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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만난 야곱 창 29: 14 ~ 27 17/07/30
야곱은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 든다.
야곱은 형과 아비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결과는 그의 기대와 정반대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는 에서를 대신하여 축복을 받았지만 집을 떠난 것은 축복받지 못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지만 도망을 간 것은 야곱이었지 에서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려 20년 동안 들판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의 삶은 축복받은 인생이 아니라 저주받은 인생처럼 보였다.
야곱은 형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아버지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후로 야곱의 생애는 고아처럼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야곱이 말년에 이집트의 왕 바로를 만났을 때 바로가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러자 야곱은 자기 인생을 결론지어 이렇게 말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으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구나 왕에게 그런 고백을 했을까?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약속과 달리 야곱을 버리시고 떠난 탓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연단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까 하는 분들이 답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연단하기 위하여 야곱보다 더 저질인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하신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그 모양과 빛이 참 아름답지만 경도가 너무 높아서 가공하기가 불가능하였다.
쇠로 다듬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나무로 쇠를 다듬으려는 것과 같다.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법을
발견한 것은 어느 유대인 청년이다. 그 청년이 보석가게 직원으로 일하는 데 사장님 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찾아가서 둘이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 달라고 허락을 구하였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비결을 찾아오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 청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방법을 찾아보고 실험해 보다가 드디어 그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건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그 방법은 다이아몬드로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이는 결혼했다고 한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세계의 다이아몬드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것도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
다이아몬드원석은 다이아몬드로 다듬듯이 하나님은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귀한 사람은 사람을 통하여 다듬고 광을 내신다. 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을 만나고, 성질 급한 사람은 성질 급한 사람을 만나고, 인색한 사람은 인색한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다듬지 않으시고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나게 하여 그를 통하여 나를 깨트리시고
다듬고 광을 내시는 작업을 하신다. 하나님은 급하게 처리하지 않으시고 천천히 조금씩 나를 다듬어 가신다.
욕심 많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곱을 깨트리기 위해서하나님은 야곱보다
더 고약한 인간인 라반이 있는 곳으로 야곱을 이끄신 것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며 그냥 밥만 먹을 수가 없으니 들판에 나가 양을 돌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라반이 야곱에게 너는 내 조카지만 어떻게 공짜로 일할 수 있느냐 네 품삯을 네가 정하라고 제안을 한다.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가 라헬을 사랑하니 둘이 결혼하게 해 주신다면 7년을 목동생활을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외삼촌의 허락을 받은 노총각 야곱은 라헬과 연애하는 동안에 금방 7년이란 시간이 흘러가서
라헬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 지역에서는 밤에 결혼식을 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첫날밤을 지내고 보니
아침이 되어 옆에 누워 있는 신부를 보니,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처형인 레아였다.
야곱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가지고 외삼촌이 장난을 쳤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더구나 라헬은 리브가를 닮은 미인이었다. 그런데 레아는 시력도 좋지 않았다. 아름다웠다는 표현이 없는
것을 보면 외모는 평범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외삼촌이자 장인이 된 라반을 찾아가서 따져 물었다.
“ 외삼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라헬과 결혼한다는 조건으로 7년 동안 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레아랑 결혼하게 하시니 말도 안 됩니다”라고 따져 물으니 우리 지역에서는 형보다 아우가
먼저 시집보내는 법은 없네. 그러니 7일 있다가 라헬과도 합방하게 해 줄테니 또 7년을 일해 주게라는 것이었다.
라반은 야곱이 일을 잘하니 야곱을 속인 것이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조카를 속인 것이다.
사기꾼 같은 야곱이 자기보다 더한 사기꾼을 만난 것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야곱이 14년 동안 일하고 나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빈손으로 고향에 가지 말고, 여기서 일하여 재물을 모아 고향에 가는게 좋지 않겠는가? 자네가 품삯을 정하게, 내가 그대로 줌세, 야곱이 생각해보니 빈손으로 고향에 가는 것보다 돈 좀 모아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겠다고 하였다. 야곱은 장인이자 외삼촌인 라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외삼촌의 양과 염소 가운데 검은 것 얼룩진 것. 아롱진 것 모두 골라내고 내게 흰 양과 흰 염소를 맡겨주시고 그 가운데서 태어난 염소나 양 가운데 검은 것이나 얼룩진 것이나 아롱진 것은 전부 제 것으로 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외삼촌 라반이 얼마나 고약한 사람인지 그러라고 했다. 라반도 잘 안다. 수컷과 암컷이 하얀색이면 하얀색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초등학생도 알만한 것이다. 라반이 기본양심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야 이 사람아, 흰 수컷과 흰 암컷사이에 어떻게 얼룩진 것이나 검은 색 양이나 염소가 나오냐?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고 일 년에 몇 마리 달라고 하게나.” 그러나 야곱도 다 알면서 자기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 “아닙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해 주세요” 라고 고집을 부리니 외삼촌은 그럼 그러지 하고 수락하였다. 자기 조카이자 딸 둘의 사위인 야곱을 부려 먹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골라낸 얼룩진 것과 검은 양과 염소가 혹시 야곱이 맡아 기르는 양과 염소랑 교미를 할까봐 삼일 길이나 떨어져 있게 하였다. 라반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가 보라. 하루 길도 아니고 사흘 길을 사이를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둘 다 똑 같다. 자기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으면서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라반이 몇 달 후에 가보니 야곱이 맡아 기르는 양과 염소 떼 가운데 얼룩지거나 아롱진 것들이 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었다. 라반의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욕심 많고 인색한 라반은 약속대로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네가 아롱진 것이 나오면 자네 것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아롱진 것만 자네가 가지게. 야곱은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녹음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혼자이고 장인은 처남들과 종들이 많으니 따지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6년 동안 그런 일이 열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야곱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나? 그러는 사이 그래도 야곱의 재산이 늘어나고 종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삼촌집에 간지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야곱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자기 형 에서가 무려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자기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도적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제 죽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형을 속이고 축복을 받은 후에 에서가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이 있었는지 2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형의 화가 풀리지 않아서 자기를 죽이려고 온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창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야곱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여전히 두렵다. 지금 상황은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인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사나 죽느냐 하는 문제다. 20년 동안 개고생하며 모아둔 재산뿐만 아니라 처자식들과 자기 생명조차 다 잃어버릴 위기가 닥친 것이다. 야곱은 간절히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자기를 죽이러 오는 에서가 기도 한 번 했다고 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영리한 야곱은 또 방법을 생각해 낸다.
양과 염소와 소와 낙타 나귀등을 선물로 보냈다. 그것도 한꺼번에 보낸 것이 아니라 가축마다 종들을 붙여서 거리를 두고 에서에게 가도록 했다. 양 220마리를 한 떼로 보내고 조금 있다가 염소도 220마리로 떼를 만들어 보내고, 또 조금 있다가 낙타는 낙타대로 소는 소대로 나귀는 나귀대로 몇 떼로 나누어 시간간격을 두고 보냈다. 야곱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잔꾀를 부린 것이다. 믿음보다는 자기 방법을 더 의지한 것이다. 그렇게 형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면 형의 화가 풀리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형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래도 안 되면 어쩌지 란 생각이 들었다. 형에게 많은 선물을 미리 보내고 그래서 처자식과 종들과 전재산을 다 얍복나루를 건너보냈다. 그리고 자기는 얍복나루를 건너지 않고 혼자 남았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보낸 선물로 에서의 마음이 풀렸는지 가족들을 통하여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화가 풀렸으면 가족과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고, 풀리지 않았다면 자기 처자식들을 쳐 죽일 것이다. 만약 형이 와서 자기의 종들과 처자식들을 치면 자기 혼자라도 도망쳐서 살겠다는 것이다. 에서가 강을 건너오는 동안 잽싸게 도망을 치면 자기는 살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야곱은 참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이다. 자기 하나 죽으며 되는 것이다. 에서가 야곱에게 화가 난 것이지 야곱의 처자식이나 야곱의 종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자기 혼자 죽고 처자식들을 살리려고 나서는 것이 가장의 자세인데 야곱은 참 실망스런 사람이다.
야곱이 하는 짓을 보면 믿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이다.
야곱은 아버지 집을 떠난 어느 날 밤에 벧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이런 약속을 직접 받았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주장하며 하나님께 기도도 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짓을 보면 하나님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다.
누가 야곱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믿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라고 하면 믿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문제다. 자칫 잘못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위험한 순간이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만 믿고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한 것이다. 선물을 보내고, 처자식들을 통하여
형의 감정을 확인하고 여차하면 도망치겠다는 대안까지 준비해 둔 것이다.
사실 우리도 야곱처럼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도 믿는다. 그리고 기도의 능력도 믿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그걸 믿지 않는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도, 기도의 응답도 믿지 못할 때가 많다.
믿음으로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과 기도는 문제 해결의 보조수단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기도는 전능한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맡기는 것인데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기도한다고 되겠느냐! 내가 나보다 못한 어린 아이에게 부탁한 것처럼, 아니면 나보다 조금 힘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도 야곱처럼 항상 대안을 준비하고 마련한다. 하나님의 응답이 믿어지지 않아 기다리지 못하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온 힘을 다해 해결하려고 든다. 기도하지만 인간적인 다른 방법을 찾고 그걸 더 의지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실상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다면 모든 것을 다 믿고 맡길 수 있다. 목숨까지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 될 걸 대비한다. 응답해 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기적을 낳는 믿음은 모험하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이런 자세로 나갈 때에 하나님은 응답해주지 않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보다 자기 방법, 자기 꾀를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대안을 마련하고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불안하여 나루를 건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건너지 못했던 것이다.
야곱은 자기 혼자 살려고 강을 건너지 않고 날이 밝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어떤 괴한이 와서 야곱을 덮치는 것이었다. 이 때 야곱은 그 괴한을 형이 보낸 자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은 놀라서 죽을 힘을 다해 그와 엎치락 뒤치락하였다. 그런데 야곱이 목숨을 걸고 덤비니 그 괴한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버렸다. 고관절이 위골되어 버렸다. 그 괴한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야곱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린 이유가 그가 마지막으로 수단으로 생각하는 도망치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야곱은 새벽까지 괴한과 레슬링을 하다 보니 그 괴한은 에서가 보낸 자객이 아니라 하나님인 줄로 깨닫고 축복해 달라고 강청하였다. 그 사람이 “야, 이제 그만하자. 새벽이 다 되었으니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고 말하지만 야곱을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축복해 달라고 매달렸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으면 자기는 이제 죽은 목숨이고 20년 동안 개고생해서 모은 모든 것이 사라지질 판이니 죽기 살기로 매달린 것이다. 이제 자기가 생각해 낸 방법이나 수단으로 형의 화가 풀릴 것 같지 않고, 이제 다리마저 절게 되었으니 도망도 칠 수 없으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을 구조하러 가까이 가는 순간에 물에 빠진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 매달린다. 그러면 물에 빠진 사람이 초등학생이라도 뿌리치지 못하고 수영도 할 수 없어 같이 죽게 된다.
야곱은 지금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의 심정이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죽을 힘을 다해 매달리니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해 주셨다.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은 내 방법과 내 힘과 수단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기도를 내 목적을 이루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면 응답받기가 어렵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매달릴 때 응답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를 의지하는 그 불신앙을 깨버리시려고 그런 상황에 놓이게 하신 것이다. 자기의 꾀와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야곱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던 그의 두 다리도 뛰지 못하고 절도록 만들어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신다.
정말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하신다.
돈으로도 사람으로도 내 힘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하신다. 야곱의 생애가 험악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 믿음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기 꾀에 빠져서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내 방법과 내 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믿고 기도했으면 받은 줄로 믿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야곱처럼 기도는 하지만 믿지 못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기도는 하나마나다. 전적으로 믿고 의탁하는 것이 참된 기도이다.
참된 축복은 그때부터 나와 함께 하게 된다.
첫댓글 야곱이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명분적인 사람이고. 에서는 실리적인 사람아닐까요? 사람은 두종류라고 생각합니다. 명분적인 사람과 실리적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