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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3: 25. 겉은 깨끗이 하되 - 마 23: 27. 회칠한 무덤
마 23: 25. 겉은 깨끗이 하되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
외식자들은 외적 성결을 중시했으나 그들 안에는 탐욕과 불의로 가득했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다. 마음은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은 말과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내면적 성결이 없는 외적 성결은 가치가 작고 위선(僞善)에 그칠 수 있다.
1]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다섯 번째 저주 선언문이다.
당시의 랍비들에 의해 제정된 의식적(儀式的) 정결에 관한 것과 관계가 있다.
전통 본문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부정 不正]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으로 되어있다.
2]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잔과 대접'은 먹는 그릇을 통칭(通稱)한 말이다.
이것을 정결히 한다고 함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표면적이고 가식적인 율법적 청결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다.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하는 이유는 종교적 의식(儀式)보다는 음식을 깨끗하게 담기 위함이다. 따라서 안팎을 모두 깨끗이 해야 되지만 우선적으로 깨끗이 해야 할 부분은 그릇 안쪽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릇 안을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다시 말해 정작 중요한 것은 속마음인데 겉으로는 거룩하고 깨끗한 척하면서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3]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탐욕'은 헬라어로 '하르파게(*)라고 하는데 '강탈', '약탈', '도둑질'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는 물질적인 측면의 죄악을 암시한다.
'방탕'은 헬라어로 '아크라시아'(*)인데 그 뜻은 '자제력 상실', '무절제'이다. 이는 윤리적 측면의 범죄를 암시한다.
이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7: 15의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음속에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실제로 남의 것을 착취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강조점은 악한 마음과 동시에 그 악독한 마음에서 비롯된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외식적 지도자들은 외적 성결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탐욕과 부정(不正)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마음의 성결을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다. 마음은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과 행위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내면적 성결이 없는 외적 성결은 가치가 작고 위선에 그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 3-7에서 말한다.
* 엡 5: 3-7 –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마 23: 26. 안을 깨끗이 하라. -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
성도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1] 눈먼 바리새인이여.
이 본문은 진지한 충고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눈먼바리새인'라는 호칭은 24절의 형태를 따랐지만 구체적으로 바리새인을 지칭하였고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강렬한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이 24절과 다르다.
눅 11: 41의 평행구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즉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이다.
여기서 '구제하라'는 말은 아람어로는 '깨끗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과는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2]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이 본문의 전체적 의도는 다섯 번째 저주 선언문의 내용이 갖는 목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 목적은 속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이다.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의'(義), '인'(仁), '신'(信)에 입각하여(23절) 행실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결국 위선된 자기 생활로부터 전적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즉 회개하고 거룩에 이르라는 것이다.
3]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음을 바꾸는 것과 행실을 바꾸는 것은 먼저와 나중이 없다. 실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이다(知行合一).
그러나 여기서 먼저와 나중으로 구별한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겉치레와 외식에만 치우쳐 있는 그들의 편협(偏狹)한 생활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4] 주님의 경고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이끌어 가는 정신적, 종교적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적 삶에 대한 심판의 경고와 화가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옛날의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으며, 백성들의 송사를 담당하여 재판하는 재판관의 임무도 수행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의 권위인 랍비(선생)라는 칭호를 듣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율법의 외형적인 면에만 치중하고 율법의 근본인 내면적 의미와는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그들에게 미칠 화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것에 대한 경고요 교훈이라 하겠다.
(1) 안과 밖이 다른 서기관과 바리새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생활은 겉은 깨끗하고 보기 좋은 것 같으나 그 안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의 외모와 성품은 거룩하고 위풍이 당당하게 나타났지만 실은 진실치 못하고 거짓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위선적인 그들의 행동을 가장 준엄하게 책망하셨다.
예수님의 경책은 오늘날 거룩하고 성별 된 성도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주일날 십일조 헌금이나 몇 푼의 감사 헌금을 내는 것으로 마치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성도들에게 좋은 경고가 되는 예이다.
① 형식적인 신앙은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된다.
신앙생활은 꾸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겸손해 나아가는 것이다. 겉이 아름답게 단장되었다면, 또한 안도 아름다운 인격과 온유와 겸손의 신앙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
안과 밖이 같지 않고 다를 때 성도는 세상의 빛으로서의 역할도, 소금으로서의 직분도 잘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버리고 율법의 형식적인 면만 추구하다가 주님의 책망을 받았다.
② 외식적인 신앙은 전도를 가로막는다.
예수께서 사람을 이처럼 준엄하게 비난하신 일은 거의 없다. 그는 음행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셨고, 반민족적 매국노당으로 지탄을 받는 세리장 삭개오의 초청을 받아들였고,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를 향하여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공격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외식적인 도덕성과 신앙 때문이었다.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경원하고 비난하는 이유도 옛날처럼 조상의 제사를 못 지내게 한다든지 그것이 서양 종교라서라든지 또는 당사자들이 무신론적 철학을 가졌다고 해서가 아니라 허식이 많고 독선적이며 편견적이고 고리타분한 그리스도인들의 비인간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식 된 비인간적인 악취가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의 참된 꽃향기를 발해야 하겠다.
(2) 탐욕과 방탕에 젖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들은 탐욕과 방탕과 온갖 불의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잔과 대접'은 물질적인 경고였지만 , '탐욕과 방탕'은 도덕적인 죄를 지적한 것이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이러한 단어들은 저들의 추한 마음을 대표하고 있다. 즉 '탐욕'은 '강탈, 약탈, 차압, 몰수'라는 뜻이며 ,'방탕(하크라시아)'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자기를 이기며 다스릴 자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서운 탐욕을 제거해야 한다. 인간의 욕심은 죄를 수반한다. 탐욕은 우리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양심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한다.
마음이 탐욕과 방탕에서 벗어날 때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한 주님의 책망은 탐욕과 방탕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이 시대의 모든 성도에게도 적용되는 귀한 교훈이다.
(3) 먼저 안을 깨끗이 하여라.
사람의 중심에 의와 인과 신이 간직될 때 의식도 거룩하며, 마음이 탐욕과 방탕에서 정결해질 때 얼굴도 정결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철저하게 인간을 위하여 인간 편에 섰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과 부정의 무덤 깊숙이 칼을 꽂아 해부를 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내면의 죄성을 드러내 보이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의 사회에서 버림받은 세리나 창기의 친구였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막벌이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다.
예수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말씀하셨다. 안이 깨끗하지 못하면 더러운 것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사람이 깨끗해야 하며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내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어버리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일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신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받아들이는 겸허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5. 외적 성결 ( 27-28 )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외식자들은 내면적 성결이 없이 외적 단장만 힘썼다.
그들은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다. 회칠한 무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과 불쾌한 냄새로 가득하다.
이처럼 외식자들은 의롭고 선한 자처럼 보여도 실상 마음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했다.
성도는 먼저 내면적 성결과 단장, 즉 진실한 의와 선을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모든 위선과 외식을 버려야 한다.
* 벧전 2: 1-2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전통본문).
마 23: 27. 회칠한 무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1]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본문은 여섯 번째 저주 선언문이다.
25절과 같은 형태의 문장 구조를 가졌다.
즉 '겉'과 '안'을 대칭적으로 묘사하면서 비판하고 있으며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드러나지 않은 악한 영향력들을 집중 공박(功駁)하고 있다.
2] 회칠한 무덤 같으니
'회칠한 무덤'은 들판이나 길옆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무덤으로 겔 39: 15에 근거한 랍비들의 명령에 따라 우기가 지난 유월절 전 아달월 15일에 회가루를 뿌려 하얗게 칠한다.
* 겔 39: 15 -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땅으로 지나가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푯말을 세워 매장하는 사람에게 가서 하몬곡 골짜기에 매장하게 할 것이요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가는 사람들(특히 유월절 순례자들)이 쉽게 식별하여 피해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율법에 의해 시체나 무덤을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 민 19: 16 -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행 23: 3에서 바울은 이와 유사하게 대제사장을 '회칠한 벽'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 당시 바울은 이 말을 통해 대제사장의 위선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는 상징어법으로 나타내려한 의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회칠한 무덤'이란
그들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죄악성은 뒤로 하더라도 사람만을 의식하는 그들의 허영적이고 위선적인 신앙 형태에 대한 극히 독설적인 책망이다.
(2) 바리새인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는 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극히 부정하다고 단죄(斷罪)하는 율법 조항에 의해 비판받게 하여 그들에게 지독한 모욕감과 수치감을 주고자 함이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에 비교될 만한 무가치하고 반신앙적 인물들이었다.
예수께서는 회칠한 무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곧이어 함으로써 이해를 보충시키고 있다. 즉 '겉'과 '안'을 대조시키고 '아름답게'와 '모든 더러운 것'을 대조시켜 위선자의 양면성을 밝힌다.
27절의 내용은 25절의 저주 선언문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3]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로 인한 필연적인 산물이다.
* 창 2: 16-17 –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창 3: 19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요일 3: 14-15 –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주검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누구든지 그것과 접촉하면 부정에 전염된다고 규정하였다.
* 민 5: 2 –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 민 6: 6 -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주검이 안장되어 있는 유대인의 무덤 속에는 송장의 뼈와 시체의 악취와 기타 오물로 가득하여 의식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더럽고 추한 몰골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숨겨진 실체요 내면의 부정이었다. 인위적이고 과도한 경건은 독선과 가식의 겉포장일 수 있다.
* 행 23: 3 -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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