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73장 (구 331장) / 누가복음 8 : 1 - 8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7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8장 1절 – 8절입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러 그들을 섬기더라.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참 많았습니다. 먼저 12제자들입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 시대에 출중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보통사람들을 불러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원래 출중난 사람은 자기 과신이 강합니다. 그리고 자아가 강합니다. 그래서 출중한 사람은 고달픈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제자의 덕목이 겸손이고 그 겸손에서 순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보통사람 출신인 제자들은 처음에는 실패도 하고 후퇴도 하며 무능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한결같이 충실하게 제자의 역할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물론 가룟 유다는 빼고 말입니다. 어쨌든 예수님 곁에는 이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 곁에는 여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여 제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부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냥 스스로 제자가 된 여성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으뜸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마치 우리나라 김씨 이씨처럼 많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앞에 막달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막달라라는 이름은 지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막달라 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는 참 기구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가 과거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막달라 마리아는 한때 최악의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 일행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공궤하였습니다. 또한 섬기는 일에 그 누구보다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의 기록된 여인이 됩니다.
막달라 마리의 사역 중에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공궤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십자가 행렬을 끝까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그 자리에도 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이 지나고 부활의 아침에는 제일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 것도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인도 마리아였습니다. 이쯤 되면 막달라 마리아는 12제자들 보다 그 역할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예수님을 만나 해방 받았으니, 주저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요안나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천사로부터 먼저 통보 받은 여인입니다. 성경은 그 여인을 헤롯의 종 구사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의 어린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요 4:46) 이 요안나는 그때부터 예수님의 여 제자가 되어 물질로 공궤하였습니다.
또 수산나와 다른 여성들도 나타납니다. 수산나는 백합이라는 뜻인데 이름대로 매우 친절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께 와서 고침 받은 여인들입니다. 질병을 고침 받고 병든 마음을 고침 받고 영적으로 고침을 받은 여인들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렇게 고침 받는 경험과 체험이 참 중요합니다. 체험이 믿음을 더 확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을 더 분명하게 하고 확실하게 함은 물론 자아상을 분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적극적이 되게까지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당시는 여성들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사람 숫자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에서조차 여성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으니 당시의 시대상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시대에 여인들을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구원받을 자격을 부여하셨고 복음의 증언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후부터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여성의 역할이 강화되었고 평등주의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아주 열악했습니다. 모든 것이 남성 위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부터 여성이 해방되고 집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되고 배움의 자리로 가게 되고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전도사역에 공궤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지근에서 섬겼고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행하는 일이 마침내는 십자가의 행렬까지 그리고 무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은 마지막에는 부활을 목격하는 은혜를 입게 되었고 그 부활의 목격자로서 그 사실을 전하는 부활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이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 여인들의 헌신과 섬김을 보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가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선용하는 생활 철학입니다. 아끼고 절약하고 섬기고 선용하는 정신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한 줄 알고 적절하게 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용할 것 몇 가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여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헌신의 삶을 살았고 전도의 삶을 살았으며 증거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은 참 행복한 삶입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데 주님을 위한 삶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는 시간을 선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 일에 시간을 선용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두 번째로, 재물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여 제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더라고 말합니다. 물질을 선용하면 엄청난 결과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화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물질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물질은 참 묘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남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선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일행을 극진히 섬겼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의 일행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여인들이었지만, 구원의 감격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 일행을 극진히 섬긴 것입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의 여인들은 예수를 알게 되어 고침 받고 회복 받고 회심하고 개종한 여인들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남은 인생을 철저하게 선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시간, 인생, 물질을 선용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시간을 드려 예배하고 섬기고, 물질을 드려 헌신하고, 남은 인생을 잘 선용하여 주님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