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공동체에 가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과거에 빡센 운동을 같이 했던 형님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때와 달랐다.
실짝 떨리고 있었다.
"아우야. 인석이가 자다가 죽었대. 아침이 되었는데도 기척이 없자 아내가 흔들어 깨웠는데 그땐 이미 저승으로 떠난 뒤였다는구만."
순간, 내 가슴도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한 때는 한반도 횡단과 종단을 비롯해 국,내외 수많은 대회에 참전해 열정과 집념을 불태웠던 터프가이였다.
눈물 많고 정이 깊어 늘 주변을 챙기며 살았던,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한 남자였다.
올해 나이 61세.
강남구에 건물도 소유하고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건강만큼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형인데 어찌 이렇게 황망하게 우리들 곁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공동체에 전달할 물품들을 트렁크에 싣고 가던 길이었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하늘은 변함없이 맑았지만 내 마음속에선 억장이 여러갈래로 무너지고 있었다.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을 숱하게 걷고 달리고 뛰었던 사내였다.
대한민국의 '트레일런'과 '울트라런'의 서막을 개척했던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영남 알프스 등 거대한 산들도 단숨에 뛰어서 넘었고, 다시 뛰어서 원점으로 회귀할 만큼 강철같은 체력과 정신력을 겸비한 남자였다.
늘 열정적인 모습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건넸던 건장한 중년이었다.
오늘날 현저하게 성장한 코리아 '익스트림 스포츠'의 한 분야에서, 함께 숱한 땀을 흘리며 초석을 깔았던 듬직한 동료였다.
그랬던 형이 어쩌다가 인사 한마디 없이 이렇게 홀연히 떠날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운명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건 신의 영역이니까.
차를 갓길에 세워둔 채,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형님과 통화를 좀 더 나누다 끊었다.
"마음을 비우며 살자" 했다.
"하루 하루 재미있고 의미있게 살자" 했다.
"흔들림 없이 감사와 헌신의 발자국을 찍어가자" 했다.
형님과도 이런 말 외엔 더이상 나눌 얘기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시간은 '광속'으로 흐른다.
일장춘몽같은 인생길에 소망이 있다면 그건 단 하나.
무욕의 감사함으로 활짝 웃음짓는 나날이길 바랄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주변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화요일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도 시간을 쪼개서 공동체 한 곳을 방문하려 한다.
인생이 긴 것 같아도 매번 부음을 들을 때마다 절감하는 바지만 참 허망하고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더욱 내실있고 향기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인석형의 명복을 빈다.
"편히 영면하시길"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