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편한 50대 아저씨가 어깨에 가방을 맨 채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귀이개를 한 주먹 꺼내어 팔려고 했습니다.
여느 상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심하게 짧은 한쪽 다리 때문에 목발을 짚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몇몇 사람들이 지갑을 매만졌지만 누구도 쉽게 사진 않더군요.
그때 한 아주머니께서 “그거 얼마에요?”라고 물으셨어요.
아저씨는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천 원입니다.
장애인 식구들이 만들어서 아주 튼튼하고 좋아요.” 아주머니께서 천 원을 건네며 이러더군요.
“그건 됐고요. 돈만 가져가요.” 그러자 당황한 표정의 아저씨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장애 식구들의 직업을 마련하려 물건을 파는 것이지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돈 도로 가져가세요.
” 그러곤 승객들을 향해 말을 이었습니다.
“젊어서 다리 한쪽을 잃고 절망으로 허송세월하다가 장애를 인정한 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지금 누리는 행복에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곧이어 지하철 안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승객들이 앞 다투어 물건을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아저씨의 말을 통해 깨달았던 게 아닐까요?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는 사실을요.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몸과 마음에 대한 행복을 잊고 살 때면 천 원이 만들어 낸 그날의 기적을 떠올립니다.
-‘행복한 동행’ 중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7-15)
입으로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도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안에서 살기를 노력하지 않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 뜻과 내 방식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는 나의 욕망과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나의 온 생애를 하느님 앞에 내어드리며 정성껏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