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김도 시인

[시산맥]

잠수/김도

두 눈까지 하얀 말이 있을 거야

어디도 가지 않고 앉아 있을 거고

등에 오르면 일어서서 걷기 시작할 거야

초원은 점점 어두워질 거야 아무것도 안 보일 때까지

시끄러울 수도 있고 조용할 수도 있어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눈이 내릴 수도 있는 초원은

어디로 가든 다 길이라서 길을 잃기 쉬울 테지만

말은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거야

도착할 때까지 아주 오랜 나날이겠지만

영원처럼 길어서 찰나처럼 짧을 거고

그동안 기억하게 될 거야

말에게 오기까지 있었던 일을

깜깜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을

신경질적인 핏줄처럼 드러나는

초원에 드문드문 서 있는 돌기둥이나

번개의 모양과 거대한 새를

기억하게 될 거야

말이 내려주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잊게 될 거야

말이 떠나고 혼자로 남으면

여행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여행이 시작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올 거야

새하얗게 밝아질 거야

처음으로 숨이 막혀서 처음으로 숨을 쉴 거야

여기야 다 왔어 이제부터 혼자 가면 돼

저 앞에 말이 있어

그럼 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