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은 노랗고
솔잎은 푸르다. – 말하지만
본디 잎은 푸르고 낙엽은 누런데
왜 은행잎만 노랗다고 표현하는 거야?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색을 뽑아
대표색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은행잎의 푸른 청춘을 모르고
노란 말년만 기억하는 사람들 때문에
서글펐던 은행잎은 마냥 노랗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푸름을 한껏 끌어올려 이 겨울에 푸르게 지고 있어.
푸르게 지는 은행잎의 객기가 더욱 서글픈 까닭은 나를 닮았기 때문이야.
노랗게 지기 싫어 여름 지날 즈음 뛰고 뛰다가 3개월을 앓아야 했지.
겨우 몸을 추슬러 살아남긴 했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몸을 버려 맘에 얻은 게 있으니 손해는 아니겠지만
푸르게 지는 은행잎처럼 무모한 객기는
나를 더욱 초라하게 했어.
일어나야 해; 몸도 마음도.
행복을 찾아야지; 비교적이 아닌 절대적 행복.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주위를 모르기로 해; 나만을 알기로 하는 거야.
나 홀로 우뚝 서 언제나 미소가 흐를 때 마침내 나는 이룬 자가 되는 거야.
너와의 비교로 나는 더욱 뛰어나고, 주위를 둘러보면 나 홀로 높겠지.
너도 주위도 내게 연민을 보내겠지만 이룬 나의 기쁨을 어찌 알겠어.
주위가 없으면 외로웠지만 사람 없이도 즐겁게 잘 지내며
너 없인 암흑이었지만 홀로임에도 달 뜨고 별 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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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이 내게 무엇을 주었을까?
따져보면 잃은 게 너무 많아.
이젠 버려도 아깝지 않아.
그러함에도 버리지는 않고
바람이 불면 잎이 흔들리듯
욕심 없이 잡다가 편히 놓지.
대금은 방편이지 목적은 아니니
강 건너면 뗏목 버리듯
대금도 버려야 해.
나, 강을 건넜으니
대금이라는 나룻배 버리고
강 언저리에서 그대들 소릴 들으려네.
오순도순, 들쭉날쭉, 울멍줄멍; 자연스러워 좋겠네.
국악원 단원들의 합주 소리보다
배우는 우리들의 소리가 더 아름다워서
나는 공연이나 연주회는 드물게 가지만,
정악모임의 어울림을 향한 열정으로
십 년에 딱 한 번만 빠졌다는데
아기를 키워본 이는 잘 알겠지만
아나운서의 유창한 언어보다
말 배우는 아기의 음성이
훨씬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야.
나, 이제 배움도 익힘도 멈추고
그윽이 그대들 소리 사이에서
미소 지으며 즐거울 거라네.
한때 처절하게 살았지만
이제 철저하게 내려놓네.
나를 버린 빈 가슴의 터에
네 소리, 고운 꽃으로 아련히 피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