B.C.57년의 신라 박혁거세의 등장, 2) A.D. 65년 김알지의 등장이나, 3) 삼국사기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적석목곽분 등과 같은 스키타이-흉노 양식의 고고학적 유물이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서기 4세기 후반을 주요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밖에 비록 95% 신뢰구간에서는 멀지만, <O2b korea>에 몇 개의 경상도, 전라도 등 다른 지역의 N이 있음에도 유독 충청도의 N만이 야쿠트 모달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야쿠트 모달이 백제와 관련이 될 수도 있다. 백제와 관련시킬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사건을 들자면, 660년 백제의 멸망 시기에 온 당나라 소정방의 군대이다. 소정방은 백제로 오기 1년 전인 659년에 서돌궐로 원정해서 서돌궐을 격파한 뒤, 660년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로 왔다. 이 13만 대군 중에는 이전에 정복한 서돌궐지역 출신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 들중에서, 백제 정복 후, 당나라로 돌아 가지 않고 충청도 지역에 남아서, 한국 야쿠트 모달 하플로의 선조가 된 사람도 있을 가능성이 적으나마 존재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朴赫居世라는 이름을 둘러싸고 상당히 많은 해석이 존재해 왔다. 일단, 박혁거세라는 이름이 한자의 의미에 근거한 훈독으로 풀기 보다는 유사한 음을 가진 어떤 다른 단어를 한자의 비슷한 음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대체로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그리고, 박이라는 성 자체도 그 전에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떤 유사한 음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朴赫居世의 한자음은 신라초기에는 어떤 식으로 발음되었을까? 이것은 삼국시대 한자음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이다. 나는 이 문제를 여기서 깊이 파고 들 능력도 시간도 없다. 다만, 현대의 한국 한자음이 중국 한대의 상고음과 많이 유사하다고 인정되고 있기에, 중국의 유명한 상고음 연구자들도, 상고음 재구를 위해 internal construction을 하고 난 후, 거의 대부분 한국 현대 한자음과 대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여기서는 현대음과 가깝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언어의 어떤 단어가 가장 朴赫居世의 발음에 가까운 것일까? 내 나름대로, 여러 언어들을 살펴 본 결과로는 Turkic의 oghuz계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어 중에 xətkeʂ 로 읽히고, 영어로 the ruler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가 있다( <Dictioanry of Turkic languages> 1996 Routledge 참조) . 다른 투르크계 언어,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어에서는 sizghich로 읽히고 같은 의미이다. 아제르바이잔어에는 bright 라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로 parlaq라고 읽히는 단어가 있다. 혹은 이 음운대응이 너무 자의적이라고 믿는다면, "박"은 한국어 그대로 "밝다"라는 의미를 취하면, 박혁거세는 "The bright ruler" 라는 뜻이 된다. 현대의 한반도 북쪽 국가의 지도자 호칭법과 매우 유사하지 않는가? 이런 긴 음절의 단어가 의미까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무런 연관없는 우연의 일치에 의해 매칭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박혁거세가 새로 나라를 세울 때, 그를 추대한 경주 지역 6촌장 중에 薛씨가 있다. 남북조시대와 수당대에 걸쳐 勅勒(칙륵)에 속하는 여러 부족 가운데도 薛延陀가 있는 데, 薛延陀는 실은 薛과 延陀 두개의 다른 부족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薛은 sur로 읽혔다고 한다. 단오절을 뜻하는 수릿날의 "수리" 는 높음, 神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徐伐의 徐 등도 비슷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말이 아니었을까?
후돌궐 시기, 퀼테긴 비문에 "Colug el" 이 신라를 지칭할 가능성이 있음을 이전 포스팅(http://yayul.egloos.com/2859829) 에서 논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Солонгос улс)라고 부른다. 이는 몽골인의 선조와 한국인의 선조 중 일부가 고대 어느 시기, 인접한 지방에 살던 때부터 사용했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몽골인들이 한국을 지칭하는 솔롱고스와 Colug el이 발음상으로 유사함은 물론, 퀼테긴 비문에 나올 때, el을 붙여 부르듯, улс(ulus)를 붙여서 지칭하고 있다. 후돌궐 제국 시절에도, 신라를 칭하면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들이 쪽빛투르크와 인접한 유라시아 북방초원에서 활동할 때 아마, 그 이름은 투르크어로 Colug와 유사하게 불리어졌고, 이것이 이 지역의 북방유목민족을 칭하는 다양한 중국사서에 나오는 명칭들인 勅勒, 赤勒, 鐵勒, 高車, 丁靈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 지, 지금 추적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들 중의 어떤 집단이 B.C. 100 년~ A.D 420년 사이에 북방초원에서 사라졌지만, 쪽빛투르크인은 이들의 후예 중 일부가 한반도 동부로 내려가 살고 있기에, 이들을 이전에 부르던 명칭대로 불렀던 것이 Colug el(Colongoc uluc)이고, 이는 투르크인과 몽골인들이 북방초원에 인접해 살던 시절부터 한반도로 내려온 한국인의 선조를 공통적으로 부르던 명칭이었을 것이다.
박혁거세가 사로국의 수장으로 등극하면서, 새로운 명칭으로 居西汗도 내세운 것도 예사로이 볼 일이 아니다. 거서한의 汗이 의미하는 바는 북방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유목 국가들인, 유연, 돌궐, 선비, 회홀, 몽골들이 통치자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可汗, 大汗, 汗 qagan, kahn 등과 연결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이 북방유목민족과의 혼혈이 유력한 당태종도 동돌궐을 타파한 후, 天可汗이라고 하였다. 중국 사서를 통해 볼 때, 서기 402년 유연제국의 丘豆莫 카간이 등장을 기록한 <魏書>에 나오는, "自稱丘豆伐可汗,...驾驭开张也" 이, 최초로 qagan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등장하고, 可汗에 의한 통치가 시작하는 시점으로 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정식은 아니지만, <宋書>에 나오길 모용선비의 후예인 토욕혼전에 “ 楼喜拜曰:“处可寒。”虏言“处可寒" 이 나오고 있어, 유연제국 이전에 이미 모용선비를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이 可汗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陳發源 <柔然君王 "可汗"考> 1988 참조) 그러나, 정식으로 汗을 최고통치자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만일 삼국사기의 기년이 맞다면, B.C.57년보다 이른 것은 없다.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 세계사의 진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qagan제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사와 북방유목민족역사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A.D. 356년 경에 등장하는 신라 김씨, 내물마립간의 干,역시 이 qagan전통에 연결되는 바, 신라에는 북방유목민족의 도래는 한차례만 아닌, 박혁거세로 대표되는 집단과 이후에, 김알지집단이나 혹은 휴도왕 김일제의 후손이라 칭했던 집단 등, 몇 차례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 중에 야쿠트의 시조와 유사한 투르크계 N1c1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로 인해서, 어쩌면 한국어에 알타이어군과의 관련이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앞으로, 야쿠트 모달의 N1c1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에 해당하는 지, 혹은 이들 몇 차례에 걸친 유목민족집단은 다른 어떤 하플로에 해당하는 지를 밝히는 작업을 위해서는 더 많은 샘플이 수집되고, 세분화해서 SNP 하플로가 측정되고, STR도 함께 측정된 자료가 나와야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당연히,신라 고분의 고인골에 대한 Y-하플로가 측정된다면, 휠씬 간단하게 우리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금년에 나온 하가점 하층문화대에 속하는 大甸子 유적 고인골에 대한 Y-SNP 측정 결과, 두 개의 O3(M122)과 하나의 N(M231 X TAT)이 확인되었다.( Hongjie Li et el <Genetic characteristics and migration history of a bronze culture population in the West Liao-River valley revealed by ancient DNA> 2011) 함께 측정된 MT-DNA의 결과를 볼 때, 하가점하층 문화군도 한국인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한국인 부계 하플로의 다수를 점유하는 O3(M122)의 기원과 이동경로에 대해서도, 앞으로 이러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된다면, 조만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첫댓글 흥미롭네요. 다만 글이 길어 독자들로 하여금 지치게 만드는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글씨굵기나 포인트를 넣어서 핵심을 쉽게 파악할수 있게 배려해주신다면 좋은글이 될것 같네요.
저도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박혁거세 운영자님의 견해에 공감하며 야율초재님의 글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몽골이 한국인을 부르는 "솔롱고스"란 단어의 유래에 대해 오래동안 의문을 가져 왔습니다. 무지개라느니, 족제비라는 것이니, 여러 설이 있어왔지만, 썩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퀼테긴 비문에 나타난 "Colug"와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는 곧 "사로" ."신라","시라기" 와 연결되는 것임을 알게 되어, 의문의 매듭 중 하나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야쿠트인보다 그들스스로 샤하라고 부르니 샤하인이라 부르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