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오늘따라 바람이
저렇게 쉴 새 없이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의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풀잎에
나뭇가지에
들길에 마을에
가을날 잎들이 말갛게 쏠리듯이
나는 오늘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의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아 지금 바람이
저렇게 못 견디게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또 내가
내가 잃은 모든 것을 되찾고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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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깊고 푸른 심성을 시로 쓴 시인 박성룡, 한 시절 한국 시단에 '쓰리 박'이란 말이 있었다. 박재삼, 박성룡, 박용래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만큼 그 세 사람의 박씨 성을 가진 시인들은 좋은 시를 썼다는 얘기다.
현실의 삶이나 주장에 초연한 듯하면서 사물과 세상의 삶에 무심하지 않은 박성룡 시인의 시가 좋았다. 어느 시를 읽든지 초록빛 물감이 입 속을 통해 전신에 번지는 듯했다.
이 또한 시가 주는 묘한 효과와 어쩌면 조용한 흥분 같은 것. 나 아닌 나로 바꾸는 순간, 시는 그렇게 최면의 효과가 있다. 이 시를 읽고 푸른 잎처럼 되어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고 유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