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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에서 실질적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내놓았다. 장애인계가 그동안 요구해온 소득보장 등 권리가 대폭 포함된 이번 초안은 장애등급제와 등록제를 기초로 하는 장애인복지법을 완전히 대체하고, 장애인 복지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장애인계의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으로 장애등급제 폐지 자체는 기정사실이 됐다. 정부에서도 2010년부터 3차례 추진단을 꾸려 최근 장애종합판정체계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 방안은 장애등급을 점수로 대체하는 데 그쳤으며, 인정조사표 개편 이외에 소득보장 등 실질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반면, 장애인계는 장애등급제 폐지 방향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와 권리의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방안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이에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는 8일 토론회를 통해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안’, 약칭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발표했다.
![]() ▲장애인권리보장법연대가 8일 이룸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발표했다. |
이날 발표된 법률 초안은 '장애인 권리침해 방지 및 권리옹호', '장애인 판정, 복지서비스 결정 및 제공절차', '장애인 복지서비스' 등 7개 장 14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이 법률 초안은 장애인복지법을 대체하는 것으로,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장애등급제와 등록제를 폐지했다. 또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가 법안에 포함됐으며, 복지서비스 내용과 전달체계, 전달기관 등이 대폭 강화됐다.
구체적으로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을 의료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달리, 초안에서는 사회적 관점으로 장애인을 규정하고자 했다. 또한 장애등급제와 등록제를 대신해, 장애인을 판정하고 복지서비스를 분배하기 위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명시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 개인의 사회적 상황이나 욕구를 파악해 복지서비스 제공량, 제공 방식에 반영했다. 또한 장애인의 복지 권리를 인정하고자 복지서비스 이용권을 부여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서비스 중에서는 그간 장애인계가 요구해 온 소득보장 등 다양한 서비스 내용이 추가됐다. 특히 장애인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에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을 더해 장애인 표준소득보장금액을 규정하고, 소득 유무와 노동 여부를 고려해 지급하도록 했다.
또한 장애인 권리 옹호 기관인 장애인권리옹호센터, 복지 전달체계를 담당하는 중앙·지역장애인지원센터 등을 신설하도록 했고, 그간 비상시적으로 운영되어 온 중앙장애인위원회를 상설 회의체로 전환했다. 이외에도 장애인 탈시설, 장애인지예산제도 등의 내용이 초안에 반영됐다.
![]()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설명하고 있는 김치훈 정책실장. |
이를 두고 이날 토론회 토론자와 참가자들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에서 담고자 하는 내용에 대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법안의 현실성과 다른 장애인 관련법과의 관련성 등 사항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소득보장 조항이 획기적이기는 하나 소득이 많다는 이유로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 보전에서 제외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모든 장애인에게 소득을 보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표준소득보장금액 중 추가 비용에 준하는 금액은 (모든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라고 제안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이 법안이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형태로 제안된 만큼, 기존의 장애인 관련법과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없는지, 실제 작동할 때 관련법과 연계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염 변호사는 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 이용권을 지급하는 내용에 대해서 “서비스 이용권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실태에서 보듯 복지 분야의 시장화를 가속하고 복지 분야 노동자의 이용자 종속성을 급속히 심화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하며, “복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직영 형태의 복지서비스가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은 “국제적으로도 장애인단체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육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안에서는 장애인복지법에서 명시된 장애인단체 육성에 대한 조항마저 삭제해 장애인단체 지원기반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토론자들은 장애인의 정의, 사회참여, 전달체계 등 일부 법 조항이 다소 이상적이라며, 명확성과 실현 가능성을 보완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는 토론회에서 나온 개선 내용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도, 법안의 실현 가능성에 앞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권리의 최대치를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률 초안을 기초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은 “법안에는 설사 무리해 보이더라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초안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안에 담기지 않은 권리는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며 “물론 모든 내용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진 않으나, 장애인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다 담고 난 뒤에 최종적으로 정리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의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 발표에 앞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도 지난 9월 초안을 발표한 바 있어, 장애인계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협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