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정희성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 돌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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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은 그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교수 자리를
사양하고 평생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다.
그의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독자제위들은 기억하시리라. 그는 언제나 올곧게
지켜져야 할 건강한 모랄리즘을 평생 줄기차게 시 속에
견지해 온 이 땅의 몇 안되는 시인이다. 상기한 시는
구태여 해설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냥 가슴으로 스며든다.
이렇게 쉽고 그러나 녹녹치 않은 정신을 보여주는
시인도 드물다.
/ 김민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