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 다 올랐구나 했는데 또 봉우리… 힘찬 산세에 숨이 ‘턱턱’
문화일보 기사 입력 : 2013-06-14 14:19
양평 = 박광재 기자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 완등’ 후 국내에 머물(?) 때에는 거의 매일 ‘행사’와 ‘강의’로 바쁘다. 1주일에 서너 번씩 청소년, 공무원, 회사원, 주부 등 전 계층을 상대로 그가 겪어 온 극한의 산악 인생을 토대로 ‘도전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 또 해군 특수전부대(UDT) 출신인 그는 군과 경찰을 상대로 ‘안보 강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엄 대장과 함께한 여름에 경기 양평군 용문산(龍門山·1157m) 행을 결심(?)하게 된 것도 현충일(6일) 징검다리 연휴였던 지난 주말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대해 이야기하던 자리에서다.
6일은 현충일, 25일은 6·25전쟁 발발일, 29일은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이다. 그는 “6월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몸과 마음을 다잡아 추모하는 달이기에 6·25 격전지였던 중부권 산행을 할 때면 더욱 숙연해집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용문산도 한국전쟁의 유명한 격전지였죠”라며 전쟁 용사들에 대한 추모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올해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함께 ‘DMZ 평화대장정’에 도전한다. 엄홍길휴먼재단(이사장 이재후)과 국가보훈처, 한국전쟁기념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DMZ 평화대장정’은 남녀 대학생 155명을 선발해 7월 27일부터 8월 10일까지 14박 15일간 휴전선을 따라 155마일을 걷는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이다. 맑은 날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면 정동쪽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용문산이다. 직선거리로는 40여㎞인데 백운대에서 보일 정도이니 용문산의 높이와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6·25 당시 유명했던 용문산전투가 말해주듯, 용문산은 사방 100㎞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여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용문산전투는 1951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6사단 용문산연대 전 장병이 결사항전으로 중공군 제2차 춘계공세에서 제63군 예하 3개 사단(2만여 명)을 격멸한 전투로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교범에 사주방어의 성공사례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승전사’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가 세워져 있어 매년 전승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m)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용문산은 많은 봉우리들과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은 데다 철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렸다.
용문산 주변 봉우리들 역시 만만치 않다. 정상 북쪽에는 992m의 문례봉이 바로 붙어 있고, 이어 봉미산(855m)이 솟아 있다. 동쪽에는 문례봉에서 뻗어나간 산줄기에 도일봉(841m)이, 두 봉우리 사이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에는 용조봉(635m)과 중원산(799.8m)이 있다. 정상과 문례봉 사이 문례재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에 솟은 용문봉(947m)은 그 아래 산자락에 천년고찰 용문사를 품고 있다.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와 용문봉 능선 사이의 용계 등은 예전부터 이 산의 이름이 용(龍)과 관련이 있었음을 설명해 준다. 그래서 용을 뜻하는 ‘미르’ ‘미지’가 변해서 ‘미지산(彌智山)’ 또는 ‘용산(龍山)’으로도 불렸다는 얘기다. 정상에서 장군봉(1045m), 함왕봉(889m), 백운봉(940m)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는 마치 한 마리 용이 꿈틀대며 흘러내리는 모습이어서 이 같은 사실을 다시 입증하고 있었다.
용문산은 한국전쟁 이후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일대의 등산로가 폐쇄됐다가 지난 2007년 11월 정상이 개방되면서 서울 근교의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도상에서 정상인 ‘가섭봉’이란 이름은 잠시 사라졌었다. 최근에서야 인터넷 산행기에 ‘가섭봉’과 그곳의 흔적인 ‘가섭치’에 대한 얘기가 올라오는 정도다.
용문산은 다른 산에 비해 실제 등반 고도가 높은 편이다. 대개 용문사를 거쳐 마당바위를 들머리로 하는데 거의 500여m를 치고 올라야 능선에 다다를 수 있다. 능선도 굴곡이 심한데다 수많은 암릉과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피로감을 더한다. 또 정상에 다 올랐다 싶으면 다음 봉우리가 나타나기를 서너 차례 반복해 더욱 힘이 든다. 초급자들에게는 좀 힘겨운 산이다. 등산 애호가들도 용문사에서 정상까지 3.4㎞ 정도밖에 되지 않아 우습게 생각하고 등산을 시작하지만 짧은 거리에서 급격하게 높아지게 돼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
지난 10일 엄 대장과 함께한 용문산행이 그랬다. 때 이른 한여름 더위와 오후 일정에 쫓겨(?) 정상까지 최단거리 코스를 고집하다 ‘극기 훈련’이 돼 버렸다. 짧은 거리에서 고도를 갑자기 올려야 하니 급경사를 각오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용문사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을 찍고 다시 상원사 갈림길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가 꼬박 5시간이 걸렸다. 너덜바위로 이어진 하산 길도 만만치 않다.
한여름에는 용문산 서쪽 자락인 양평군 옥천리 백운봉 기슭의 천년고찰 사나사(舍那寺)에서 용천리를 거쳐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 함왕성지-장군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러 마당바위와 용문사로 하산하는 코스도 각광을 받는다. 12㎞ 정도로 보통 7시간여 걸린다. 그러나 지난 10일 이 코스를 타고 정상에서 만난 50대의 등산객은 “때 이른 더위 때문이었는지 반대편 코스인 용문사-마당바위코스보다 더 힘겨운 것 같았다”면서 “용문산은 어디든 좀 힘들다”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종주코스는 용문사 일주문 직전 매표소에서 용문봉을 거쳐 정상을 지나 함왕봉- 백운봉으로 해서 세수골로 떨어지는 코스가 있는데 이것 역시 7시간여 걸린다. 그래서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불리는 백운봉만 따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용문산은 어느 코스를 타더라도 볼거리와 조망이 각기 달라 실망하지 않는다.
엄 대장은 “용문산 산행은 계속되는 오르막과 많은 계단, 암벽과 험난한 너덜 바윗길로 인내와 체력이 필요한 코스인 만큼, 등산화는 필수이고 특히 요즈음 같은 여름에는 넉넉한 물과 여벌 옷을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용문산 산행지도
용문산 [가섭봉~장군봉~백운봉] 고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