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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으니
절골삼거리-卍심원사-부부바위-석대암-능선-보개산 지장봉(△877.4) 왕복-화인봉(805.0)-동마네미재-북대(北臺710.8)-x671.2 분기봉-다라미재(450m)-재인폭포-주차장
거리 : 재인폭포에서 주차장까지도보 포함 16.59km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신서면 포천시 관인면
도엽명 : 철원
이 능선은 한북정맥에서 분기한 한탄강 서쪽 울타리인 왕재지맥이 철원군 철원읍에 이르러 남쪽으로 내 보낸 차탄천의 동쪽 울타리가 보개지맥이며 보개지맥의 이름을 낳게한 보개산(지장봉)을 지나가는 일반등산로의 능선이다
따라서 지장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가 보개산 정상이며 정상아래 석대암 주지스님의 설명으로는 환희봉(歡喜峰)이 진짜 이름이고 지장봉은 일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연천 쪽에서 오르던지 포천의 관인면 쪽에서 오르던지 등산로와 이정표는 잘 만들어져 있지만 대체적으로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이라 시설의 도움을 받는다
전곡역이나 연천군청 앞에서 39-8번 버스가 절골 경유 수덕원으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서울에서 첫 전철로 도착해서는 금방 맞출 수 없다(첫 버스 전곡터미널06시40분 3시간 간격이니 09시40분 전곡터미널 전곡역 두 번째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겠다
연천역-절골입구 2024년 현재 택시요금 약15.000원
재인폭포에서 한참 걸어 나온 재인폭포 관리사무실과 주차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연천역이나 전곡행 하루 8회의 버스는16시 이후 없다
역시 연천역이나 전곡역까지 2024년 현재 택시요금 약15.000원 정도.
1/2만5천 지도 크게 보기
2024년 6월29일 (토) 맑음
단풍과 본인 2명
몹시 가물던 날씨가 장마권에 접어들면서 일요일 전국에 비 내린다는 예보다 토요일 양주에 거주하는 단풍과 지장봉 능선 오랜만에 걸어보자고 약속하고 첫 전철로 덕계역에서 단풍과 합류 07시20분 연천역 도착 후 나와 보니 대기하는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K택시를 호출해서 절골 입구로 가는데 택시기사 曰 조금 늦은 시간이면 택시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는 주말에 인근에 많은 부대에서 외출 나가는 장병들이 전날 보통 예약을 해서 연천시가지에 택시가 없고 다 부대인근으로 간다는 설명이다
지장봉을 관인 쪽이나 동송 쪽에서는 올라보았지만 연천 쪽은 처음이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절골 쪽으로 포병부대가 있는 삼거리에서 택시를 하차하고 부대담장을 끼고 동쪽 골자기 포장된 도로를 걷다보니 심원사지 부도군 그리고 새로 단장된 심원사를 지나니 지장봉 안내판과 이정표들이 나타난다
▽ 화인봉 오르며 돌아본 지장봉
▽ 예전 의정부역 이후 동두천역에서 꼬마열차로 갈아타고 다닌 후 전철이 생긴 후 새로 생긴 연천역사와 옛 역사
▽ 절골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서쪽 부대담장을 끼고 절골로 들어선다
▽ 심원사지 부도군(深源寺址 浮屠群)
▽ 우측(남)으로 돌아보니 오후에 내려선 다라미고개가 푹 꺼진 모습으로 보인다
▽ 심원사
深源寺址 浮屠群은 조선시대 승려들의 유골을 봉안한 12기의 석조 불탑 부도군이다
199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심원사는 무학대사가 중창한 이래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6.25동란으로 소실되어 현재 사지(寺址)만 전하고 있다
「심원사대종불사기」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보개산(寶蓋山) 자락에 있는 심원사(深源寺)와 관련하여 전하여지는 이야기이다
심원사 대종불사(大鐘佛事)를 통하여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 해발 약110m 절골입구에서 서쪽으로 평탄하게 도로를 따르다가 심원사를 지나고 동쪽에서 북동쪽으로 가파른 오름이다
▽ 약510m 지점 길 우측사면에 자리한「부부바위」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부인이다
▽ 약620m 지장봉과 화인봉 중간 아래에 위치한 석대암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한다
▽ 석대암에서 크게 당겨본 다라미고개 너머 멀리 감악산(674.9)을 본다
▽ 석대암에서 한동안 아주 가파른 오름이다
석대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하는 심원사(深源寺)의 부속암자이며 720년(성덕왕19)에 사냥꾼 이순석(李順碩)이 출가하여 창건한 절로서 창건설화가 전래한다
어느 날 순석과 순득(順得) 두 사냥꾼은 금빛 멧돼지에게 활을 쏘았는데 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 관음봉 쪽으로 달아났다 그 뒤를 쫓아 샘물이 있는 곳까지 가니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지장보살석상(地藏菩薩石像)만이 샘 속에 있었다
이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두 사람은 참회하고 출가하여 도를 이루었다
그 뒤 그들은 300명의 제자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고 두 사람이 항상 숲 속에서 돌(石)을 모아 대(臺)를 쌓고 그 위에서 정진하였으므로 석대사라고 이름 하였다
고려 때 중렬(中悅)이 중창하였고 1400년(정종2) 사승(寺僧)들이 삼창하였으며 1861년(철종12) 내탕금(內帑金)을 받아 중건하였다 1887년(고종24)김상궁(金尙宮)의 시주를 얻어 중건하였고 1931년 모연금(募緣金)으로 중수하였으며 1935년 주지 서상인(徐相仁)이 중수하였다
이 절은 창건설화 외에도 절에 얽힌 많은 이적(異蹟)들이 전래되고 있다
절이 있는 보개산은 금강산·오대산과 함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는 영산(靈山)이라 하며 지장보살상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 지장보살의 상주처(常住處)로서 높이 신봉되는 기도도량이다
▽ 약765m 화인봉 북쪽아래 보개지맥 능선에 올라서서 배낭을 두고 북쪽 0.7km의 지장봉 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 바위아래 우측사면으로 돌아가면 옛 軍흔적이다
▽ 삼각점과 삼형제봉2.9km 등 표시의 지장봉 정상 석대암 스님은 歡喜峰 이라 했다
▽ 북동쪽 금학산(946.9) 좌측 대소라치 좌측(북) 보개봉(752.0) 좌측 고대산(831.8)이다
▽ 크게 보는 금학산과 우측 용정산(672.0)으로 이어지는 용정능선과 우측 앞은 관인북봉(710.0)
▽ 크게 당겨보는 용정능선 너머 멀리 북한 땅 오성산(1040.0)이고 중앙 능선은 대득지맥 끝자락이다
▽ 남동쪽 관인남봉(710.0) 너머 고남산(643.2) 그 너머 멀리 명성산(921.9) 그 좌측으로 광덕산(1044.0) 그 좌측 복주산(1151.9)로 이어지고 대성산(1174.1) 사진우측으로 희미하지만 화악산(1468.3) 국망봉(1167.3)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 크게 보는 고남산 명성산 각흘봉 중앙 광덕산과 그 좌측 비죽한 복주산이다
▽ 크게 보는 대성산 그 앞은 복계산(△1.054)
▽ 바로 앞 진행할 북대와 그 우측 다라미재로 이어지는 능선과 성산 좌측은 향로봉(612.1) 종자산(643.8) 우측 뒤는 보장산(554.2) 아주 멀리 포천 국사봉 왕방산이고 사진 우측 마차산(588.4)과 그 우측 감악산(674.9)
▽ 크게 보는 좌측 마차산 우측 감악산
▽ 크게 보는 우측 뒤 비죽거리는 소요산(587.5) 그 좌측(사진중앙 앞) 종현산(584.7) 좌측 멀리 국사봉(754.9) 왕방산736.4)이다
▽ 크게 보는 북대 좌측 향로봉 그 앞 종자산 우측 앞 보장산 사진 우측 종현산
▽ 중앙 바로 앞 화인봉 이어 북대 향로봉 종자산 보장산 종자산 좌측은 불무산(662.7) 불무산 앞쪽 작은 은장산(454.0) 불무산 좌측 관음산 사향산으로 이어진다
보개산 지장봉(地藏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보개산(寶蓋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위치는 연천현 동북쪽 20리의 철원 경계부로 되어 있다 또한 보개산고성(寶蓋山古城)이 동북쪽으로 15리에 있으며 둘레는 4리이고 그 가운데에 우물이 3개 있다고 기록하였다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보개산이 철원에서 서남쪽으로 17리 지점이며 이로부터 맥이 서쪽으로 달려 불견산(佛見山)으로 이어진다
「연천읍지」에는 거리가 30리 지점이며 이 산의 찬취암(攅翠岩)에 오르면 철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여지도」에는 상기한 위치 정보에 부합하게 표기되었지만「해동지도」에서는 연천현의 남동부에 영평과의 경계부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남사면 골짜기에는 지장암이 있으며 지장골(地藏洞)이라는 마을도 자리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보개산과 지장봉이 병기되어 있으며 높이는 877.4m이고 연천군과 철원군의 경계로 기록하였다
조망을 한참 즐기고 다시 돌아간다
▽ 내려서며 바로 앞 화인봉
▽ 다시 배낭으로 내려선 후 막초 마시고 출발 전면 화인봉 오름
▽ 화인봉 오르며 돌아본 지장봉과 우측 금학산이다
▽ 중리저수지6.4km의 좁은 공터의 바위봉우리 화인봉 정상이다
▽ 화인봉에서의 내림
▽ 내려서면서 바라본 북대 향로봉 종자산
▽ 지장계곡 좌측 관인남봉 중앙 낮은 은장산 그 뒤 불무산
▽ 좌측 칫숲0.7km 우측 절골 삼형제봉1.5km 동마네미재로 내려섰다
화인봉(花人峰)은 지장봉의 남쪽에 있으며 지장봉의 산줄기와 연결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보개산의 한 봉우리로서 화인봉(化人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높이는 805m이다
화인봉은 근대에 들어 지명이 변경된 것으로 짐작된다
▽ 약620m 분기봉 오름 좌측은 벼랑이다
▽ 약620m 분기봉에서 내려선다
▽ 다시 잠시 오름 등고선으로는 내려서는 것 같지만 잠시 오르내림이다
▽ ?
▽ 암벽을 좌측으로 돌면 이정목이고 북대를 향한 오름이다
▽ 올라선 좌측능선 분기점 오래된 헬기장 흔적이고 절터0.7km 갈림길이다
▽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살짝 비켜난 북대 정상은 빼곡한 잡목들이다 막초 마시고
▽ 남동쪽 삼형제봉 향로봉(612.1) 분기점인 북대에서 진행방향 남서쪽 완만한 능선이다
▽ 완만한 능선 잠시 올라서면 약650m 좌측 능선 분기봉이다
▽ 분기봉에서 잠시 내려서면 좌측 바위사이 협곡이 보이고 바위의 능선을 피해 좌측사면으로 잠시 돌아 오른 약650m 좌측능선 분기봉
▽ 위 분기봉에서 잠시 내려선 후 완만하게 오르면 약660m 남쪽 x706.0 △699.5m능선 분기봉이다
▽ 남쪽으로 살짝 비켜나면 전면 시야가 터지면서 좌측 향로봉 중앙 종자산이 잘 보인다
▽ 향로봉 저 멀리 바위들의 명성산이 보인다
▽ 그나마 바람이 불어 막초마시고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가 서쪽으로 내려간다
▽ 서쪽이다가 북서쪽으로 짧은 오르내림 후 전면 바위벽이 막는 우측 절골 방향 분기점에서 좌측(남서)으로 틀어 내려간다
▽ 내려서며 오래된 軍시설
▽ 석축의 軍시설을 지나 올라선 약538m 남쪽능선 분기봉
▽ 표고차 약80m 아주 가파르게 내려서는데 옛 군인들이 다니던 시설이다
▽ 절골 방면 856x부대장 경고판이 있는 약450m 푹 패어진 다라미고개에 내려선다
▽ 다라미고개에서 지장봉을 마지막으로 당겨본다
장승천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 현재의 5사단 작전지역에서 미 25사단에 배속된 터키군이 수행했던 성공적인 지연전으로 동막골을 흐르는 장승천을 인용하여 명명되었다
당시 터키군 여단은 현재의 경기도 연천의 대광리 남방에 위치한 옛고개 로부터 541고지 남동쪽과 지장봉 북서쪽에 위치한 425고지에 이르는 지역에서 옛고개 일대와 425고지 일대 전투지경선을 따라 침투한 중공군의 측 후방 공격과 퇴로차단에도 불구하고 축차적인 진지점령 및 예비대의 엄호 아래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특히 425고지 방어중대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각개행동으로 돌파하였으며 다라미고개 정상에 배치된 경계소대는 전멸하는 순간까지도 치열한 전투로 결정적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후방의 미군과 프랑스 및 필리핀군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차후 반격작전이 가능하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6명이 전사하고 105명이 실종되었으며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25사단이 추계한 총 전과에 의하면 당시 중공군 약1000여 명을 사살하고 2000여 명에게 피해를 입혔다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산행을 하지 않던 단풍을 생각해서 느긋한 산행이 이었고 여기서 막초 마시며 성산(520) 오봉산(△361.6)으로 이어지는 보개지맥을 버리고 남쪽 임도를 따라서 재인폭포로 하산하기로 한다
▽ 그냥 내려서기만 하면 되지만 긴 여정이다
▽ 내려서면서 좌측 위로 지나온 능선을 본다
▽ 내려서면서 곳곳 軍시설들이고
▽ 철문을 여닫고
▽ 아차! 전면 철문과 울타리가 재인폭포인데 軍부대로 착각하고 동쪽 중리저수지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르다가 다시 역으로....
▽ 부대로 착각했던 곳 굳게 잠긴 철문을 넘어 재인폭포 휴양지로 들어선다
▽ 선녀탕 이란다
▽ 재인폭포
才人瀑布는 북쪽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18m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는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폭포 아래에 수심 5m에 달하는 포트홀을 만들었는데 포트홀은 하천에서 암석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곳에 와류(물이 회오리 치는 현상)가 발생하여 깊은 구멍이 생겨난 것을 가르킨다
재인폭포란 이름은 줄타기 재인이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유래에서 비롯한 것이며 여기에다 폭포의 소재지 고문리가「코문이」로 구전되면서 두 개의 화소(話素)가 하나의 이야기로 정착되어 지금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 전기차 외 걸어갈 수밖에 없는 도로를 따르며 도로 좌우 망초꽃 군락지를 본다
▽ 인근 고문교가 있는 주차장과 관리사무소 부근 우측(북) 보개지맥 x577.9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지능선의 △410.6m를 보며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며 남은 막초를 마시고
▽ 전곡역 옛 역사가 아닌 전철 신 역사도 처음이다
이후 택시로 연천보다 번화한 전곡으로 달려가서 시원한 냉면에 반주를 곁들이고 전곡역에서 전철로 귀가한다.
첫댓글 신 전곡역은 저도 처음 봅니다. 단풍님도 오랜만이네요...다라미고개도 정겨운 이름이고요...
뭐 이제는 설렁설렁 옛 추억 파먹기 산행입니다
어제로 단풍과 올해 두 번째 산행 맨날 같이할 수는 없고 이제 같이 늙어가는 산행임다 ㅎㅎㅎ
계곡물이 바싹 말랐을 때인데 폭포에 물이 흐르긴 하네요. 재인폭포에서 나오는 버스가 16시가 막차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