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는 있다.
경희대 법무대학원의 강효백 교수가 신간 '애국가는 없다'에서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애국가가 한민족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일부 극좌세력, 종북세력은 애국가를 부르지도 않고 있다. 그러면서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해야 한다고 하던 그 황망함이 뇌리에 생생하다.
강효백은 "애국가 첫 소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처럼 소멸과 퇴행의 서술어로 시작하는 국가는 지구 상에 없다"라며 '바다와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도 우리말과 노래에서 찾을 수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다만 일본에선 바다와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가사의 해체를 통한 분석을 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첫 구절을 보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이 가사는 만물이 소멸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하느님이 우리나라를 보호하고 도우신다는 의미다. 이는 세상의 종말 때까지 우리나라와 민족은 계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는 지구의 종말이 올때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불멸의 나라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바다와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도 우리말과 노래에서 찾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 단순하게 '山河', '山水'와 같은 한자로 사용되는 것을 두고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과 물을 표현함에 있어 산이 늘 앞서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런 것이 한국에서 정형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와 산', '강과 산' 이러한 표현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애국가 첫 소절에 '동해물'이 저 나오는 것은 동해바다의 물이 無限이라면 백두산이라는 산은 有限 또는 한정적이다. 다 크고 웅장한 것을 앞에 두는 것은 '大小', '龍頭蛇尾'와 같이 크고 중요한 것을 앞에 두는 것이 언어 습관이다. 이런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강효백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의 가사를 두고 '한국인에게 소나무가 주는 이미지는 선비인 반면, 일본인에게 주는 이미지는 철갑 입은 사무라이'라고 보고 있다. 애국가 가사를 이어서 보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로 되어 있다. 이 가사가 의미하는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서울의 남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폭풍우와 차디찬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푸른빛을 발하면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우리 민족의 기상과 같다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가 어찌 선비만의 것인가. 소나무는 사농공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백성을 의미하는 이미지다. '소나무'가 아닌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라고 했다면 일본 사무라이를 이미지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벚꽃이 없다. 그리고 소나무를 한국 선비만의 나무인양 말하고 일본의 사무라이를 의미하는 나무라고 하는 것은 소나무에 대한 대단한 폄훼이고 착각이며 억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바람서리', '공활'이라는 가사에 대해서도 '바람서리', '공활'과 같은 용어도 일본풍으로 '바람서리'는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을 뿐 아니라 구한말 이전 우리말과 글에도 전혀 없는 정체불명의 용어인 반면, 일본에선 '바람'이 일본인의 하느님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다음으로 중시하는 태풍의 신 스사노오를 상징하고 경술국치 이후 '서리'로 바뀐 '이슬'은 일왕이 베푸는 은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바람서리'는 '바람', '서리'로 즉 바람과 서리를 나누지 않은 것 같다. 나누지 않더라도 풍상(風霜)은 모질게 겪은 세상의 고생이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바람과 서리를 나누어 설명하면, 바람이 어디서 부느냐 어떤 바람이냐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봄바람, 하늬바람, 샛바람(방언), 높새바람, 칼바람 등이 많이 있다. 애국가에 나오는 바람은 한겨울 차디찬 북풍, 한여름 태풍과 같은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서리는 한자어로 霜이다. 서리가 내리면 모든 성장이 멈추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바람과 서리는 백성들의 삶은 孤單하고 艱難하게 만드는 시련이다. 우리 민족의 역시 이전부터 바람과 서리는 있어 왔고, 일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강 교수는, 일본의 태풍의 신은 알고 우리 민족이 매년 수회에 걸쳐 태풍이라는 바람에 고통스러워했다는 점이나 서리가 내리면 존재하는 자연물의 생존이 중단되거나 죽어가게 하는 서리를 본 적도 없다는 것인가. 바람도 서리도 우리 민족에게 수 천 년 동안 고통을 주었던 그런 자연의 현상이고 우리와 함께 했던 것이다. 공활이라는 것도 한자다. 우리 국어의 많은 부분이 한자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공활이라는 한자어를 먼저 사용하였던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의 한자어를 차용하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활도 수많은 한자어 중의 하나다.
강 교수는 애국가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대목을 두고서 '자유' 없이 '충성'이란 낱말만 나오는 국가는 '애국가'가 유일하며, 이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일방적 충성을 강요하는 군국주의 파시즘적 색채가 짙다고 말하고 있다. 이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나 마음씨로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사랑하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무릇 백성이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나라를 지킨다는 것인가. 나라가 망하면 백성은 뿔뿔이 흩어져 외국을 떠도는 방랑객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망한 후 세계 각국을 떠돌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면서도 오직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기를 갈망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인가. 나라 사랑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면 자유, 행복, 꿈꾸는 미래가 도래한다. 애국가 가사에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은 忠孝라는 것을 배웠고 실천해왔다. 그런데도 '忠'이라는 말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불현 듯 나타나서 군국주의 파시즘이 냄새를 풍긴다는 것인가. 수많은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국가들의 국호에는 '民主'라는 것이 들어 있다. 민주라는 것이 국호에 들어 있다고 그 국가를 민주국가라고는 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 보고서 현상을 판단하자고 하는 것은 보여주는 것만 보려고 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애국가의 가사를 해체하고 난도질하듯 언어를 분석하면서 일본과 연결하여 해석을 하려는 태도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강 교수는 법학 전공 교수다. 법학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애국가 가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국어학자들이 더 합리적이고 더 전문적일 것이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ps: 추후 애국가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