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의 기분 / 최지온
기분은 증발되지 않는다
누군가 휘저으면
휘젓는 대로
풀어지는 물감 속에서
기분은 밀어낼수록 말이 없어진다
손은 공중에 올라가 있고 할 말이 있다는 듯
몇 바퀴 돌다가
불끈 쥔 주먹을 풀면
놓아 준 물고기처럼 달아나야 할 텐데
기분은 슬며시 부족해지고
혼자여서
죽을힘을 다해 혼자라서
물고기는 물에 부딪치며 사라지고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기분은 번번이 살아남아
깨뜨리는 상상을 한다
세상의 모든 마지막을 끌어 모으듯
들킬 때까지 꿋꿋하게 깨지고
물을 닮아가다가
물이 된다
그것은 나를 던지는 것과 같고
아무리 던져 버려도
물색에 잠시 숨어 있을 뿐이다
2023년 모던포엠 5월호 발표
최지온 시인
2019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시집으로 『양은 매일 시작한다』
2022년 아르코 발표지원 수혜
첫댓글 기분을 '사랑'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아니면 '믿음'? 어느 단어를 넣어도 좋은 시제가 마음에 듭니다. 시적 대상을 혼자가 아닌 공동체로 삼으심에 이리 좋은 시가 탄생 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