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믿어야 하는 당연한 하느님
아주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을 거다. 하느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저분이 내 부모라는 사실에 믿음이 필요 없는 거처럼 하느님은 그들에게 그런 분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야 하게 됐다. 있는 힘을 다하고 온갖 방식으로 설득해야 간신히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세상사가 너무 복잡해져서 하느님 생각할 겨를이 없고, 또 그런 유전자가 대물림되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거 같다.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을 요구하셨다. 치유와 구마 등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 계신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그 당시 그런 치유와 기적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던 거 같다. 다른 이들도 치유와 구마를 했다. 예수님이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귀의 힘을 빌려 그런 기적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루카 11,19; 마태 12,17)’ 하며 반문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는 달리 어떤 요란한 주술 없이,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 즉시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는 이들은 죽지 않고, 마귀가 지배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인간은 본래 죽지 않았다. 지혜서는 증언한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지혜 1,1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지혜 2,23-24).”
예수님은 아픈 이들에게 완벽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을 거라는(마르 5,28) 그 여인의 믿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누가 봐도 미신적이다. 하지만 온전해지고 싶은 바람은 거기서 서로 밀치며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던 어떤 이들보다 간절했다. 그래서였을까, 예수님은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치유 받은 그를 찾으셨다. 나무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채워주고 교정시키고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시려는 것이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그 여인에게 치유가 시작된 것과 함께 믿음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어린 딸이 죽은 소식을 전해 들은 야이로 회당장은 예수님께 대한 실낱같은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한 믿음을 고백해야 했다. 죽은 딸이 어떻게 되살아난단 말인가? 그나마도 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이 그를 도와주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실 때 기적을 많이 일으키시고 죽은 이도 여럿 살려내셨다.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지만 옛날 그때처럼은 아니다. 이제 예수님 옷이나 손 대신 믿음을, 그리고 그분의 육성 대신 계명을 갖고 있다. 세속적 가치를 거스르는 주님의 계명은 믿음이 없이는, 주님의 은총 없이는 지키기 어렵다. 내 마음이 주님의 계명으로 기울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나는 이미 그분 안에 있고, 삼위일체 하느님이 내 안에서 사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다(2티모 1,10).
예수님, 주님을 믿고 계명을 지켜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하니 믿음을 더해 주시고 하늘나라의 계명을 지키게 주님의 은총으로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나라를 보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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