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4-1
(박장희는 세계적영웅이다)
제4절 중화학 정책상의 전자공업 육성
1. 한국의 전자공업 발전 개황
(고난후의 영광)
60년대의 전자공업은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품을 수입하여 제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유치단계의 노동집약 산업이었다.
전자공업은 60년대초에는 전자공업으로 61년에 전화기, 62년에 라디오를 조립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66년에 흑백 tv를 생산하여 수입대체산업으로 급부상하였다. .
정부의 전자제품의 수출독려 정책에 힘입어 수출이 되기 시작하여 69년도에 10대 수출품목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의 총수출이 10억불일 때 전자제퓸이 약1억불을 차지했고 73년에는 3억불을 수출하여 상공부는 전자를 수출특화 업종으로 지정하였다.
상공부는 전자공업잔흥법을 제정하여 1969년부터 1976년까지 8개년 계획을 수립시행한 적이 있다
이때의 생산구조를 보면 국산화율은 라디오가 43%, TV는 25%에 지나지 않아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노동집약형 구조였다.
상공부는 수출증대의 목적으로 전자공업 육성에 치중하여 오면서 박충훈 장관시절 김완희 박사의 전자공업 육성방안을 참고로 한 적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자공업 육성의 견지에서 김박사릍 자주 만나고 후대하었다.
반도체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분은 한국 최초로 반도체 회사를 설립한 강기동 박사이다. 강박사는 74년초에 한미 합작으로 시계칩 메모리용 반도체 생산을 위하여 부평에 공장을 건설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적인 은혜를 입고 뉴코어(서정귀)가 투자하기도 하였지만 시대가 맞지를 않아 판매난에 따른 초기 경영부실로 문을 닫게 되었다.
대통령의 관심 사업이 돠어 청와대 경제2의 오원철 수석이 강기동의 반도체 공장을 삼성이 매입토록 개입하였다.
이병철 회장의 미래사업 투자를 의한 비전으로 삼성이 뉴코어
투자분 부터 매입하여 78년에 외국분을 모두 매입하여 완전한 삼성 반도체가 되었다. (이병철 경유 이건희 실천)
이병철회장의 장래를 내다 보는 혜안으로 부실 기업을 매입 인수해서 반도체 공업을 육성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으로서는 천운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신규사업예의 출발은 전자만이 아니고 삼성의 중화학 참여에도 기존 기업체의 인수로 부터 시작 되었다
이때 삼성은 정부의 구미에 설립 한 한국 통신연구소도 인수하였다. 이것이 삼성을 오늘의 반도체 선구자로 만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선진국 건설 비전에 민간에서는 이병철 회장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관민이 이끄는 한국의 경제 개발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
전자는 60년대 말부터 상공부의 수출정책과 민간의 열의가 전자공업을 장차의 글로벌 기술 집약 제품을 만드는 길로 가게 만들었다. 민주정부의 정부겨획에 의한 민간의 실천하는 합작품이었다
전자업계가 이 당시에 부닥친 가장 큰 문제는 불랑품 생산이었다.
중앙공업연구소가 규격을 정하기도 하고 상표 확립책도 있었고 우량 상품 보호책도 발표하였다.
상공부(오원철 차괸보)가 설립한 FIC (정밀기기 센터 , 박승찬 센터장)는 우량 전자부품 생산 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 하였다. 그냥 놀고 있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피나는 노력으로 기반조성을 한 것이다.
1981년부터 1981년까지의 중화학 기간에 103개 품목에 대하여 767개의 신규공장을 건설하고 77년에 11.7억불 달성후 81년에 25억달러의 목표치에 대하여 80역불을 달성하여 세계5위의 전자대국이 되었다.
상공부는 81년 100억불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에 연도별 지역별 품목별 수출 목표액을 수립하여 100억불 수출은 4년 뺠리 77년에 달성하고 81년에는 200억불을 달성했다. 이기적은 아무리 중복 강조해도 모자란다.
이리하여 중화학 정책상의 전자공업 육성계획은 중화학 선언에 의거한 80년대 초에 전자공업의 기술혁신으로 선진국형 전자공업을 만드는 박차를가하게 된 것이다.
2. 중화학 선언은 전자공업을 중화학업종으로 포함시키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목표인 81년도에 수출 100억불 수출목표는 100억불은 77년에 달성하여
목표보다 4년 먼저 성취하였다.
81년에는 200억불을 달성하였으니 목표의 2배를 성취하여 당초 정부(EPB) 계획 (5.3 억불)의 4배를 달성한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되풀이 해도 모자란다.
이것은 기적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성과로서 중화학 정책에 의한 전산업의 달성 성적인 것이다.
중화학이 전산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전자공업을 뺀 전산업의 육성이란 어불성설이니까 전자공업을 중화학에 포함시킨 것이다.
한국이 중화학의 모델로 삼은 일본의 중화학은 말 그대로 전자를 포함하지 않은 중공업 화학공업을 말하는 Heavy and Chemical Industries 였다
중화학은 단순한 경제 지표상의 달성만이 아니었고 전자공업을 위시하여 모든 공업의 구조를 개편하여 수출 목표를 달성함에 있는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구조적으로 국제경쟁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저 오게 만든 것이다.
3. 중화학 선언에 의한 종화학 공업 육성에
중화학 선언이라는 것은 80년대 초 달성 수출 목표(예 100억불 )를 설정하고 이를 위하여 공업구조를 상향개편 하여 선진형 공업구조로 만든다는 것으로 대통령의 선언에 의한 국가 최고정책이었다.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1년여의 기간에 정부의 각각의 담당 분야가 만들어서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기획원에 제출하고 기획원이 통괼 분석 검토해서 대통령 참석희의에서 확정 발표하는 것이다.
국가최고의 극비사업도 승인된 정부관계 기구가 수행하며 일반 경제 개발 모든 사업에 대하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이데올로기 하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국제경쟁력을 갖추어 만간기업이 추진하는 것이었다.
어떤 핵개발이든 전자나 방산이나 조선공업에서 천재가 돌연 경제수석으로 나타나서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를 왜곡하여 많은 실존 과학기술자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의 경우는 박정희의 청와대 T/F팀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하여 성안하여 대통령 선언으로 발족된 국가
최고의 정책이다.
박정희의 중화학 기간에 유명 전문가의 방안이 따로 있고 정부의 부처별 계획이 또 있고 여기에 또 대통령에 의한 중화학 선언이 별도로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박정희의 중화학선언으로 모두가 일치단결 하여 관주도 민실천의 원칙하에 추진하여 이룩한 것이다.
중화학 정책이 정하여 발표한 구체적 전자공업 육성 기본방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전자 제풉 생산 체계를 구축하
기 위하여 57개 부품을 국산 화 한다.
품목명은 상공부가 고시공고 한다.
(2)고급 전자제품을 생산하여
수출 증대에 기여한다.
(3)첨단 전자제품을 개발한다.
*컴퓨터
* 반도체
*통신기기 등
(4 ) 상공부는 전자제품의 품질향 상 대책을 강화한다
전자제품의 품질 향상괴 신제 품개발을 위한 시험실습과 연구는 계속 유지한다
(5)구미전자 기지를 건설하여
전자 공업의 집중적이며 효율적
인생산을 도모한다.
이를 위하여 구미공단 1.2.3단 지를 확창하여 전자 전용 단지 화한다.
( 이상 상공부 윤정우 담당 과장 작성, 중화학
기획단 보완)
이리하여 상공부의 실무 전문가가 작성한 전자공업 육성계획을 청와대와 기획단이 보완하여 중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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