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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을 향한 명령
말 2:1-9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말 2:1-9 / [제사장들에 대한 경고]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는 이 경고를 들어라. 2) `만일 너희가 내 말을 듣고 순종하여 너희의 행실을 고치며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겠다. 또 이제부터는 너희에게 내가 본래 주고자 하였던 복들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온갖 저주를 내리겠다. 그렇다. 나는 이미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내게 그토록 중요한 것들을 너희가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3) 보라, 내가 너희의 팔을 자르고, 너희의 얼굴에는 너희가 희생제물이라고 바치던 병든 짐승들의 오물을 끼얹고, 너희가 희생제사를 바친다고 모여서 잔치를 벌일 때마다 쌓이는 쓰레기더미 위에 너희를 던져 버리겠다. 4) 그때에는 내가 왜 그토록 무서운 경고를 너희에게 해두었는지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레위의 후손들과 체결한 계약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5) `나는 이 계약으로 레위의 후손들에게 생명과 평안을 보장하였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그 대신에 그들은 나를 존중하기로 약속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실행하였다. 그들은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내 앞에 나아왔다. 6) 그들은 내게서 받은 가르침을 그대로 백성에게 전하였다. 그것을 거짓으로 꾸미거나 자기들의 마음에 맞도록 고치지 않고, 지극히 충실하게 나를 섬겼다. 그들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사는 것으로 나와 동행한 사람들이다. 이로써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죄악에서 떠나 살도록 도와주었다. 7) 바로 여기에 ㄱ) 성직자들의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내 마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사람들은 내가 가르치는 올바른 인생길을 그들에게 물어서 알아야 한다. 그들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임명한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다. (ㄱ. 제사장) 8)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 너희는 하나님의 길에서 떠난 성직자들이다. 너희는 많은 사람들이 죄악에 빠져서 죽도록 가르쳤다. 내가 레위의 후손과 체결한 계약도 너희가 위반하고 파괴하였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9) `너희가 나를 따르지 않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나도 너희가 온 백성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도록 하겠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복과 명예를 빼앗기고 맙니다.
제사장들에 대한 저주(1-3) 하나님께서는 1장에서 제사장들의 죄를 지적하셨고, 이에 근거해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그들이 말라기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는 말씀은 제사장들의 불명예와 추방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희생되는 동물의 체내에 똥이 있었고, 이 똥은 진 밖에서 불살랐습니다(출 29:14). 회개하지 않는 제사장들은 더러운 똥처럼 진 밖으로 추방될 것입니다.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4-7) 제사장들의 명예와 복은 레위 언약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자신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오직 레위 지파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민 18:4-7). ‘생명과 평강의 언약’의 핵심은 희생 제사를 통해 백성의 죄가 사함 받는 속죄의 은혜입니다.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백성을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예표합니다. 곧 제사장들이 드리는 희생제사 안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제사장 지파가 그 사역을 소홀히 하여 이 큰 명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제사장 직분은 명예로웠습니다. 각 지파에 흩어진 제사장들이 진리로 백성을 가르치고, 삶의 모범을 백성에게 보이고,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제사장들의 얼굴에 똥이 발라질 것입니다.
옳은 길에서 떠난 제사장들(8-9) 제사장들은 올바른 제사행위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생제사 가운데 내포된 속죄의 은혜를 오히려 가리었고, 이로써 많은 백성들이 율법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희생제사 가운데 내포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였고, 도리어 인간적인 편견으로 율법의 외적인 행위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적용: 제사장들의 직분이 가졌던 명예로운 내용을 살펴보시고, 오늘날 성도들의 명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1828년 러시아에 아주 못생긴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넓적한 코, 두꺼운 입술, 작은 회색 눈, 큰 팔다리를 늘 비관하며 ‘나는 너무 못 생겨서 도저히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자라면서 인생의 행복은 외모에 있지 않고 내면의 풍요로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사랑에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특히 소년은 어른이 된 후 신앙의 가치가 참된 미라는 것을 알았고 이 신념이 승화된 명작을 남겼습니다. 이 소년이 ‘부활’의 작가 톨스토이입니다.
< 설 교 >
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
말 2:1-9 / 피영민 목사
서 론
“말라기”가 사람의 이름을 뜻하는지 아니면 문자 그대로 ‘나의 사자’라는 일반 명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말라기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430여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라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함과 순종함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반항심이 그들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자 제사장들이 극도로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은 율법을 가르치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며 백성들이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고 죄사함을 받아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부패하여 앞장서서 악을 조장한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축복을 받을지 저주를 받을지는 그 사회 종교 지도자들의 삶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목사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별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목사가 아니니까 이 말씀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 5장 10절 그리고 20장 6절을 보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과 9절을 봐도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말 2:1).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명령하실 수도 있는데 직접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급하고 간절한지 우리는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총 4가지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Ⅰ.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 2:5). 하나님께서 레위와 세우신 생명과 평강의 언약은 민수기 25장 12~13절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의 방황을 거의 마쳤을 때 싯딤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한 것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다 넘어가서 바알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염병을 내리셔서 이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남자 하나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장막으로 음행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그 장막으로 돌진해서 두 사람의 배를 한꺼번에 꿰뚫어서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의 행동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 25:11~13).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미디안의 여인과 이스라엘 남자를 죽이지 아니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만 사천 명이 아니라 백만 명도 더 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느하스 덕분에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백성들에게서 염병도 거둬가셨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올바로 수행할 때 백성들이 속죄함을 입고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서에서 제사장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책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works)과 하신 말씀(words)을 보고 존경해야 합니다. 등산을 가서 산을 보면서도, 하늘 위에 태양을 보면서도, 밤에 별과 달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십니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참으로 중요한 분이시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있고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찬송합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2). 쉽게 말하면 “어린양은 존귀하도다”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냐고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알게 해주신 성령님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존귀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업신여기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멀리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축복받고 존귀한 인생이 되는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 사람을 멸시하십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존귀하게 해주시고 그 사람을 자랑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나를 비교해 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하시지만 나는 부정하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지만 나는 부패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높으신 분이시지만 나는 낮은 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나는 약하고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지만 나는 무지하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분이시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할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5). 이사야 선지자 같은 사람도 자신이 부정하여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중간에 돌이켜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첫째, 우리 속에 하나님을 존경하고 둘째,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경외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Ⅱ. 제사장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말 2:6~7). 제사장들은 언어가 중요합니다. 제사장들은 언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진실입니다. 제사장들은 정직해야 됩니다. 진리를 말해야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5).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골 3:9). 제사장들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정직한 언어, 진실한 언어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뽑을 때도 거짓말하는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정결한 말을 해야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하자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온통 욕설과 부정한 언어로 가득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나왔다가 하도 욕설을 많이 해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을 봐도 언어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세대 속에서도 성도들은 정결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덕을 세우는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언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신약성경에서 특히 야고보 사도는 사람의 혀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에 관하여 경고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6). 지옥불이 사람의 혀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 남을 해치는 말, 죽이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입에서 지옥불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옥불이 남을 태울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의 바퀴도 불사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 복음을 증거 하는 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말을 사용하게 되기 바랍니다.
넷째, 은혜스러운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골 4:6). 제사장들은 은혜스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Ⅲ. 제사장들은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말 2:6).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첫째, 기도하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필요한 일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힘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해야 영적인 힘이 생기고 생명력을 얻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만 나오고 기도회에 한 번도 안 나오시는 분들은 그러지 마십시오. 교회가 멀어서 못 나오시면 혼자서라도 집에서 꼭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도와 성경 읽기를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면서 자꾸 다른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저도 경험해보니까 가끔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가끔이지 매번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이 매번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100% 이단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셋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에 정성을 다하시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하든 못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정성 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역장의 직분을 내게 맡기셨는데 1년 내내 구역예배 한 번도 안 드리고 앞으로도 드릴 계획이 없으면 그만 두셔야 합니다. 구역예배 드리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안 오면 혼자서라도 말씀 보면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십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거기서 축복과 은혜와 능력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삶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푸른 초장을 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Ⅳ. 제사장들은 “복음 전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말 2:6~7)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여호와의 사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대사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대사냐? 사람들을 만나서 “너희는 하나님과 원수로 지내지 말고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렇게 복음을 증거하는 대사입니다. 만약 외국에 대사를 파송했는데 가서 놀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대사는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합니다. 대사는 국가가 명한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과 원수로 지내지 말고 화목하라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인 10월 14일은 새생명 초청잔치의 날입니다. 우리가 대사의 사명을 수행하는 주일입니다. 이번 주 집에 가실 때 전도지를 가지고 가서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십시오.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나눠주시고 전도축제가 있으니까 오시라고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 지금 부탁하시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말 2:2). 복인 줄 알고 누리던 것들이 도리어 고통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많아서 복인 줄 알았더니 다 속을 썩여서 고통이 되고, 돈이 많아서 복인 줄 알았더니 그것으로 인해서 불안하고 고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 2:3). 종자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식물의 씨앗이라는 의미와 둘째, 사람의 후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농사를 해서 씨를 뿌려도 농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인지 자식을 낳으려고 해도 낳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둘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않으면 그 후손들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2장 3절 중반에는 희생의 배설물을 얼굴에 바른다고 나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기 전 화장을 하면서 화장실에서 퍼다 바른 분이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냄새나고 수치스럽겠습니까? 원래 제사장이 제물을 드릴 때는 제물의 배설물들은 성전 바깥으로 나가서 태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네 가지 사명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고 넷째,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과 평강의 언약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말라기 (3) Malachi 2:1-9 / 최정인 목사
도입 Introduction: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Now if you obey me fully and keep my covenant, then out of all nations you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Although the whole earth is mine, you will be for me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출애굽기 Exodus 19:5-6a).
지난 주일의 말씀도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말라기의 예언의 직접적인 대상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대할 때 거의 모든 본문을 세 가지 단계로 봅니다. 관찰, 해석, 적용이죠. 잘 읽고, 해석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 삶으로 옮긴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관찰하고 해석하면 그 대상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제사장이므로,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해석은 객관적으로 하지만, 적용은 주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오늘 여기서 나와 우리 신앙공동체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들어야 합니다.
제가 주보에 인용한 출애굽기 19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주일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창세기 12장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탄생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이후, 그들과 언약(계약)을 맺으시기 위한 핵심이 되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셔서 이스라엘에게 전할 말씀을 하십니다.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 입장에서 진술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그러면 이것을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진술하면,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다.” 세상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많지만, 오직 여호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죠. 세상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5절을 읽어보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다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언약의 조건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여기에서 관심을 집중할 단어가 바로 제사장 나라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백성에게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대표자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 감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의 대리자요,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을 때, 백성은 바로 온 세상 모든 민족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또 제사장 지파로 삼으셨는데, 그 지파가 바로 레위 지파입니다. 또 레위 지파 모두가 다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 지파의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이 됩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서 성전의 일을 수행합니다. 또 아론 자손 제사장을 위한 제사장이 있는데, 그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말라기를 세우셔서 당대의 제사장들을 하나님과의 바른 언약 관계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동안 이스라엘은 생명과 함께하는 평화, 평화와 함께하는 생명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1. “마음” “Heart” (1-3)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1 "And now this admonition is for you, O priests.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아론 자손만이 할 수 있기에, 세습되는 계급입니다. 25세에 제사장직에 나가서 50세가 되면 은퇴합니다. 이들이 제사장으로서 성전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이전의 제사장을 통하여 올리브기름을 부음으로 제사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말리기 같은 예언자도 역시 기름 부음을 받고 성직에 나아갑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세습되는 직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기존하는 제도권에 속합니다. 반면에 예언자는 그 제도권이 바르게 돌아가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들어서 예언자로 삼으십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예언자로 택하시면 성령을 주시고, 그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항상 예언을 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다.”로 시작합니다. 이제 말라기의 시대, 그러니까 주전 430년경에 하나님은 말라기를 예언자로 세우셔서 당대의 제사장들과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2 If you do not listen, and if you do not set your heart to honor my name," says the LORD Almighty, "I will send a curse upon you, and I will curse your blessings. Yes, I have already cursed them, because you have not set your heart to honor me.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기왕에 주신 복을 저주로 바꾸어 주실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사실은 다 동일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1)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말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종교적이며 동시에 윤리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의 형태로 주어졌지만, 그 상당 내용은 윤리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부터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성경을 안 읽고, 설교를 안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를 싫어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불순종입니다.
(2)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마음이 무엇일까요? 마음은 개념입니까, 존재입니까? 영, 혼, 영혼, 마음, 인격, 속사람 이 모든 것은 어느 언어, 어느 문화에서나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의하고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명기 30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설교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1)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바다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14절을 볼까요?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까 말씀 그 자체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쉬운 것이고, 반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려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또 가장 어려운 것도 역시 마음의 변화입니다. 한 사람의 자연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영적 탄생의 신비에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작동원리(mechanism)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순종해야 되겠다는 결단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순종하려는 생각이 없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으로서의 씨가 떨어져도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도 없이 길에 뿌려진 씨처럼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고 맙니다.
(3)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까요? 왜 마음에 두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이 하나의 백성이 된 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는 명목상의 이스라엘이기는 하겠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소망과 결단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정말로 내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3 "Because of you I will rebuke your descendants; I will spread on your faces the offal from your festival sacrifices, and you will be carried off with it.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제사장들이 받을 저주는 무엇입니까?
(1)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후손에게까지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2)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더 나아가 하나님은 말라기의 입을 통하여 인간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 중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희생 제사를 받으시기는커녕 그 희생의 오물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겠다고 하십니다.
(3)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결국 제사장의 얼굴이 더러워졌으므로, 그 오물을 버리는 것처럼 제사장들도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버림을 받고, 그들의 후손이 버림을 받고, 그들이 드리는 희생도 역시 받지 않으십니다. 총체적인 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예배도 받지 않으시고, 예물도 받지 않으시고, 완전히 다 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2. “언약” “Covenant” (4-6)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4 And you will know that I have sent you this admonition so that my covenant with Levi may continue," says the LORD Almighty.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제사장 지파로 삼으신 것은 그들이 제사장 지파로서의 역할을 잘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도록 하심입니다. “레위와 세운 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레위 지파를 제사장으로 하여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은 순종함으로 그 살아있는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는 의미입니다.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5 "My covenant was with him,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and I gave them to him; this called for reverence and he revered me and stood in awe of my name.
하나님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과 평강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생명이 중요하죠? 그러나 평강이 없다면 생명은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되 평강과 함께 주십니다. 평강은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힌 상태입니다. 평강의 반대말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부족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처럼 평등한 관계도 있지만, 주인과 노예처럼 주종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평등 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것, 이것이 경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는 어떻게 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을 인도했을까요? (1)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레위 지파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레위 지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6 True instruction was in his mouth and nothing false was found on his lips.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uprightness, and turned many from sin.
(2)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하나님이 제사장 지파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진리의 법입니다. 다시 정리합시다.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서면 백성의 죄를 고백하여 사함을 받게 하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도록 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표하여 백성 앞에 서면, 백성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을 선포하고 그 법으로 살도록 인도합니다. 제사장은 입으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백성들 가운데 살면서 그 말씀을 행함으로 본을 보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정확하게 오늘날의 목사와 신자, 그리고 더 나아가 신자와 세상 사이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3) “그의 입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제사장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은 불의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바를 때에는 이렇게 제사장의 역할이 바를 때였고, 그 기능이 바르게 작동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말라기를 통해서 그러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4)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이미 말씀드렸듯이 제사장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평화롭게 그리고 바르게 행동합니다. 이로써 제사장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백성들이 압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설교 시간만 목사가 아니라, 언제나 목사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만 성도가 아니라 그가 있는 모든 곳에서 성도입니다. 사람 사이에 평화의 도구가 되며,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일하심을 드러냅니다.
(5)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면 그 결과는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바르게 역할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들이 제사장 나라 역할을 바르게 함으로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 속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신 결과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전 430년경의 말라기 시대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할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언자 말라기를 세우셔서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3. “율법” “Law” (7-9)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7 "For the lips of a priest ought to preserve knowledge, and from his mouth men should seek instruction - because he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Almighty.
이제 하나님은 과거의 제사장에서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으로 돌아와서 제사장에게 하나님과 백성이 기대하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1)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제사장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뜻이죠.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2)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백성이 제사장에게서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많은 말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듣는 설교가 아닙니까? 주일에 우리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하여 실제 삶에 적용하기를 결단하도록 우리 마음에 역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말라기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제사장도 역시 하나님을 대표하고 대언하는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정의입니다.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8 But you have turned from the way and by your teaching have caused many to stumble; you have violated the covenant with Levi," says the LORD Almighty.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은 어떠했습니까?
(1)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제사장이 하나님이 정하신 옳을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가장 나쁜 것만 골라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합니다.
(2)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그 결과는 제사장 레위 지파만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율법을 거스르게 만듭니다.
(3)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결국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 레위의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깨뜨린 장본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제사장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9 "So I have caused you to be despised and humiliated before all the people, because you have not followed my ways but have shown partiality in matters of the law."
이제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선고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1)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길, 즉 율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그 길을 깼습니다.
(2)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제사장은 재판관의 역할도 합니다. 그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장의 역할을 할 때에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편견과 편애와 차별대우를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성에게 좌절감을 주고, 하나님의 성호를 더럽힙니다.
(3)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마땅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할 제사장이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버렸을 때, 결국 하나님과 그들,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깨집니다. 그리하여 백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세상 앞에 선 목사와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결론 Conclusion: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belonging to God” (베드로전서 1 Peter 2:9a)
제가 주보에 인용한 베드로전서 2:9를 봅시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요, 왕 같이 영광스런 제사장들이요, 이스라엘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나라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고 들으면서 저부터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돌아섬으로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대표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KCCBR, July 29, 2018 제30주일 생명과 평강의 언약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말라기 (3) Malachi 2:1-9 도입 Introduction: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Now if you obey me fully and keep my covenant, then out of all nations you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Although the whole earth is mine, you will be for me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출애굽기 Exodus 19:5-6a). 지난주일의 말씀도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말라기의 예언의 직접적인 대상은 제사장들입니다. As last week’s sermon, the verses we read today from book of Malachi were directly written for priests. 우리가 성경 말씀을 대할 때 거의 모든 본문을 세 가지 단계로 봅니다. When we study bible, we usually view in three steps. 관찰, 해석, 적용이죠. Observation,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잘 읽고, 해석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 삶으로 옮긴다는 뜻입니다. In other words, we need to read the bible, understand and apply in our lives. 오늘 말씀을 관찰하고 해석하면 그 대상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제사장이므로,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So if we observe and interpretate today’s verses were written to the priests of Malachi era then we read the bible wrong.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Then the bible become insignificant to our lives. 관찰과 해석은 객관적으로 하지만, 적용은 주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While you need to observe and interpretate objectively, but the application needs to be done subjectively.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오늘 여기서 나와 우리 신앙공동체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들어야 합니다. We need to listen through the verses given to them at that time to know what is the message to me and our church community. 제가 주보에 인용한 출애굽기 19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Let’s turn to the book of Exodus chapter 19. 우리는 지난주일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창세기 12장 말씀을 보았습니다. Last week, we looked at the Genesis chapter 12 where through Abraham all people on earth will be blessed. 아브라함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했습니다. Abraham as one person he obeyed the calling of the Lord.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탄생했습니다. As a result of that there became the Israelites.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이후, 그들과 언약(계약)을 맺으시기 위한 핵심이 되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Exodus chapter 19 contains the key messages to make covenant with the Israelites after the Lord saved Israelites from Egypt.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셔서 이스라엘에게 전할 말씀을 하십니다. The Lord called Moses to Mount Sinai and said “this is what you are to tell the people of Israel.”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 됩니다. Through covenant, The Lord becomes Israel’s Lord and Israel become Kingdom of the Lord. 이것을 하나님 입장에서 진술하면 어떻게 될까요? What happens if we restate this sentence in the Lord’ perspective?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I am your GOD and you are my people.” 그러면 이것을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진술하면,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다.” And if we restate this sentence in the Israelites’ perspective, “LORD Almighty is our God and we are his people” 세상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많지만, 오직 여호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죠. This statement confess there are many beings called gods but only the LORD Almighty is GOD 세상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백입니다. There are many nations but only the Israel is the Lord’s people. 그런데 5절을 읽어보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But if you read verse 5, the Lord is talking about the whole earth. 세상이 다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십니다. He said “The whole earth is mine”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님이시지만, 동시에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The Lord is the Godof the Israel but at the same time he is the Lord of the whole earth.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Through the covenant with the Lord, Israel will be the treasured possession out of all nations. 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Israel will be Kingdom of Priests. Israel will be holy nation.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언약의 조건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Covenant relation with the Lord can only be maintained by obeying fully and keeping the covenant. 여기에서 관심을 집중할 단어가 바로 제사장 나라입니다. There is key word “Kingdome of Priest”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Priest is the being between the Lord and people. 백성에게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대표자입니다. Toward the people, it is the Lord’s delegate and the Lord’s representative.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 감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의 대리자요, 대표자입니다. Toward the Lord, the priest will sacrifice to redeem the sins of the people, and to sacrifice to give thanks.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을 때, 백성은 바로 온 세상 모든 민족입니다. When the Lord made the Israel the Kingdom of Priest, people include whole earth. 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또 제사장 지파로 삼으셨는데, 그 지파가 바로 레위 지파입니다. Out of all the Israelites, one tribe to be priest tribe that is the Levites. 또 레위 지파 모두가 다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But not all Levites become priest. 레위 지파의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이 됩니다. Only the descendents of Aaron out of the Levites become priest.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서 성전의 일을 수행합니다. The Levites help the priest to do the sanctuary work. 또 아론 자손 제사장을 위한 제사장이 있는데, 그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Also there is priest for the priests descendants of Aaron, that is the high priest. 하나님은 예언자 말라기를 세우셔서 당대의 제사장들을 하나님과의 바른 언약 관계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The Lord used Malachi to priests to return to the rightful covenant relationship with the Lord.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The Lord’s covenant made with the Israelites is “the covenant of Life and Peace”.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동안 이스라엘은 생명과 함께하는 평화, 평화와 함께하는 생명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Israel had the Life with Peace and Peace with Life while the Lord’s covenant was kept. 오늘 우리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We will have sermon titled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1. “마음” “Heart” (1-3)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1 "And now this admonition is for you, O priests.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아론 자손만이 할 수 있기에, 세습되는 계급입니다. In Israel, the priest is the position only the descendents of Aaron can serve. 25세에 제사장직에 나가서 50세가 되면 은퇴합니다. You start serving priest when you turn 25 and retire when you turn 50. 이들이 제사장으로서 성전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이전의 제사장을 통하여 올리브기름을 부음으로 제사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Before serving as priest in the sanctuary, the Lord will have the previous priests ordain by pouring the olive oil. 말리기 같은 예언자도 역시 기름 부음을 받고 성직에 나아갑니다. Likewise, Malachi was also ordained by pouring of olive oil. 하지만 예언자는 세습되는 직분이 아닙니다. However Prophets are not position that you have be born into. 그러니까 제사장은 기존하는 제도권에 속합니다. So the priests belong to the existing system. 반면에 예언자는 그 제도권이 바르게 돌아가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들어서 예언자로 삼으십니다. On the other hand, prophets are made when the existing system is not working correctly.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예언자로 택하시면 성령을 주시고, 그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Anyone can be a prophet when the Lord choose and the Lord put his word to the mouth of prophet. 그래서 예언자들은 항상 예언을 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다.”로 시작합니다. Therefore all prophets start with “The Word of The Lord”. 이제 말라기의 시대, 그러니까 주전 430년경에 하나님은 말라기를 예언자로 세우셔서 당대의 제사장들과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During the time of Malachi about 430 BC, the Lord speaks to the priests of the time and furthermore to the Israelites.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2 If you do not listen, and if you do not set your heart to honor my name," says the LORD Almighty, "I will send a curse upon you, and I will curse your blessings. Yes, I have already cursed them, because you have not set your heart to honor me.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기왕에 주신 복을 저주로 바꾸어 주실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The Lord talks about three conditions that cause the blessing to be cursed for the priests. 이 세 가지 조건은 사실은 다 동일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All these three could be the same. (1)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말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If you do not listen,” The Lord is connected to Israel through the words in the bible.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종교적이며 동시에 윤리적 관계입니다.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Israel is religious and at the same time, it is ethical.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의 형태로 주어졌지만, 그 상당 내용은 윤리적인 내용입니다. Although the words of the Lord was given in the form of law, the majority is about ethics.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The Lord wants his people to reflect the God’s character and therefore that is his word and his law.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부터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But the Priests of Israel did not listen to his words.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성경을 안 읽고, 설교를 안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를 싫어했다는 뜻입니다. If we convert this to today’s word, it doesn’t mean not reading the bible nor not listening to the words, rather, they hate to obey.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불순종입니다. This is intentional disobey to the words to the words of the Lord. (2)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If you do not resolve” the reason they intentionally disobey is their heart left the Lord.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무엇일까요? The words of the Lord exist in the heart of the Israelites. What is heart? 마음은 개념입니까, 존재입니까? Is heart concept of existence? 영, 혼, 영혼, 마음, 인격, 속사람 이 모든 것은 어느 언어, 어느 문화에서나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Spirit, soul, heart, personality, inner person, all these things are not very clearly distinguished in any language or any culture. 그만큼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의하고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So it is very hard to define or distinguish in scientific, psychological, philosophical and in religious way. 신명기 30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설교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Deuteronomy chapter 30, Moses described the Lord’s word in his last sermon to the Israelites.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1) “Now what I am commanding you today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or beyond your reach” (11)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바다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It is not up in the heaven nor is it beyond the sea. 14절을 볼까요? Let’s turn to verse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No, the word is very near you; it is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so you may obey it.” 그러니까 말씀 그 자체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쉬운 것이고, 반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려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Therefore the words themselves are not hard to obey but rather if you have heart to obey the words of the Lord then it is easy to obey but if you have no heart to obey then it is very difficult.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So the most important thing is our heart.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또 가장 어려운 것도 역시 마음의 변화입니다. You think it is the easiest thing to change heart but also it is the most difficult thing to change heart. 한 사람의 자연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영적 탄생의 신비에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작동원리(mechanism)가 있습니다. One natural human reborn to child of the Lord then there will one’s heart will believe the Jesus as the Lord and will confess with mouth.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순종해야 되겠다는 결단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Therefore, when we hear the words of the Lord, we determine to obey the word of the Lord our heart start to change. 그러나 순종하려는 생각이 없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으로서의 씨가 떨어져도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도 없이 길에 뿌려진 씨처럼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고 맙니다. If there is no heart to obey, the word of the Lord planted as seed in the heart of person will not do anything and just like the seeds put on the road birds will eat them. (3)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까요? “If you do not honor my name:” Why do we not listen to the words of the Lord? 왜 마음에 두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Why not keep the Lord in heart? Because there is no heart to honor the Lord.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이 하나의 백성이 된 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핵심입니다. The key point of the covenant between the Lord and the Israelites is The Lord made the Israel his people and Israel became the Lord’s people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는 명목상의 이스라엘이기는 하겠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But if there is not heart to honor the Lord, this so called Israel is not really Israel at all. 우리도 마찬가지죠. Same thing applies to us.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소망과 결단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정말로 내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If we listen to the words of the Lord and keep it in the heart but there is no hope and resolve to honor the name of the Lord, although we come to church and worship we should be worried to see if we are the ones the Lord choose and born again children of the Lord.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You might be Christians but not really but nominal Christians.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3 "Because of you I will rebuke your descendants; I will spread on your faces the offal from your festival sacrifices, and you will be carried off with it.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제사장들이 받을 저주는 무엇입니까? Now what are the curses that priests, whose heart left the Lord? (1)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후손에게까지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Because of you I will rebuke your descendants” The Lord said the descendants of the priests will get the anger of the Lord. (2)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I will spread on your faces the offal from your festival sacrifices 더 나아가 하나님은 말라기의 입을 통하여 인간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 중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Furthermore, the Lord used the one of the most hated words of human through the mouth of Malachi. 희생 제사를 받으시기는커녕 그 희생의 오물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겠다고 하시니다. Instead of receiving the festival sacrifices, he said that he will spread on your faces the offal. (3)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and you will be carried off with it” 결국 제사장의 얼굴이 더러워졌으므로, 그 오물을 버리는 것처럼 제사장들도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Since the face of the priest was dirty, as you would carry off the offal priests will also be carried off. 제사장이 버림을 받고, 그들의 후손이 버림을 받고, 그들이 드리는 희생도 역시 받지 않으십니다. Now the priests are abandoned and also the descendants will be also abandoned and the sacrifices they offer will not be accepted. 총체적인 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That is very difficult time.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예배도 받지 않으시고, 예물도 받지 않으시고, 완전히 다 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If this is applied to us, then the Lord will not accept our worship, and our offerings, we are completely lost.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We need outright repentance. Where do we begin? 2. “언약” “Covenant” (4-6)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4 And you will know that I have sent you this admonition so that my covenant with Levi may continue," says the LORD Almighty.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제사장 지파로 삼으신 것은 그들이 제사장 지파로서의 역할을 잘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도록 하심입니다. As I mentioned before, the Lord chose the Levites to be Priest tribe so they can lead the Israelites to be righteous in front of the Lord. “레위와 세운 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레위 지파를 제사장으로 하여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은 순종함으로 그 살아있는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는 의미입니다. “That my covenant with Levi may continue,” means The Lord and the Israelites can use Levites to provide the words of the Lord and Israel would obey therefore the living relationship may continue.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5 "My covenant was with him,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and I gave them to him; this called for reverence and he revered me and stood in awe of my name. 하나님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The Lord said “My covenant with Levi, a covenant of life and peace.” 생명과 평강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Life and peace always need to be together. 먼저 생명이 중요하죠? First the life is more important? 그러나 평강이 없다면 생명은 고통입니다. But the life without the peace is pain.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되 평강과 함께 주십니다. The Lord gives us the life along with the peace. 평강은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힌 상태입니다. Peace is the state where everything is in balance. 평강의 반대말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The opposite of the peace is stress.
스트레스는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The stress is the state out of balance. 부족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입니다. It is lacking, uneasy, and uncomfortable. 하나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The Lord gives the blessing of life and peace to us who in the right relationship with the Lord.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처럼 평등한 관계도 있지만, 주인과 노예처럼 주종 관계도 있습니다. In the human relationship could be equal such as man and wife but also it could be relationships such as master and slave.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평등 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the Israel is not equal but of master and slave. 하나님은 언약 안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The Lord gave the covenant of life and peace to the Israelites for reverence and they revered me and stood in awe of name of the Lord.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것, 이것이 경외입니다. It is awe to fear and love the God.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Israel is the object of God’s love, but Israel loves God and feared at the same time. 그러면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는 어떻게 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을 인도했을까요? How did the Priest Tribe Levites lead the Israelites to keep the covenant of life and peace? (1)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he revered me and stood in awe of my name 레위 지파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레위 지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두려워합니다. When Levites are in the right relationship with the Lord, not only the Levites but all Israelites will revere and stand in awe of the Lord’s name. 우리도 주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We also need to revere and stand in awe of the Lord’s name. 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6 True instruction was in his mouth and nothing false was found on his lips.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uprightness, and turned many from sin. (2)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True instruction was in his mouth” 하나님이 제사장 지파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진리의 법입니다. 다시 정리합시다. The Lord gave the Israelites through the Priest tribe the true words of the Lord and true law. Let’s review.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서면 백성의 죄를 고백하여 사함을 받게 하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도록 합니다. The priest represents the people and stand in front of the Lord, to confess the sins of the people, to be forgiven and let people to present the thanksgiving offerings.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표하여 백성 앞에 서면, 백성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을 선포하고 그 법으로 살도록 인도합니다. The priest when he represents the Lord in front of the people, the priest will present the true word of the Lord, and Law to them and lead the people to follow the law of the Lord. 제사장은 입으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백성들 가운데 살면서 그 말씀을 행함으로 본을 보입니다. The priest will teach the words of the Lord through mouth, but for the rest of time priest will show example of living the words of the Lord. 이러한 관계는 정확하게 오늘날의 목사와 신자, 그리고 더 나아가 신자와 세상 사이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These relationships are exactly applied to today’s world between the Pastor and People in the church, furthermore between the believers and rest of the world. (3) “그의 입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Nothing false was found on his lips” 제사장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은 불의함이 없어야 합니다. The words of priests should not only to proclaim the words of the Lord, but also shouldn’t have any falsehood.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바를 때에는 이렇게 제사장의 역할이 바를 때였고, 그 기능이 바르게 작동했을 때였습니다. Whe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the Israel was right, it was when the priest’s roles were right and everything was functioning properly. 하나님은 지금 말라기를 통해서 그러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The Lord is showing the good past through Malachi. (4)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uprightness” 이미 말씀드렸듯이 제사장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평화롭게 그리고 바르게 행동합니다. As I mentioned already, priest should not only teach with mouth, but also need to act peacefully and righteousness. 이로써 제사장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백성들이 압니다. So people know the priest is walking with the Lord. 그렇게 되면 백성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This helps to people to understand that our God the Lord is not far away but he is with us as God of Immanuel. 그러므로 목사는 설교 시간만 목사가 아니라, 언제나 목사입니다. Therefore the Pastor is not only pastor during sermon but always a pastor. 성도는 교회에서만 성도가 아니라 그가 있는 모든 곳에서 성도입니다. Christians are not only Christians in the church but Christians everywhere. 사람 사이에 평화의 도구가 되며,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일하심을 드러냅니다. Christians should be the tool for peace with the honesty show the Lord is living and working. (5)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Turned many from sins” 그러면 그 결과는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As a result, turn many people from sins and bring back to the Lord.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바르게 역할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If the priest works righteously, then Israelites return to the Lord.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들이 제사장 나라 역할을 바르게 함으로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When the Israel turns to the Lord and being the Kingdom of Priests all nations returns to the Lord.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 속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신 결과입니다. It is the result of the Lord’s work that we used to belong to each nation and tribes and tongues and now the children of the Lord. 그러나 지금 주전 430년경의 말라기 시대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할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언자 말라기를 세우셔서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But during the Malachi time around 430 B.C, there were severe problems on Israel’s role and the Lord is warning through Malachi. 3. “율법” “Law” (7-9)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7 "For the lips of a priest ought to preserve knowledge, and from his mouth men should seek instruction - because he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Almighty. 이제 하나님은 과거의 제사장에서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으로 돌아와서 제사장에게 하나님과 백성이 기대하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Now the Lord turned from the past to the Malachi era’s priests and talking to the priest about the role model that the Lord and the people expect. (1)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For the lips of a priest ought to preserve knowledge” 제사장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뜻이죠. This means what priest says should be the knowledge of the Lord.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However during the Malachi the priests were not like that. (2)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from his mouth men should seek instructions” 백성이 제사장에게서 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What people seek from the Priest is the words of the Lord.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When we gather at church and listen to the words of the Lord, what do we expect to hear from the person on the stage. 세상에 많은 말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듣는 설교가 아닙니까? There are many words in this world, but what we expect from the words of the Lord, and what we acknowledge as the words of the Lord, isn’t that the sermon that we hear at the church? 주일에 우리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하여 실제 삶에 적용하기를 결단하도록 우리 마음에 역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 pray that what proclaimed at our church should be the words of the Lord explained easier and we determine to apply in everyday life of what we learned. (3)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he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Almighty 말라기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제사장도 역시 하나님을 대표하고 대언하는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As Malachi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the priest should also be the representative and the messenger of the Lord.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정의입니다. This is the definition of the Priest.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8 But you have turned from the way and by your teaching have caused many to stumble; you have violated the covenant with Levi," says the LORD Almighty.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은 어떠했습니까? How were the priests in Malachi era? (1)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But you have turned from the way” 제사장이 하나님이 정하신 옳을 길을 떠났습니다. Priests left the way the Lord assigned.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They didn’t fear the Lorad.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They didn’t resolve to honor the name of the Lord. 가장 나쁜 것만 골라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They offered the worst to the Lord.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합니다. Therefore they insulted the name of Lord. (2)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by your teaching have caused many to stumble” 그 결과는 제사장 레위 지파만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As a result, it wasn’t the Levites only who stumbled. 이스라엘 전체가 율법을 거스르게 만듭니다. As a result, the entire Israelites stumbled. (3)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You have violated the covenant with Levi” 결국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 레위의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깨뜨린 장본인이었습니다. At last the priests of Israel who violated the covenant from the Lord, covenant with Levi, and the covenant of the life and peace. 하나님이 아니라, 제사장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It was not the Lord who violated the covenant rather the priests violated the covenant between the Lord and the Israel. 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9 "So I have caused you to be despised and humiliated before all the people, because you have not followed my ways but have shown partiality in matters of the law." 이제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선고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Now the Lord through Malachi proclaims the warning against the priests. (1)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you have not followed my ways”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길, 즉 율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Covenant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Israel was connected through the Lord’s way in other words Law. 그런데 제사장들이 그 길을 깼습니다. But they did not followed the ways. (2)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but have shown partiality in the matter of the law 제사장은 재판관의 역할도 합니다. Priests served as judge as well. 그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장의 역할을 할 때에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However they could not fairly judge when they receive bribe. 편견과 편애를 결코 벗어날 수 없고, 그리하여 백성에게 좌절감을 주고, 하나님의 성호를 더럽힙니다. They could not get away with the prejudice and partiality so they gave people frustrations and defiled the holy name. (3)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So I have caused you to be despised and humiliated before all the people.” 마땅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할 제사장이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버렸을 때, 결국 하나님과 그들,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깨집니다. When priest who should have been respected and honored did not honor the Lord in their heart, then they violated the covenant with the Lord furthermore the covenant between the Lord and the Israel was violated. 그리하여 백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Now priests were despised and humiliated by the people.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세상 앞에 선 목사와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If we apply this today’s world, Pastor and Christians in front of this world do not honor the Lord and return they are despised and humiliated. 결론 Conclusion: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belonging to God” (베드로전서 1 Peter 2:9a) 제가 주보에 인용한 베드로전서 2:9를 봅시다. Let’s take a look at 1 Peter Chapter 2 verse 9 that I put on the bulletin.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요, 왕 같이 영광스런 제사장들이요, 이스라엘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나라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Church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as Israel. 오늘 말씀을 전하고 들으면서 저부터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돌아섬으로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대표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I pray listening to today’s sermon, starting from myself to turn back to the Lord, we all turn back to the Lord, and we represent the Lord to this world and we represent the world to the Lord. 함께 기도합시다. Let us pray.
저주를 축복으로 바꿉시다!
말 2:1-9 / 이삼규 목사
한 나그네가 프랑스 접경 알프스산맥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황량하고 메마른 불모지를 보며 탄식했습니다.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로군." 그곳은 풀 한 포기 없는 죽은 땅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광야에서 등이 굽은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도토리가 가득 담긴 가방에서 도토리를 꺼내 쇠지팡이로 땅에 구멍을 낸 후 도토리를 심고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노인에게 다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심은 도토리가 싹이 나면 이곳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할 것입니다."
나그네는 노인에게 무모한 일을 그치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25년 후,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나그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새들의 노래와 꽃의 향기가 가득한 축복의 땅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황무지를 축복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은 지난 주일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의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임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길이 무엇인가 말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저주를 축복으로 바꿉시다!"라고 정하였습니다.
1.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제사장들이 저주를 받게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것이 바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문에도 나옵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한 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할 사람들은 특별히 레위인들 즉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된 자들이었습니다(민3:46). 이들은 모든 생활이 성전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사용해야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특권도 주어졌습니다. 첫째 부모를 돌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둘째 자녀에 관심을 가지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셋째 형제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책임이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심은 그들이 훌륭하고 남보다 출중해서 아니라 그들이 맡은 사역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들이 부모, 형제, 자녀에게 관심을 쏟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즉 말씀사역, 주의 언약과 명령을 실천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중차대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온 이스라엘의 대표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직분에 대하여 방관했으며 나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이미 주신 복에도 저주를 내리신다고 하셨다.
1∼2절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①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고 하시면서 말씀 듣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사역과 생활과 삶이 말씀에서 나와야되는데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사역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고, 하나님을 멀리 했으며, 위선적인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주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 32: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
겔 44: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말라기 2장 전체를 보면 전형적인 히브리 어법으로 볼 수 있는 반복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2회 (2절), "저주" 3회(2절), "언약" 5회 (4,5,8,10,14절)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본장의 중심적인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언약"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듣고 마는 말씀이 아니라 심비에 새겨야하는데 건성으로 들었습니다. 곧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쾌락과 그 물질적인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잿밥에 눈이 어두운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2)자신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7-8절).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제사장들의 중요한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명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탄식을 들어봅시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일을 할 때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여호사밧 왕 때는 제사장들이 열심히 율법책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유다는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대하 17:9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성읍으로 순행하며 인민을 가르쳤더라
에스라의 부흥 때도 레위인들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느 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느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느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 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 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와서 제사장들은 타락하여 율법에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암흑시대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나라는 IMF라는 혹독한 시련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제 경기가 저점을 지나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나라에 이러한 무서운 저주가 임하였습니까? 우리 왕같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정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망각하지 않고 잘 감당하였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2.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어떤 저주가 선포되었습니까?
①너희 복을 저주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너희 복"이란 물론 제사장들의 복을 말합니다. 특별히 그들이 받은 물질적인 것들 레위인의 기업(민18:24), 11지파가 가져다주는 십일조로도 볼 수 있고 또한 제사장들의 직무로서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축복권일 수 있다(민18:21). 여기에서 말하는 너희 복이란 제사장들이 누리는 여러 가지 특권, 즉 제사 직책에 따른 일정한 수입(민18:8-18,21)을 저주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같은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 즉 특권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신 28: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신 28: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신 28: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다스릴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신 28: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신 28:41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욥 33:19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시 39: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②너희 종자를 견책할 것이다(3절).
"종자"(the seed)는 히브리어의 모음 변화로 "팔"(the arm, shoulder)이 됩니다. 구약 주경학자 Keil은 제사장들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씨종자로 보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므로 팔로 보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삼상2: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시10: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라고 했습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것이 그 임무인데 만일에 그 팔이 꺽일 때는 그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저주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임무 중에 하나인 손을 들어 백성을 축복하는 일도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Calvin은 농작물의 "씨"(Seed)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업으로 받는 십일조와 헌물이 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종자"를 후손(Descendants 렘31:27)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팔이 짤라지거나, 종자가 없어져 기업이 피폐하거나, 후손이 끊어지는 것은 그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저주인 것입니다.
③얼굴에 똥칠을 하겠다(3절).
이것은 하나님의 계속되는 저주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키며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물, 그러한 자랑은 이제 얼굴에 똥을 바르는 수치로 변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의 제물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똥을 쌓는 일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 말씀입니다. 그 더러운 똥을 깨끗이 제하여 버릴 때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고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셨습니다.
얼굴에 똥칠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요즘 연일 흘러나오는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어찌하여 우리 나라가 이토록 부패 공화국이 되었는지 모두가 회개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제사장들에게 왜 이토록 무서운 저주가 선포되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지 아니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잠 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 3: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3.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이토록 무섭게 책망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한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채찍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은 어떤 언약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민 25: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민 25: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레위인들이 이러한 언약을 받게 된 이유와 동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레우지파는 본래 저주받은 지파였습니다(창34:25-26, 49:5-7). 그 이유는 세겜에서 있었던 디나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두 지파는 저주의 말씀대로 흩어졌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말씀 그대로 저주의 흩어짐을 당하였으나 레위지파는 축복의 흩어짐이 이루어졌습니다(민 35:1-8, 수 21:1-41). 그러면 레위지파가 어떻게 하여 저주가 떠나가고 축복을 받게 되었을 까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지파 사람들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출 32:26-29). 발람의 바알 브올 사건 때 그 지파 중에 비느하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민 25:10-13). 두 차례에 걸친 그들의 헌신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와 언약을 세웠습니다(출 32:26-29, 신 33:8-10, 민 25:13).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저주가 떠나가고 축복이 임하는 비결을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된 삶을 살 때에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저주가 있습니까? 레위지파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에 임한 저주가 떠나가고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어떻게 유지 할 수 있을 까요? 이것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①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②진리의 법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법"(Law of truth)이란 하나님의 율법으로서 가르치는 바른 교훈과 더불어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는 바른 판단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의 3대 직무가 있는데 그것은 중보의 기도와 제사, 율법 교육, 축복입니다. 이중에서 중요한 하나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백성들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일이다(레10:11, 신33:10, 겔7:26). 그러므로 그들이 진리를 가지지 아니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때문에 진정한 제사장은 진리를 가져야합니다. 진리 지식이 가득하고 그 진리대로 사는 모범을 지녀야합니다.
③화평과 정직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성경에 보면 에녹이나 노아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 까요? 화평과 정직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함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십니다다. "나와 동행하며" (He walked with me)는 에녹과 노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의미한다(창5:22, 24). 또한 하나님과의 마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암3:3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하셨다. 본래 "행한다"(walk)는 말이 상징적으로 사용될 때 많은 경우에 신앙적이요, 윤리적인 생활(living life)을 의미합니다.
잠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신앙적이요, 윤리적인 생활을 해야 마땅합니다.
④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견책과 교화를 포함하는 말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은 책망, 경고, 징벌, 교훈, 위로, 권면하여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여야한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 것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살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왜 저주가 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까? 진리의 법을 가져야 합니다. 화평과 정직 중에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 임한 모든 저주가 축복으로 바꾸어지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말라기 2장 4-9절)
<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라 >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은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이 지켜지게 하기 위해서였다(4절). 하나님과의 언약은 축복의 핵심 기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된 존재임을 확신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 나를 칭찬하고 격해도 큰 힘이 생긴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으면 내면에서 사명의 불꽃이 점화되는 것 같고 내 안에 있는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기분에 의한 어두운 진이 깨지는 것 같다.
자신 있게 사는 사람도 가끔 과거를 돌아보며 회한에 젖고 수치감에 쌓일 때가 있다. 그러면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자책하면서 낙심된다. 부정적인 생각에 매이게 하려는 부정적인 중력은 늘 있다. 그때 “당신은 비교적 잘했어요.”라고 하는 누군가의 믿음의 말이 어두운 진을 파괴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만들면서 큰 위로가 된다. 그 말은 사람의 입을 통해 섞여 나온 하나님의 소리다. 내가 믿음의 말을 하면 누군가에게 그런 역사가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가끔 말해 주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잘 느끼면서 이미 자기 생에서 찢어지고 무너진 상태로 있다. 그들에게 좋은 말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전하라. 특히 그들이 전진하도록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해 주라. “당신은 하나님이 선택하고 사랑하시는 언약 성도로서 충분히 재능이 있고 창조성이 있고 축복 받았습니다.” 축복의 말을 해 주면 강하고 견고한 어둠의 진과 부정적인 마음이 깨뜨려지면서 복된 자리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얻는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상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언약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약속하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약속을 할 때는 쉽게 하지 말고 한번 약속했으면 힘써 지키라. 무엇이든지 지키는 것을 잘할 때 인생도 지킬 수 있고 영혼도 지킬 수 있다. 지키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하나님 앞에서 한 좋은 약속과 다짐도 힘써 지키라.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
제사장의 핵심 사역은 제사 사역뿐만 아니라 말씀 사역이고 진리와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말라기 당시 제사장들은 지키지 못했다. 또한 백성들이 진리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보다 오히려 범하게 했다(8절).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셨다(9절). 율법을 멸시해서 하나님을 멸시하면 오히려 멸시는 받는다는 뜻이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을 전하고 더 나아가 모범이 되어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말씀은 복의 길로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부산으로 가려면 부산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목포로 가려면 목포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남을 기쁘고 바르게 따르게 하라. 말씀을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만 많이 하면 광신병에 걸리고 말씀은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냉각병에 걸린다. 말씀과 기도를 겸비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왜 종종 고난과 기도 제목이 생기는가? 말씀 안으로 돌아와 성숙해지라는 환경 메시지다. 무신론자는 성도가 불신자보다 더 고난 받는 모습이 하나님이 없는 증거라고 한다. 고난을 성숙의 기회로 삼고 나중에 더 큰 축복으로 보상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같은 고난이 주어지지만 충분히 배우면 같은 고난이 면제되고 복된 역사를 새로 써 나갈 수 있다.
시편 117편 7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성도의 고난은 손해가 아닌 유익이다. 특히 고난을 통해 말씀과 가까워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시야가 생긴다. 인생의 성패는 속도가 좌우하지 않고 방향이 좌우한다. 어느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큰 차이가 난다.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무지이고 더 나아가 야만이다. 성도가 가장 쓸쓸함을 느낄 때는 외롭게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말씀의 자리를 떠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