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남리(斗南里)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 낮은 구릉과 평지로 되어있으며,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서쪽에는 길산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화산천이 흐른다. 두문이들, 구수골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란동(고란열), 소로지(외남, 외남리), 오매(오동)가 있다. 고란동은 백제 부흥운동에 실패한 백제 유민들이 처음 부락을 형성하였으며 그 넋으로 난이 많이피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로지는 밭두문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매는 까마귀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남리(斗南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북동쪽 경계부는 해발 고도 100여m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북동쪽 경계부를 제외한 북부, 동부 및 중부의 대부분은 해발 고도 100m 이하의 저평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남서부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흐르는 곡교천의 범람원 충적지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충적지는 대부분이 곡교천의 아래쪽에 분포해 있다. 곡교천의 하안에는 인공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중부와 북부에도 곡교천의 지류 소하천들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소하천 연변에는 국지적으로 소규모의 충적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북동부의 지류 소하천 상류에는 두지 소류지가 축조되어 있다.
곡교천 위쪽의 저평한 지형의 곳곳은 밭과 과수원으로 개발되어 있고, 곡교천 아래쪽의 범람원 충적지는 대부분 논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서쪽에는 풍서천과 곡교천이 합류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천안군 소동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천안군 소동면 죽계리, 두지동 및 석우리를 통폐합하여 두남리라 하고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충청남도 천원군 풍세면 두남리로,
-1991년에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 두남리로,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두남리로,
-그리고 2008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두남리로 각각 변경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대상인 죽계리, 두지동 및 석우리 중 두지동의 일부 자구를 따서 두남리라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에는 두지골, 절골, 댓가, 돌모루, 두터골이 있다. 두지골은 마을의 지형이 뒤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절골은 마을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댓가는 마을에 대나무밭과 내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두남리는 풍세면의 동북부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2.10㎢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51㎢, 밭이 0.13㎢이며(2012.8.31 현재), 총 94가구에 221명[남자 125명, 여자 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풍세면 미죽리, 서쪽으로 풍세면 남관리·용정리·보성리, 남쪽으로 보성리·가송리·미죽리, 북쪽으로 미죽리·남관리 및 동남구 청룡동과 이웃하고 있다. 두남리 1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석우, 납안들 등이 있다.
곡교천과 그 지류 유역 농경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하천 주변의 산기슭 완사면에서는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두지골에서는 해마다 칠석날[음력 7월 7일] 새벽에 마을의 안녕과 가가호호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산신제와 노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전통이 끊어졌다.
지방도 629호선이 두남리의 북서부를 남서~북동 방향으로 지나고, 시도 1호선이 중부를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기타 도로들이 두남리 곳곳에서 지방도 및 시도에 연결된다. 경부선 철도는 두남리의 중부, 북부 및 남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남동쪽에는 천안논산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공공 기관으로 남동부에 한국 수자원 공사 충청 지역 본부 천안 아산 수도 관리단[풍세면 미죽리 산 12번지]이, 북서부에 남관 취수장[풍세면 용정리 18-1]이 각각 있다.
두남리(斗南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부귀면에 있는 리(里).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부귀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옥녀봉의 한 줄기가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부귀면 황금리와 접경하고, 북동쪽으로는 가치재를 경계로 하여 같은 정천면 봉학리와 접경하고, 동남쪽으로는 매남이재를 경계로 하여 진안읍 운산리와 접경하고, 서쪽으로는 수항천과 북쪽으로 뻗어 내린 부귀산을 경계로 하여 부귀면 수항리와 접경한다.
정자천이 서쪽 수항리에서 흘러들어 동북쪽 정천면 월평리로 흘러나가는 중에 회구룡 마을 앞에서 수항천이 합수하는데, 그 부근에 충적지가 발달하여 약간의 들판이 형성되었다. 정자천 북쪽에 회구룡 마을·새터 마을·석정 마을이 있고, 정자천 남쪽에 원두남 마을·삼봉 마을이 있다.
옥녀봉을 등지고 앞에는 정자천이 흐르는 해발 320m의 고랭지 지대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진안군 삼북면의 지역으로 매남이 또는 두남이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석성리(石城里)·회구룡동(回九龍洞)을 병합하여 두남리라 하고 부귀면에 편입하였다.
명칭 유래
형태가 흡사 말(斗)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두남리(斗南里)라고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두봉, 회신 마을이 있다. 두봉마을은 원두남(元斗南)과 삼봉(三峰)마을이 통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필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붓필(筆)자와 인연이 되어서인지 많은 문장가가 배출되었다. 회신은 회구룡(回九龍)과 신기(新基), 이렇게 2개 마을이 통합되여 형성된 분리(分里)이다.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70여년 전에 용이 여덟번이나 하늘에 오를려다가 오르지 못하고 아홉번만에 승천하였다 하여 마을 명칭을 회구룡이라 칭하게 되었다. 옛날에 이 마을 뒷산이 흡사 용과 같아서 산세가 좋기 때문에 이 곳에 터를 잡으면 출중(出衆)한 인물이 나온다고 믿고 이 곳에 정착하게 되어 오늘의 회신마을이 형성되었다.
현황
두남리는 진안군 부귀면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9.87㎢이고, 인구는 102가구 230명[남자 123명, 여자 107명]이 살고 있다 (2013.11.30 현재) . 원두남·삼봉·회신[회구룡·신기·석정]의 3개 행정리로 이뤄져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축산업이며, 주 재배 작물은 벼·고추·인삼·장뇌삼·사과 등이다. 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이 정자천을 따라 지나간다.
원두남 마을에는 돌탑 1기가 있는데 여기서 음력 정월 열나흘날 밤 7~8시에 탑제를 지내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6·25 전쟁 때인 1950.9.29에 후퇴하는 인민군과 진안 결사대[문훈모를 중심으로 인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지역으로 민간인을 포함한 희생자들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두남리 검단사지는 원두남 마을 오른편 산 중턱 암벽 앞에 있다. 현재는 암벽 바로 아래에 칠성각과 요사채 1동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 마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리가 옛 본전 자리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로 수파문 계통의 와편류와 백자편 등이 수습되고 있다.
삼봉 마을은 마을 뒤 골짜기에 메내니재가 있고, 재 옆으로 새로 낸 임도 정상에 마이산 운해 촬영지가 있다.
두남리(斗南里)
함경북도 어랑군 북동부에 있는 리.
북쪽은 경성군 중평리(仲坪里)·용천(룡천)노동자구, 동쪽은 운곡리(雲谷里), 남쪽은 용연리(龍淵里:룡연리), 서쪽은 화룡리(花龍里)와 접한다.
8·15광복 전에는 경성군 주북면 두남동이었다가
-1949년 10월 두남리로 개편되었다.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됨에 따라 두남리 일부와 영원리가 신설된 어랑군 두남리로 통합되었다.
주북천 하류의 충적지와 그 주변의 산지가 이 지역에 포함된다. 북부에 큰덕이산(462m), 북동부에 진주덕산(541m)이 솟아 있으며, 지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평탄해진다. 남부에는 주북천이 동서쪽으로 흐른다.
산림의 기본 수종은 소나무와 참나무이며, 주북천 기슭에는 황철나무가 많다. 경지면적 중 논이 26%, 밭이 66%, 과수원이 4%, 뽕밭이 3%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채소류·과일·잎담배이다. 고등중학교·인민학교·병원 등의 기관이 있 주요 교통로로 경성∼화성 간 도로가 있으며, 군소재지인 어랑읍까지는 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