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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 : 2 -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전 1 : 2 -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조직체로 이를 다시 무형교회와 유형 교회로 파악해야 한다.
무형교회는 교회의 정의 그대로 구원받은 사람의 무리를 가리키며, 유형교회는 예배를 위한 집회의 장소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조직과 제도를 가진 형태를 말한다.
그러면 성도란 무슨 뜻인가? 성도는 하기오스로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교회의 정의와 동일하다. 곧 교회와 성도라는 개념 모두는 세상과의 구별을 강조한다.
1] 고린도에 있는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에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로부터 80년 후인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 후 고린도는 급속히 재건되어 아우구스토 황제에 이르러 아가야(Achaia)의 수도가 되고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 이 도시는 상업 도시로 번창했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암담하고 무질서하였다.
그 도시인들은 다신교를 숭배하여 그들의 생활은 음란했다.
* 행 17: 16-22 -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따라서 '고린도 화하다'라는 말은 '아프로디트(Aphrodite) 여신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행한다.'라는 의미가 될 정도였다.
2] 하나님의 교회
바울이 고린도라는 지명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언급한 것은 기독교의 고귀한 이상과 우상 숭배의 허탄함을 극명하게 대조해 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Bengel).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물임을 보인다. 그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 벧전 2: 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다.
* 롬 1: 7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후원을 받는다.
바울에게는 한 무리의 신자들이 어디에서 집회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교파나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교회를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였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에게 속한 교회임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함을 잘 드러내 준다.
바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를 헬라 세계의 세속적인 '엑클레시아'(*)와 구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Mare).
당시의 세속적인 세상의 총회(엑클레시아)는 공공,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하기 위해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이는 집합체였다.
* 행 19: 39 -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3]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이다.
거룩하여진다는 동사는 하기아조(ἁγιάζω) 인데 구별한다는 뜻이 있다.
장소를 구별한 것이 성전이요 성소이다. 희생 제물은 성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고 거룩하여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신 인간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알고 그 희생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였다. 죄 때문에 사람은 불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심히 부패한 죄인들이며 어찌 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다. 죄가 없으신 그가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게 되었다. 죄 씻음과 거룩하여짐이 구원이다.
죄가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었고 죄 씻음을 받음은 영생과 행복과 평안의 원인이다. 성도라는 명칭은 바로 이런 자들에게 붙여진 매우 존귀한 이름이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바울은 본 서신에서 예수님을 약 68회 ‘주’라고 불렀다. ‘주’라는 말은 주인, 소유자, 하나님 등의 복합적 의미가 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고백이며 그에 대한 복종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이 고백은 사람이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은 표가 된다.
* 롬 10: 9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거룩하여지고' 의 헬라어 '헤기아스메노이스'(*)는 완료형 분사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상태가 현재에도 유지됨을 의미한다(Grosheide).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구속(救贖)을 다 이루셨다.
* 요 19: 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는 우리의 의와 거룩이 되셨다.
* 롬 10: 4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고전 1: 30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중세 시대에 가려졌었으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던 성경적 복음이다.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히 10: 10, 14 -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참 자유와 평안이 있다.
* 갈 5: 1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롬 5: 1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거룩하다고 불렸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지칭하여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렀다(30절. 6: 11).
바울이 여기에서 고린도인들을 '성도'와 '거룩하여진' 자들로 칭했다고 해서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참 신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거룩하여졌다는 말은 우리들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반영한 말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교회를 거룩하게 여기셨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그들의 관계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회는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고린도시가 부패했던 것처럼 교회도 교리와 실천에 있어서 상당히 부패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하고 있다(Calvin).
4]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만 문안하지 않고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문안하였다.
'각처에서'라는 말은 이 서신이 고린도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서도 읽혀진 것을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본서와 같은 특정한 내용의 서신, 다시 말하면 특정한 교회의 개별적인 문제를 취급한 편지가 일반 교회를 상대로 하여 쓰였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한다(Robertson, Plummer).
그러나 본 서신이 비록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교회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배제(排除) 할 수 없다(Lightfoot).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바울의 서신은 하나님의 교회의 근본적인 성격을 원리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1) 바울은 그가 문안하는 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예배당 건물을 가리키지 않고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곧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 벧전 2: 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그러했듯이, 신약시대에 교회가 그러하다.
* 롬 1: 7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후원을 받는다는 의미에서도 하나님의 교회이다.
* 시 23: 1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이다.
죄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심히 부패한 죄인들이며 어찌 할 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다.
죄 없으신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게 되었다.
죄 씻음과 거룩하여짐이 구원이다. 죄가 불행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진노 이유이었고, 죄 씻음은 영원한 행복과 평강의 원인이다.
‘성도’ 곧 거룩한 자라는 이름은 성도에게 가장 존귀한 명칭이다.
‘거룩하여지고’라는 원어(헤기아스메노이스)는 완료 분사이다. 그것은 ‘거룩하여졌고’라는 뜻이다.
우리는 법적으로 이미 완전하게 거룩하여졌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 요 19: 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속죄 사역과 완전한 의와 거룩을 다 이루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셨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義)가 되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중세 시대에 가리어졌었으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던 성경적 복음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진리를 밝히 증언한다.
* 단 9: 24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롬 10: 4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히 10: 10 -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헤기아스메노이)[완료시제].
* 히 10: 14 -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테텔레이오켄)[완료시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얻는 것이 구원이다. 여기에 참된 자유와 평안과 능력이 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칭하고 있다. 헬라어로는 하기오스(ἅγιος) 란 말인데 이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봉헌된 물건이나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로마서 12장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합리적인 예배다.
성도는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다움이 나타나야 한다.
(2)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만 문안하지 않고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문안하였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바울은 본 서신에서 예수님을 68회나 ‘주’라고 불렀다.
‘주’라는 말은 주인, 소유자, 주관자, 왕, 하나님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 곧 우리의 소유자, 주관자, 왕이시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그러나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그것은 예수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이 고백은 사람이 죄와 파멸로부터 구원받은 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공동적(共同的)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여기에 교회의 공동성(catholicity)과 세계성이 있다.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有無識), 피부 색깔을 막론하고 구원받아 주를 믿게 된 모든 이들의 모임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가족이요 한 형제들이다. 여기에 우리의 겸손함과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우리는 외적 조건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자를 누구든지 영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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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길에는 꽃길이 따로 없습니다.건강 하면 꽃길 입니다.오늘도 줄겁고 신나게
화이팅 하세요.인연 이란 산길 같아서 매일 오고 가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 해진 답니다.
오늘도 서로 안부를주고 받으며 건강 잘 챙기시 고요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 합니다.가는곳 마다 예쁜 사랑 가슴에 담고 행복 넘치는 하루 되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