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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7: 20 나를 믿는 사람 - 요 17: 22 내게 주신 영광
5. 성도를 위한 간구 ( 17: 20 – 26 )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 20 나를 믿는 사람 -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
예수께서는 단지 당시의 제자들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으셨고 또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오늘날 신약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는 오늘날도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신다(롬 8: 34).
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이 말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사람들로서 예수의 열한 제자들을 가리킨다.
바렛(Barrett)은 이 사람들을 예수와 함께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가룟 유다는 제외시켰다. 그런데 본 장의 기도가 만찬에서 행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18: 1을 볼 때 만찬에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서는 예수가 만찬 후 곧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말'(*, 로고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들에게 계시 된 하나님의 메시지 전체를 드러내는 복음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Bernard).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에 의하여 전달된 메시지 역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본질적으로 '진리'이다.
제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원문상 진리 '안에서'(19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도들의 믿음은 제자들의 말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들의 믿음이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에서 기인하듯이 그들의 보내심을 받음(18절)을 통하여 믿음을 가진 새로운 신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 18)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질 지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 14)라고 진술했다.
이처럼 교회의 기초(基礎)는 말씀이며, 이 말씀이 전파될 때 교회는 형성된다.
3]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믿는 사람들'은 현재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미래적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L. Morris, Turner, Bernard).
미래적 의미를 현재 분사로 나타내는 용법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어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이 말은 '믿게 될 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더 분명한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많은 영역 성경은 미래형으로 번역했다(KJV, Scoffield Bible, Jerusalem Bible, MLB, NIV, LB).
요 17: 21 아버지 안에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 곧 신약교회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의 하나 되심같은 하나이다. 그것은 단지 외적 일치가 아니고 사상적 일치이다.
사상적인 일치가 없는 외적 일치의 추구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고 인류 초기의 바벨탑 쌓기(창 11: 4)와 같은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일치된 증거를 해야 한다. 과연 그렇게 되었다.
역사상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이탈한 이단들도 있었으나, 그들을 제외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비록 교파가 달라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속죄 사역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 등을 고백하였다.
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본 절에는 '히나'(*)가 이끄는 세 가지의 목적절이 나온다. 이 세 목적절은 모두 20절의 '내가 비옵는 것은'에 연결된다.
본문은 그중 첫 번째 '히나'절로서 성도 공동체의 연합을 성부와 성자의 일체성에 근거하여 간구하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어 그의 일을 하시며 또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으므로 두분은 하나로 존재하고 일하신다.
* 요 14: 10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요 10: 30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듯이(11절) 그들의 증거를 통해 얻게 될 사람들, 즉 교회 역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신다(C.K. Barrett). 그러나 하나 됨이 의미가 제도적이거나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주체성을 상실한 채 기계적으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적이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완전한 일체를 이루듯이 교회 내의 각 지체들도 나름대로의 다양한 특성을 지니는 가운데 통일성(統一性)을 띠는 것이다.
* 요 15: 1-8 –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 고전 12: 12-13 –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는 질적 측면에서 엄연히 구분된다.
다 하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16장 고별 설교에서부터 본 장 기도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반복하시며 강조하는 것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먼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지속적으로 설명하심으로 결국은 그들은 믿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현재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안에 포함되어 그리스도의 한 몸(고전 12: 13)에 속할 것을 간구 하신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은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하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모든 교단이 하나로 통합되어 한 기구 안에서 믿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요 10: 38. 요17: 11, 23) 우리도 하나 되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것을 나누며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요 15장의 비유 말씀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2]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이는 두 번째 '히나'(*)가 이끄는 목적절이다.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어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묶어 '우리 안에'(*, 엔 헤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역으로 아버지와 아들도 우리들의 안에 와서 거처를 삼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점을 시사한다.
* 요 14: 2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3]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히나'(*)가 이끄는 세 번째 목적절은 앞의 두 목적절의 결과로 등장한다. 성도 공동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를 이룸으로써 세상이 이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시는 내용이다. 물론 이는 세상 전체가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 요 15: 20, 22, 24 –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다만 세상 사람 중에는 지금은 비록 불신 가운데 있지만 장차 믿음과 구원에 이르게 될 자들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성도들의 하나 됨은 성도들의 배후에서 하나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과 모든 은혜에 의한 것이다.
결국 성도들은 예수와 하나님 안에 거하는 풍성한 은혜와 연합(聯合)한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요 17: 22 내게 주신 영광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내게 주신 영광’은 주께서 본래부터 가지고 계신 신적 영광을 가리킨 것 같다. 제자들은 신적 구주께서 이루신 의와 사랑을 은혜로 받은 자들이다. 이제 그들은 그 의와 사랑을 가지고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1) 내게 주신 영광을
예수의 영광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했던 영광(5절)과 지상의 모든 사역을 다 마친 후에 아버지와 함께 누릴 영광들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예수는 마지막 설교(16: 14 주석 참조)와 대제사장적 기도 속에서 십자가와 영광을 분명하게 연결하셨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은 아들이 행하는 모든 사역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십자가를 통해 그 영광의 역설적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16: 14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당신이 죽으심으로 얻게 될 십자가의 영광까지를 의미한다.
(2)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제자들 역시 아들의 영광을 소유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영광이요 영원히 사랑 가운데 거하는 축복이다.
* 딤후 2: 12 -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 계 20: 4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아들의 영광이 아버지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것 속에서 나타났듯이 제자들의 영광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가운데서 나타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각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뒤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 눅 9: 23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믿음 안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순종과 겸손과 수난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성도들의 십자가이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라 제자됨의 사명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Barclay).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므로 획득한 영광을 세상 가운데서 실제로 나타낼 때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그곳에서 영원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24절).
2]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다.
* 딤후 2: 12 -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 계 20: 4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이유는 오직 하나가 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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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웃음으로 시작 한다면
안될 일도 좋은 결과로 돌아 올수있다 합니다.
미소는 행복을 만들고 역경 속에서
탈출 할수있도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오늘도 활짝 웃으시는 하루 되십시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