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전화기
이문재
엄마 전화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 떠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원을 켜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고
부재중전화도 제법 있다 어쩌다
진동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가 또 죽을까 싶어
충전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죽은 엄마 전화기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살아 있는 나 때문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에도
너무 힘들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도 거기로 가고 싶은데 엄마 나 가도 되나
답 문자 기다리는 대신 엄마 전화기 속으로
이니셜과 별명이 많은 엄마의 사생활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수백 번 넘게 열어본 우리 엄마
그래서 그렇게 비상금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빠와 매번 심하게 다퉜고 그래서 그래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엄마한테 달려갔고
그래서 그날 새벽차를 몰고 동쪽 바다로 향했고
그래서 엄마가 그래서 엄마는 그래서 나도
그날 이후 눈을 들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엄마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겨우 견뎌왔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살 더 먹기 전에
죽은 엄마 두 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
전화기를 엄마한테 돌려줘야겠다
매번 다짐하곤 하는데 다짐하긴 하는데
―계간 《창작과비평》 (2022 / 겨울호)
이문재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