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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징역 4개월, ○○으로 매출 112억 CEO 인생역전
34세에 연 매출 112억 달성한 젊은 농부… ‘부용농산’ 유화성 대표의 성공 비결은?
부추 한 단에 50원…아들 돌잔치 해 줄 돈도 없던 시절
먹기 좋은 크기로 ‘마’ 포장 판매했더니 ‘대박’
‘우엉차’ 홈쇼핑 성공, 100억대 매출 달성
스물한 살 나이에 농사일에 뛰어들어 13년 노력한 끝에 마·우엉을 팔아 연 매출 100억원대를 달성한 부용농산의 유화성 대표(34). 농사를 짓고 있는 땅만 20만평(약 66만㎡)이 넘는다. 마 2000톤, 우엉 1000톤을 수확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약재배 농가 농지 10만평(약 33만㎡)에서 마 1000톤을 수급해도 공급량이 모자란다. 연매출이 112억원에 달한다.
'억' 소리 나는 수치만 보면 농촌에서 '꽃길'만 걸어온 듯 보이지만 유 대표는 고통의 날을 겪으며 성장했다. 신용불량자로 수중에 아들 돌잔치 해줄 돈이 없어 울며 부추를 팔러 다니기도 했고, 4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고향인 경북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유 대표가 대박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2016년 연 매출 112억을 달성한 '부용농산'의 유화성 대표(34).
출처 : 부용농산 제공-어떻게 농사일을 시작하게 됐나
“부모님이 부추 농사를 짓고 계셨다. 아버지가 술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농사일을 도맡으셨다. 어머니를 돕고자 무조건 농사일을 거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농사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한국농수산대학에 들어가 채소학을 전공했다.
부추의 시장가격 기복이 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부추 만두를 사 먹었는데 봉지 겉표지에 생산 공장이 적혀 있더라. 그걸 보고 회사와 연 단위로 계약을 맺고 농산물을 재배하는 ‘계약재배’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봉지에 쓰여 있던 공장들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나의 젊음을 믿고 아버지의 부추 농사 기술을 믿고 우리 농장과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정말 성사가 됐다. 세 개의 공장과 총 500톤 규모의 물량 계약을 했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6억 정도 됐다. 그게 대학교 2학년 시절이다.
2004년 졸업을 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선 계약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농장 규모도 늘렸다. 당시 부모님은 8000평(약 2만6500㎡) 정도 되는 부추밭을 일구고 계셨는데, 터를 넓히고 하우스를 더 지어서 1만5000평(약 5만㎡)으로 늘렸다. 이런 모습을 두 달 정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경영권을 바로 제게 넘기시더라. 하지만 곧 10억의 빚을 지게 됐다.”
-왜 큰 빚을 지게 된 건가
“2004년 당시 쓰레기 만두 파동이 일어났다. 우리는 만두 소에 들어가는 부추를 취급하는 농가였다. kg당 단가를 정하고 1년 내내 공장에 공급하는 구조였는데, 만두 시장 자체가 없어진 꼴이 된 거다. 아예 가동을 멈춘 만두 공장도 많았다. 제가 농업에 뛰어들기 전 이미 부모님이 갖고 계셨던 빚이 있었다. 만두 파동을 겪고 빚이 10억 이상으로 불어났다.
만두 소에 들어가는 부추와 일반 소비자들이 사 먹는 부추는 경작 방법이 다르다. 부추가 만두 피를 뚫고 나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만두 소에 들어가는 부추는 힘이 없고 부드럽다. 시장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사 먹는 부추는 훨씬 빠닥빠닥하다. 만두 소에 들어가는 부추보다 보관 가능 기간도 더 길다. 그렇다 보니 우리 농장에서 키워낸 부추는 시장에서 제값을 받기 매우 어려웠다. 500g 기준으로 한 단에 일반 부추가 600~700원인데 만두용은 50원 쳐주더라.
아들 돌 잔치 비용를 벌려고 대구 매천시장에 부추를 팔러 갔다가 울며 돌아온 기억이 있다. 결혼을 일찍 해서 이미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수중에 아이 돌잔치를 해줄 80만원이 없었다. 시장에서 부추를 팔지 못해서 안동으로 다시 돌아와 동네 마트를 돌며 ‘200원에 받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겨우겨우 아들 돌 비를 마련해 돌아왔다.”
유화성 대표는 자체적으로 20만평이 넘는 규모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다. 부용농산에서 재배한 '장마' 사진.
출처 : 부용농산 제공-그래서 작목을 ‘마’로 바꾼 건가
“그렇다. 안동은 낙동강을 끼고 있어서 물이 풍부하고 모래가 고와 뿌리 작물이 잘 자란다. 그래서 2005년 마 농사를 시작했다. 바로 직전 해에 고온화 현상으로 마 산출량이 극히 적어서 가격이 비쌌던 것도 한몫했다.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처음 마 농사를 지어본 터라 상·중급 품질의 마 생산이 잘 안됐다. 수확한 마를 가지고 시장에 나갔는데 하 등급을 받았다. 그해 마 가격이 더 올라 상품은 kg당 1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 농장에서 생산한 마는 2000원 쳐주더라. 너무 속상했다.”
-그러다가 다시 ‘알뜰마’로 재기했다
“당시 공판장에서는 20kg 단위로 마가 거래됐다. kg당 단가도 비싸서 소비자들이 ‘마=비싼 작물’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다. 길고 큰 마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크기가 작은 마라고 해서 효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 점에 착안해서 온라인에서 1kg 단위로 소포장한 마를 ‘알뜰마’라고 이름 붙여 팔기 시작했다. 평소 온라인에서 중고 가전제품 파는 걸 즐겨 했던 게 도움이 됐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는데 보유하고 있던 마가 동 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인근 마 농가에서 하 등급의 마를 수급해야만 했다. 농가들은 시장에선 안 팔리는 마를 팔 수 있어서 좋고, 저는 부족한 물량을 수급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해에만 500톤 물량을 팔아 치우며 매출 5억을 달성했다.
2007년부터는 가공식품도 생산했다. 하 등급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마를 인근 공장에 맡겨 즙이나 분말 형태로 가공해서 팔았다. 매출이 계속 두 배씩 뛰었다. 2009년에는 신용불량자 신세를 벗어났고 100평(약 330㎡) 짜리 공장도 인수했다. 그게 재기의 시작이었다.”
-2009년 한 차례 큰 고비를 겪고 옥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살면서 큰 잘못을 한때가 있었다. 2009년에 공장을 갓 인수하고서 미결수 신분으로 4개월 동안 안동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원산지 허위 표기’로 고발을 당했다. 물량이 부족해서 시장에 나갔다가 진주·밀양·함안 등에서 올라온 마를 발견하고 그쪽 물량을 끌어다 쓴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안동 참마’라는 이름으로 마를 판매하고 있어서 원산지를 ‘안동’으로 표기했다. 타 지역 마를 섞어서 판매한 게 적발된 거다. 상품의 품질이 다르지 않았기에 무심코 내린 결정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본다. 결국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이후에는 결코 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
이 경험이 나중엔 더 큰 성공의 밑거름 노릇을 했다. 안동 지역의 마 수급량은 계속 부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역명을 브랜드명으로 가져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스토리가 있는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 제가 젊다는 내용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 캐는 젊은 농부’란 타이틀을 만들고 마케팅을 시작했더니 더 많은 고객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유화성 대표는 홈쇼핑 4개 채널에서 '우엉차'를 판매해 100억 매출을 달성했다.
출처 : 부용농산 제공-마 농사로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왜 우엉까지 사업을 확장했나
“2013년부터 우엉을 본격적으로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마는 비료와 거름을 많이 줘야 하는 다비 작물에 속하는데, 땅 밑으로 자라다 보니까 지력(地力)을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한 번 재배하고 나면 다음 해에는 수확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윤작으로 교차재배를 해야 했다. 한해 마를 심어 수확하면 다음해엔 땅을 쉬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 우엉이다. 우엉 이파리가 땅에 떨어져 삭으면 마를 위한 훌륭한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우엉은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김밥용 또는 반찬용으로만 쓰이고 있었는데, 대학과 협력해서 우엉 차를 개발해 판매했다. 우엉 껍질에는 사포닌이 풍부해서 항암 효과가 있다. 또 식이섬유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우엉을 다량 섭취하면 먹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설사를 할 수도 있다. 우엉을 볶아 물에 우려 먹으면 독성이 줄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차’로 개발한 거였다.
홈쇼핑 4개 채널에서 25일 동안 우엉차 판매 방송을 했다. 매출 100억을 달성했다. 득(得)도 있었지만 실(失)도 있었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풀가동하다 보니 고된 업무량에 지쳐서 전체 직원 30명 중 절반이 퇴사를 하는 고비도 있었다.”
유화성 대표와 부용농산 직원들. 부용농산의 평균 직원 나이는 34.5세다.
출처 : 부용농산 홍보영상 캡처-사명감을 갖고 지역 농촌을 선도하겠다는 결심한 계기가 있다고
“홈쇼핑을 진행할 때 방송 중에 삽입되는 짤막한 영상이 필요했다. 홈쇼핑 회사 측에서 농가 주변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작업을 하는 모습을 담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2~3분 정도 모시고 오라고 직원을 한 명 보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전화 한 통이 왔다. 어르신들에게 홈쇼핑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설명하니까 ‘나도 유 대표를 돕겠다’며 어르신들이 모두 자원하셨다는 거다. 결국 승합차 한 대를 더 보내서 20분을 모셔다가 영상을 찍었다.
우엉차 판매를 성공리에 마치자 홈쇼핑 MD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이번 성공의 핵심은 지역 어르신들이 발 벗고 나서 주신 덕분이다. 할매들께 밥 한번 꼭 대접하시라.’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10년 넘게 지역에서 농가를 일구며 소처럼 일했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 덕분이란 생각을 하게 된 거다. 홈쇼핑 성공 덕분에 ‘지역 산물로 내 고향을 선도하는 젊은 농부가 되자’라는 비전을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젊은 농부가 모이는 농촌 대기업을 꿈꾼다고 하던데
“현재 5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 평균 나이가 34.5세다. 80%가 지역 거주자인데 서울이나 대구에서 내려와 정착한 직원들도 있다. 젊은 농부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허드렛일도 허드렛일 답지 않게 여길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귀농을 작정하고 지역으로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농사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마인드를 점검하기 위해서 저희 회사는 정식 채용을 하기 전에 밭에 나가 연수 프로그램을 받도록 한다. 실질적으로 농사일을 시켜서 견디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테스트하는 거다. 연수 중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평가 과정에서 농부 자녀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 2017년부터는 인근 폐교를 인수해서 ‘영파머스 랜드(Young Famer’s Land)’를 운영하고 있다. 젊은 귀농귀촌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많은 귀농귀촌자들이 제게 농사를 해서 성공하는 비결이 뭔지를 묻는다. 되레 그런 분들께 제가 질문을 던진다. ‘혹시 농사일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럼 다시 돌아가서 하던 일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귀농을 선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푸른 밭에서 커왔다. 죽어도 이 풀밭에서 죽겠다는 각오다. 농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이곳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집념이 모여야 귀농귀촌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농촌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새로운 농업의 역사를 써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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