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지혜와 웃음의 보물 창고
- 한상남 -
어떤
사람이 캄캄한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반대쪽에서 등불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맹인이었다.
“당신은
맹인인데 왜 등불이 필요합니까?”
맹인이 대답했다.
“내가
이 등불을 들고 걸어가면 눈 뜬 사람이 내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온 세상의 나무들은
두려워하며 말했다.
“저 단단한
쇠가 우리를 해친다면 꼼짝없이 죽고 말겠지.” 그때
하느님은 나무들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자루를 제공하지 않는 한 쇠가 너희를
해치지는 못하리라.”
<탈무드>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다.
유대인
율법에 대한 학자들의 구전과 해설을 집대성한 <탈무드>는
성경인 토라와 함께 유대인 정신문화의 원천이 되어왔다.
그러나
한때 가톨릭교도가 유대인이 <탈무드> 읽는 것을 금지하고
수많은 <탈무드>를 압수하고 불태운 일도 있다.
당시에 검열관들이
<탈무드>의 내용을 찢거나 삭제한 곳이 많아서 지금 남아
있는 <탈무드>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주에
한 이스라엘 여성의 요청으로 함께 <탈무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원 학생이라는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해도 좋다는 승낙을 문서로 받고 싶어 했다.
그는 얼마 전
이스라엘의 한 신문에서 “한국에서는<탈무드>와 관련한 책이
수백 권이나 출간될 만큼 <탈무드>의 인기가 높고,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탈무드>를 가르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이 왜 그토록 <탈무드>를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적당한 결론이
도출되면 그것을 자기 논문과 연계하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어가
서툴고 나는 영어가 그다지 유창하지 않지만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내가
<탈무드>에 푹 빠져서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를
책장이 닳도록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상 깊은
이야기 중 하나로 ‘구멍 뚫린 보트
이야기’를 꼽았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호숫가에
사는 한 남자가 여름에 보트를 타고
낚시를 했다.
어느 해
여름이 끝나고 배를 끌어올리다가 배
밑창에 작은 구멍을 낸 그는
다음 해에
다시 사용할 때 수리를 하리라 생각하고
겨우내 배를 방치했다.
어느 날
마을의 칠장이가 찾아와서 일감을 달라고 청하자,
그는 보트에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했다.
다시 여름이 되자,
그의 두 아들이 보트를 타겠다고 졸라서
승낙했다.
아이들이
보트를 가지고 나간 지 두 시간쯤 지난 후에야
그는 보트에 뚫린 구멍이 생각났다.
혼비백산해서
호수로 달려가던 그는 무사히 돌아오는
두 아들을 보았다.
보트에는
누군가 꼼꼼하게 구멍을 막은
흔적이 있었다.
그는 칠장이를
찾아가 고마워하며 말했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보트의 구멍을 막아준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때로는
작은 선행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교훈이
인상적이다.
<탈무드>를
읽으며 종교적 해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지혜를 주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무드>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인 촌철살인의
수많은 유머는 얼마나 유쾌한가.
어떤
부자가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정원에서
파티를 열었다.
정원에
식탁이 놓이고 바비큐가 시작되었을 때,
초대받은 한 노인이 중얼거렸다.
“오래 살다
보니 이상한 일도 있지.
옛날에는
화장실이 집 밖에 있고, 식사는 집 안에서 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으니 말이야.”
- ‘가든파티’
초등학교
시절 밤마다 서로 상대의 곳간에 볏단을 날라다
주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읽었다는(물론 그때는 그것이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인 줄 몰랐다) 내 말에
그는
감격스러워하며 이스라엘에는 지금도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된 장소를 기념하고 있다고 했다.
첫댓글 오색으로 물들은 단풍잎도 한 잎 두 잎이 맥없이 떨어지며 겨울 준비에 들어갑니다.
온 세상 만물은 한때는 다 절정기에 이르렀다 쓸쓸한 삶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만고 불변의 이치이지요. 기온차가 심합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