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한국인의 ‘한’ 대변해 인기
출처 농민신문 :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0728500563
사랑과 평화 ‘울고 싶어라’
공감과 위로를 주는 노래 ‘울고 싶어라’가 담긴 사랑과 평화 3집 음반.
집중호우로 인명과 농작물 피해가 막심한 판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 생겨 나라가 어수선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픔과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는 노래 ‘울고 싶어라’로 아픔을 나눠볼까 한다. 밴드 사랑과 평화는 이남이·최이철 등이 결성한 밴드로, 가수 이장희가 주선해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멤버 가운데 이남이는 이전부터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사랑과 평화에서도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못했다. 게다가 록밴드들이 자주 그랬듯 멤버들과 불화도 있었다. 그는 음악활동이 어려워지자 1980년쯤 경기 용인에 칩거하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음악을 하지 못해 참담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자신의 심경을 담은 노래 ‘울고 싶어라’를 만들었다.
노래는 1981년 ‘나비소녀’를 불러 신예로 떠오른 가수 김세화에게 전해져 녹음됐지만 레코드사는 상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이 곡은 사장되고 말았다.
이후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는 1988년 88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치르게 됐다. 당시 정부는 군사독재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이전에 없던 다양한 조처를 했다. 이때 창법 저속, 퇴폐 등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송 정지를 당한 가수들도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남이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1988년 사랑과 평화의 ‘울고 싶어라’가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때만 해도 가수는 외모를 잘 가꿔 방송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한마디로 방송용 의상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남이는 반대로 누더기 의상에 벙거지를 쓰고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이는 콘셉트라기보다는 음악을 하지 못한 자신의 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이남이의 이례적인 모습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마치 한국전쟁을 겪고 고도성장과 억압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한을 대변하는 듯했으리라.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 다/ 왜 가야만 하니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수많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 잊었니/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이상하게도 삶 속에서 곤란한 일은 연달아 오곤 한다. 그럴 때면 맹자가 고자와 나눈 대화인 ‘고자장(告子章)’을 떠올리게 된다. 하늘은 한 인물에게 큰일을 맡기기 전에 뼈를 깎는 굶주림과 고통을 줘 인내심을 기르게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수해와 각종 문제를 함께 극복했으면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빛명상
풍요로운 가을 벌판에 서니
가을이 다가오는 길목,
풍요로운 벌판에 서니
가슴 한쪽이 꽉 차옵니다.
익어가는 벼 이삭
단맛 가득 배어든 대추 한 알 속에
지난겨울 매섭던 동장군 바람이
새싹 틔워내고 꽃망울 부풀리던 촉촉한 봄비가
땀방울 흘러내리게 하던 강렬한 여름 태양빛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모든 것 보듬어주시는
어머니와도 같은 그분의 손길이 배어 있습니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00
어머니와 같은 풍요로운 가을 벌판에 서니
딸애 팔목에서 금분이 쏟아지는 것을 본 후
하루는 회원인 ㅈ씨가 어떤 여성 한 분을 데리고 왔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들렀다고 했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주부 사원으로 심장이 무척 안 좋고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직장에서나 집에서 신경이 항상 날카롭고, 조금만 화가 나는 일이나 아이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속까지 답답하고 좋지 않다고 했다.
그 원인은 남편과의 사이에서의 어떤 불만임이 대화 중에서 나왔다. 답은 간단했다. 남편을 아기처럼 대하라고 했다. 시어머니도 아기처럼 생각하고 대하라고 했다. 아이 셋을 키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또한 심장도 맑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초광력超光力을 주었다. 그녀에게서 박하향 같이 감미로운 향기와 함께 손바닥에서 금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심장도 편안해졌고 마음도 너그러워졌으며 직장에서도 예전과 같이 실적이 1위로 다시 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도 처음에는 의심하다가 딸아이의 팔뚝에서 금분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이젠 긍정적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언젠가 초광력超光力으로 귀의할 것 같다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그 이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ㅈ씨가 이곳을 소개할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요즈음 잡지나 일간지에 시리즈로 나오는 초능력에 관한 기사 내용의 한 부분 같다고 생각하고, 그냥 건성으로 대답하고 지나쳤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는 ㅈ씨가 기어코 이곳으로 가보기만 하자고 하면서 그녀의 정회원 등록도 ㅈ씨가 했다고 한다. 물론 회비는 ㅈ씨가 내주면서 만약 효험이 없으면 돈을 갚지 말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ㅈ씨는 ‘버거씨병’이라는, 의학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병으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온 얼굴에까지 종기가 나 있었고 발목도 무척 악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가벼워져 일도 열심히 하며, 학회에도 가끔 나와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가며 적극적이다.
또한 그녀는 마음을 비우니, 속이 시원해졌으며 넉넉한 삶은 초광력超光力 속에 함께 할 때
생겨나며,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고 했다.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자는 지경이 오더라도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털털 웃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만족이 끝없기에 계속 좇아가야만 하니 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선생님, 마음이 맑게 되다 보니 일감도 더 많이 생기고, 보는 것마다 즐거우니 건강인들 안 찾아오고 어쩌겠습니까?”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 1쇄 P. 186~187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무한의 우주근원 우주생명원천의 기쁨과 행복빛안의 특은의 감사함 담아 무궁한 공경과 감사마음드립니다...
거저온 가을이 아님을 풍요로운 벌판에서 서서 감사드립니다.
빛으로 오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