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 편지
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단풍나무 빛깔입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골고루 다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는 나에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붉은 뺨을 지닌
바람이 내게 와서 말합니다.
무어든 너무 잘하겠다고 욕심부리지 마세요.
사람들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그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 가을엔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고 아껴두기로 합니다.
문득 어머니가 그립고
어릴 적 동무들을 보고싶어하는 나에게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바람이 말을 건네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 해
언젠가는 마침내 올 지상에서의 이별이 힘들더라도
이 가을엔 사람과 삶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는 용기를 지니려고 합니다.
내 안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무어라 이름 지울 수 없는 빛깔입니다.
하얀 나비와 노란나비의 중간 쯤일 것 같은 빛,
어쩌면 슬픔을 닮은 눈부신 빛.
바람은 나에게 자꾸만 속삭이네요.
이제는 진정 서늘해져야지요.
가벼워져야지요.
다른 존재를 부수어버리는 죽음의 바람이 아니라
키우고 익히는 생명의 바람이 되어 멀리 떠나야지요.'
나는 이제 어디로 숨을 수도 없네.
혼자서 생각하며 내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습니다.
이 가을을 한껏 겸허하고 성실하게 살지 않으면
내 안의 바람이 가만 있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고 슬그머니 겁이 납니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어떤 빛깔일까요?
담백한 물빛? 은은한 달빛?
아니면 향기롭게 익어가는 탱자빛?
터질듯한 석류빛?
무슨 빛깔이라도 좋으니
아름답게 가꾸시고 행복하시고
제게도 좀 보내주실래요?
우리 모두 바람 속에
좀 더 넓어지고 좀 더 깊어져서
이 가을이 끝날 때 쯤 다시 만나요.
첫댓글 중간쯤인 그빛.가슴에 와 닿는글 입니다 건강한 가을을 보내세요.
코스모스와 함깨 은은한 달빛으로 불어온 바람의 편지 감사히 잘 받았어요. 석류빛처럼 행복한 가을이 되세요.
자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이별의 고배를 마시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