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안산에 있는 '제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고교 친구의 모친께서 소천하셨다.
부고를 받고 퇴근 후에 바로 갔다.
친구는 외아들이자 장손이었다.
친구 밑으로 여동생만 네 명이 있었다.
그 점은 알고 있었다.
빈소에 가보니 남자 상주들이 장례예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끔씩 얼굴을 보며 살았던 친구였기에 '맏상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도 낯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교 동창생이었다.
40년이 넘도록 보지 못했지만 '원판 불변의 법칙'은 맞는 말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조문하고 나오면서 상주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다 보니 두 동창생이 '손윗처남'과 '매제' 사이라고 했다.
"허허. 그랬었구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맏상주'와는 그동안 교제가 있었지만 '매제'의 입장이었던 동창생은 한번도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던 친구였다.
단박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이름도 생각났지만 고교 졸업 후 42년이 지난 싯점이라 서로의 교집합이 별로 없었다.
접객실 테이블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잠간 얘기를 나눴다.
'법무부 교정국'에서 평생을 근무한 후에 얼마 전에 퇴직해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본디 말도 별로 없는 조용한 친구였다.
자신의 결혼식 전에 처갓집으로 함을 팔러 갔는데(지금은 그런 풍습이 거의 사라졌음) 집에 들어가 보니 아는 '동창생'이 있었다고 했다.
서로가 놀라면서 상대를 향해 "니가 여기 왠일이냐"고 했단다.
"하하"
충분히 이해가 갔다.
'손윗처남'과 '매제'는 동창생이었지만 서로 사는 지역도, 가는 길도 달랐다.
그리고 관심분야나 성격도 달랐기에 그리 친하지도, 그리 멀지도 않게 '불가근 불가원'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랬구나.
그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젠 퇴직도 했고 시간이 있을 테니 동창회에서 얼굴 좀 보자"고 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자신의 성격 상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솔직했다.
서로의 번호를 주고 받았다.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모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맏상주'의 손님이었다.
조화도 엄청났다.
인생을 야무지게 살아온 친구였다.
내가 그 점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매제였던 다른 동창생은 고딩 때와 마찬가지로 늘 조용했고 겸손했다.
퍼머 머리를 한 것과 눈가에 주름이 있는 점 그리고 얼마간의 흰 머리카락 말고는 그다지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장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소주 한 잔 하자"고 그가 먼저 제안했다.
"좋지 좋아.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연락주라. 장례 잘 치르고"
긴 인생길을 가다보면 우연찮은 기회에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각자의 뒷모습에서 늘 '맑은 향기'가 나도록 투명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데 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다.
좋은 인연이든, 웬수같은 인연이든 우연찮게 조우하는 경우가 많다.
꼭 이런 조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항상 '선업'을 쌓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두 친구의 어머님.
다시 한번 그 분의 명복을 비는 아침이다.
어느새 금요일이다.
날씨는 덥지만 힘차고 재미 있는 주말 보내시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