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경제개발 13-2) - (본문) 2O-3- 3
4. 여천석유화학 공장건설 추진의 역사
(1) 일본과의 합작추진
여천석유화학 단지 건설계획은 호남지역에 중화학공장을 처음으로 건설하는 이상 여천석유화학 공단의 세계일류화를 기하여 웅장하게 출발하였다.
. 이것은 한국의 중화학에의 참여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 일본의 Mitstui와 Mitstubish가 청와대와 사전 교섭한 결과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73년 중반부터 1년여의 기간에 한일 양측에 투자 회자로서 하나는 여수석유화학 또 하나는 제일석유화학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74년도 중반부터 착공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74년 초 돌연 Mitsui의 본사 중역이 오수석을 방문하여 석유 및 석유화학 위기가 올 것이 예상되므로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것이었다. Mitstubish도 이에 따랐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로했다.
(2) 한국 단독의 현실적 계획으로 변경 추진
중화학 기획단의 승인하에 여천 석유화학 추진위원회는 오랜 기간의 협의 끝에 한국 단독으로 실현이 가능한 에틸렌 연산 35만 톤 단지의 2개 계열을 1개 계열부터 단계적으로 건설하기로 의결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여천 석유화학단지의 말단 설계자인 필자는 업계와 관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과욕으로 망쳤다고 했다. 상부의 이해가 있었기에 책임을 지고 계속할 수 있었다.
청와대 T/F 팀에서는 석유 화학은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이었다. 팀장인 오원철 수석은 창원관계로 여천에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76.11.10일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 참석리에 35만 톤 단지 석화단지 기공식을 거행하고 4년여의 피나는 노력 끝에 5개 계열공장의 준공을 계기로 준공식을 거행키로 계획했다.
(3) 여천서유화학단지와 1026 사건
청와대는 79년 말부터 중화학의 단계별 완공을 계기로 준공식을 거행하기로 계획하여 기공식에 치사도 하고 관심이 많았던 여천 석유화학단지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대통령께 보고 드렸더니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하셨다.
의전실에서 79.10.26을 여천 석화단지 준공식 거행 날짜를 정해 줬다. 대통령의 의전행사는 2급 비밀이기 때문에 극비로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천 석유화학 5개 계열공장의 준공식 (준비위원단 단장 최병오 당시 전무)은
박정희 대통령 참석하의 준공식 거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청와대 기자실에도 브리핑하였다.
준공 5개 공장은 1) 호남에틸렌, 2) 호남석유화학, 3) 한양화학, 4) 한국 다우케미컬, 5) 한국합성고무였다.
그런데 행사가 2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청와대로부터 행사 확정 통보가 없었다. 최단장이 청와대로 왔기에 필자가 의전실에 알아봤더니 무기 연기됐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 경호실이 비서실의 경호를 이유로 의전행사를 좌우하는 월권을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비서실( 실장 김계원)의 대통령 의전행사를 경호실(실장 차지철)이 사전양해나 통보도 없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행사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 준공식 행사는 1980.12.29일 최규하 대통령 참석리에 거행됐다.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건설한 6개의 중화학단지 준공식 하나도 참석 못하고 가신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은 하늘이 한국민에 준 위대한 영도자로서 눈물겹게도 중화학을 거의 끝내고 내일생 조국과 민족에게 바치고 가신 것이다.
어찌 이런 영웅이 대한민국의 영도자가 돠었을가요!. 전 세계의 수많은 지도자와 역학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금세기의 세계적 대통령이라고 칭찬했다. 필자는 외람되오나 왜 칭찬하는지 역사적 증빙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73년의 중화학 단지가 60여 년이 지났는데도 위용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중화학의 산실인 중화학단지에 박정희 대통령의 혼이 살아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2쳔대의 국토구상에서 금세기에 남해와 서해안에 대규모 산업단지 하니씩만 건설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행사하는데 충분하다고 하셨다. (여수산단 계속)
2024. 04. 27 김광모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
4월 26일 조간 매스컴에 의하면 24년 1분기에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 호조로 작년 4분기 보다 1.3%가 늘어나서 2년 3 개윌 만에 제로 성장을
여
금년 24년도의 연간 성장치는 2%대에서 3.4%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다리던 반도체의 봄은 왔다고 했다.
국제은행 JP 모건은 한국의 24년도 성장을 2.3에서 2.8%로 상향 조정했다.
이와 같은 성장은 FTA를 근간으로 민간이 이루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승리이다. 뭐 잘못된 게 있습니까! 이미지를 고치랍니다(바보 퍼옴)
카페 게시글
정보*건강*웰빙
(본문)20-3-3 여천석유화학 공장건설 추진의 역사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