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世貞(장세정)의 연락선(連洛船)은 떠난다
부산(釜山)~하관
下關, しものせき(시모노세끼)
어간(於間)에 관(關)한,
1961.5.16 戒嚴軍 總長(계엄군 총장)
'張都暎'博士('장도영'박사)의
描寫 引用(묘사 인용)
1961.5.16 발발 시
육군총장 장도영 中將님의
최근 회고록;
망향(望鄕)숲속의 꿈,
01,03,10에서 서술
당시 겪어진, 이곳에 대한,
글을 부분 引用(인용)합니다.
제목 : 連洛船은 떠난다 앨범(1964)
장세정, 백년설 힛트 쏭집
(연락선은 떠난다)
작사자 : 박영호
작곡자 : 김해송
가수 : '張世貞'님
雙鼓動 울어울어
連洛船은 떠난다
잘 가소 잘 있소
눈물 젖은 손 手巾
眞情코 當身만을
眞情코 當身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삼키면서
떠나 갑니다
울지를 말아요
波濤는 출렁 출렁
連洛船은 떠난다
情든님 껴안고,
목을 놓아 웁니다
오로지 그대만을
오로지 그대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恨숨을 삼키면서
떠나 갑니다
울지를 말아요.
(前略)--'43年 12月 末 傾(말 경),
오후(午後) 늦게,
동경 동양대학
(東京 東洋大學)에서 귀가,
하숙집 현관문
夕刊 新聞(석간 신문)을 보니
1面에 큰 활자로
'반도 출신 학생에게 특전 은사!'
란 표제에 눈이 번쩍 띄여, 본 바
'이제, 반도 출신 학생
(半島 出身 學生)에게,
천황 폐하(天皇 陛下)의 嫡子(적자)로,
황군(皇軍)의 일원(壹員)이 되는,
특전(特典)을 받을 수 있다'는
요지(要旨)의 기사(記事)였다.--중략--
2층 계단(貳層 階段)으로 오르면서,
'우리들을 군대(軍隊)로 끌어 가려는
수작임에 틀림 없다'고 判斷(판단)
다시, 현관을 되돌아 내려
學校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속(速)히 동경(東京)을 떠나,
신의주(新義州) 집으로
귀향(歸鄕)하려고,
동경역 매표구
(東京驛 買票口)에 가서,
밤을 꼬박 새워,
아침에야 겨우
신의주 표(新義州 票)를 구입,
하숙집 짐을 꾸려
發送 後(발송 후)
동경역(東京驛)-->하관(下關),
시모노세끼
저녁 列車(렬차)에 올랐다.--중략--
그날도 하관(下關,しものせき,
시모노세끼)역(驛)
플랫폼에서
列車가 정지(停止)한 시간(時間)이
몇 秒(초)의 어김도 없이
꼭 豫定(예정)된 時刻(시각)이었다.
數 時間 後(수 시간 후),
부산(釜山)-->하관 しものせき,
시모노세끼,下關을 잇는
연락선(連絡船), 금강환(金剛丸)에
승선(乘船)했다.--중략--
일제하(日帝下)에서,
조선 반도인(朝鮮 半島人)으로서,
일본(日本)에 가려면
일반인들은 경찰(警察)에서
발급(發給)하는
도항증(渡航證)이란 것을
학생(學生)들은
재학 증명서(在學 證明書)를
各各 所持(각각 소지)해야 했다.
소위(所謂), 이른바
내선 일체(內鮮 壹體)는
구호(口號)에 不過(불과)
이런 證明書 所持 條件
(증명서 소지 조건)도
韓國人(한국인)에 대(對)한
差別策(차별책)의 하나였다.
또, 이 關-->釜 련락선 승,하선소
(連洛船 乘,下船所)는,
일본 경찰(日本 警察)이
韓人(한인)들을 統制(통제)하는
가장 좋은 手段 中(수단 중)의 하나였다.
사실(事實) 난 數 次例(수 차례)
이곳서 差別待遇(차별대우)의
쓰라린 經驗(경험)을 했다.
乘船 直前(승선 직전),
수 차례(數 次禮)나,
"자네 좀, 보지!
그 선(線)에서 나와!" 하며
손짓하는 관헌(官憲)의 부름을 받았다.
따라가면
學生證 點檢(학생증 점검)등,
쓸데없는 이모 저모들을
신문(訊問)타가도,
승선 진행(乘船 進行)을 살피다가,
대렬(隊列)이 모두 승선 완료
(乘船 完了)하면,
가라는 말이 떨어져,(중략),
이런 일은 極(극)히 작은 差別(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失手(실수)나, 규칙(規則)을 어기면
'秩序(질서)없는 센징(鮮人)!'이라고
심한 발길질,
구타(毆打)를 하는 때가 많은 게,
關釜 連絡船(관부 연락선)에선
頻繁(빈번)했었다.
한국해협을 橫斷(횡단)하는
關釜 海路(관부 해로)는
일본, 한국, 중국 교류,
대륙 진출
(日本, 韓國, 中國 交流, 大陸進出)에
극(極)히 긴요(緊要)한 관문(關門)이자,
생명선(生命線)이어서,
일본 제국(日本 帝國)의
이등 국민 처우(貳等 國民 處遇)인
한국인(韓國人)들의 이곳 왕래(往來)를
엄(嚴)히 통제(統制)한 것은
널리 알려진 事實(사실)이다.
동시(同時)에 한국인(韓國人)에게는,
이 관부 연락선(關釜 連洛船)이
悲哀(비애)어린 離別(리별)의
상징(象徵)이기도했다.
이 時節(시절) 大 Hit 曲 류행가(流行歌),
눈물젖은 釜山港(부산항)에서의
波濤는 출렁 출렁
連絡船은 떠난다.
잘가소 잘있소.
눈물젖은 손 手巾
누구나, 애닳픈 心情(심정)으로
오랫동안 이 노래를 불렀다.
이어; 學徒兵(학도병),
또는 徵傭(징용)으로
數많은 젊은이들이나,
심지어(甚至於)는 일제(日帝)의
野獸的 蠻行(야수적 만행)이었던
女子挺身隊(여자정신대)에 끌려갔던
부녀자(婦女子)들도
다 이런 배를 타고
어디로 가는 지,
언제 살아서 돌아 올른지 모르는
길을 떠났던 것이니,
참으로 韓國 사람들에게는
哀愁와 怨恨에 찬
情緖로 물들여진 곳 이기도하다.
남서 태평양(南西 太平洋)에서
동해(東海)로 흐르는 海流(해류)가
한국 해협(韓國 海浹)을 지나게 되면서
灘波(탄파)를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것을
현해탄(玄海灘, 검은 바다 여울)이라
했고,
이곳을 橫斷 時(횡단 시),
자주 難航(난항)을 하게 되,
下關 →釜山(하관 →부산)간 거리는
不過(불과) 약(約) 130 里(리)
정도(程度)밖에 되지 않으나,
보통(普通) 8時間 이상(以上) 이나
걸리곤 했다. --중략 --
배 出發(출발)을 몸으로 느끼자
"아, 이제야, 정말 別(별) 일없이
가게 되누나!" 하고
안도(安塗)의 긴 숨도 잠시
얼마 후, 官憲 服裝(관헌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내가 있는
船室(선실)에 出現(출현);
눈깔을 크게 뜨고,
四方(사방)을 살피며,
성난 얼굴과 높은 목소리로,
손짓을 하면서
"너 이리나와! 또, 너도!
그리고, 너도 !" 하면서,
내게도 긴 팔을 들고 손가락질로
"너도! 너도! 이리 나와!"
하는 것이었다.
아찔한 瞬間(순간)인 것이다.---중략---
내가 경관(警官)들 앞에 서자 마자,
"이 자식! 거짓말 하는 놈!
그 누구는 집 事情(사정)없나?
이 비렬(卑劣)하고 반역(反逆)하는 놈!"
등(等) 갖은 모욕(侮辱)과,
"너 같은 놈은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애야 해!" 하며,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자,
옆의 警官은 옆구리를 차서,
마루바닥에 꺼꾸려트린다.---以下 省略---
註: 저자, 전 육군 참모총장
張都瑛 중장님은;
'美國 사우스 캘리포니아 州
올랜도 市 근교(近郊) 윈티미아'에
거주(居住)하시는 바,
사우스 캘리포니아大學
정치학 박사로 재직 중이심.
'장세정'님의 '련락선은 떠난다'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끔
도움이 되게 하려는 마음에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소개, 인용했아옵니다.
작사자 :
朴英鎬(박영호) 1911 ~ 1953 →
강원도 통천군 해금강면 고저리에서
1911년 출생하여
함경남도 원산시에서 주로 성장.→
광명 보통학교를 졸업 후,
주로 독학으로 대학 과정을 마치었다.→
여러 Record 회사에
작사를 제공하다보니,
筆名(필명)도 '처녀림, 김다인' 등 많음.→
일본 와세다 대학 일어 일문학과
문과강의록으로 대학 과정을 터득하고
문학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함.
'유진오, 이효석, 조영출 등과 함께
1920년대 말에 K.A.P.F
(조선 프로레타리아트 예술가 동맹)에
가입했음. →
1931년도 경,
'카프'헤체 후,
연극 분야에 관계하면서
가사 창작의 길에 나섬. →
민족 수난기에
대중 가요 작사자로는
조영출(조명암)과 더불어
2 기둥을 이룸. →
Columbia, Victor, O.K,
Regal, 태평 등
Record 회사와 관계했으며, →
태평 레코드사 문예부장으로 활동,
數多한 가사를 창작함. →
물방아 사랑(남인수)
짝사랑(고복수)
망향초 사랑(백난아)
울어라 문풍지{이 난영}/ 연락선은 떠난다{장 세정}/북극 5천 키로{채 규엽}/천리 정처,유랑 극단,번지없는 주막, 마도로스 박{이상 백 년설}/천리 춘색{김 해송}/요 핑게 조 핑게{이 은파}/ 타국의 여인숙,오빠는 풍각쟁이{이상 박 향림}/,,,/ 등 헤아릴 수 없이 數多함. → 해방 후인 1946년 12월에 북한으로 월북, 북조선 연극 동맹 초대 위원장 역임. → 1950.6.25 동란 발발 후; 최전선에 종군작가로 강제 동원되었다가, 휴전되던 해인, 1953년 3월에 미제의 포격으로 사망했다고 하나; 사실상 숙청성 죽임을 당한 것으로 봄이 마땅한 바; 춘원 '이 광수'등과 마찬가지로 ,,. → 아래 사진은 인민군 최전선에 종군 작가로 강제 동원시 때 박은 사진으로 희귀한 것임. "불정,부패 없는 부국강병이 급 선무!" "넋 나간 짓들하면; 불의를 봐주면; 과도한 '랑만'에 빠지면?" *^^ 悤悤, 峽氓 多蠢,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