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재앙(財物災殃)
재물은 재앙을 불러온다.
財 : 재물 재(貝/3)
物 : 물건 물(牛/4)
災 : 재앙 재(火/3)
殃 : 재앙 앙(歹/5)
출전 : 장지연(張志淵)의 일사유사(逸士遺事)
어머니의 위대함은 역사를 통해 널리 인지(認知)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맹자의 어머니, 주(周)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 무왕의 어머니인 태사(太?), 조선의 신사임당(申師任堂)등 훌륭한 어머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조선후기 순조(純祖)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文臣) 김학성(金學性) 어머니의 자식 교육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어린 두 형제의 글 읽는 소리가 집안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두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삯바느질을 끝내야 저녁 양식을 살 수 있었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자식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손놀림을 바삐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당 한 쪽에서 낙숫물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싶어 가보니 언제부터 묻혀 있는지 모를 항아리가 장맛비에 쓸려 윗부분이 조금은 뾰족이 창밖으로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이게 무슨 항아리인가 싶어 뚜껑을 열어보니 항아리 속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백은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한 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는 이가 없는가를 확인하고 황급히 뚜껑을 닫고 흙으로 깊이 파묻었다.
단단히 파묻었건만 그 후로도 며칠 동안 황금 묻힌 곳이 신경이 쓰였다. 안되겠구나 싶어 어머니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 당시 김학성의 집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다.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상황이었다.
자식들은 한참 크는데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은덩이만 있으면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식은 물론이고 자신도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잠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은덩어리 항아리를 다시 파묻었던 것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장성한 김학성(金學性)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가게 되고 가정 형편도 차차 나아졌다. 죽음이 가까운 어느 날 어머니는 오라버니와 두 아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두 아들이 "그때 왜 그 은항아리를 취하지 않았습니까?"고 묻자, "재(財)는 곧 재(災)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무고히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뜻밖의 재앙(災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어릴 적부터 안일(安逸)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만약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지 않으면 어찌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스스로 단념한 것이다.
지금 집에 저축된 약간의 재물은 모두 나의 열손가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창졸간에 눈앞에 닥친 재물과는 비할 것이 아니니라"고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많이 배웠거나 유능한 어머니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바른 판단과 어진 마음으로 노력 없이 생긴 재물은 재앙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았음으로 두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운 가장 위대한 이름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돈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집에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긴다면 자식들은 분명히 공부를 게을리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상 훌륭한 어머니들은 황금보다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요즈음 시대를 황금만능(黃金萬能)시대라고 한다. 황금의 위력은 죄 지은 자가 죄 없이 되고(有錢無罪), 죄 없는 자가 죄인으로 둔갑(無錢有罪)하는 희한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천리(天理), 인륜(人倫)까지도 황금에 밀려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悖倫)은 물론 형제끼리 다투고, 친구와 멀어지고, 부부가 이혼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黃金滿籯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不如敎子一藝.
황금을 대광주리 가득 물려주는 것보다 자식에게 경서(經書)을 공부시키는 것이 낫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보다 기술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이 낫다.
중국의 한서(漢書)에 있는 말로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보인다. 특히 권력과 가까이 있어 구린 돈 탐 내거나 부동산 투기에 열 올리는 분들이 경계(警戒)해야 할 덕목(德目)이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
(자식을 가르쳐라)
漢書云,
黃金滿籝,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
한서에서 말하였다. "황금이 상자에 가득하다고 해도 자식에게 한 권의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자식에게 천금의 돈을 물려준다고 해도 자식에게 한 가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한서(漢書)는 중국 역대 역사서 중에서 '사기'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정사(正史)로 불릴 만큼 중요한 책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기'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임금, 순(舜)임금 즉 오제(五帝)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武帝) 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통사(通史) 형식의 역사서인 반면,
'한서'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부터 '왕망의 난'으로 전한(前漢)이 멸망하기까지 12대 23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왕조사(王朝史)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서를 저술한 사람은 반고(班固)이다. 그는 사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한나라의 역사를 집필하고자 했던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받들어 나이 23세 때부터 거의 30여 년 동안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12제기(帝紀), 8표(表), 10지(志), 70열전(列傳) 전체 100권으로 이루어진 한서를 완성했다.
여기'명심보감'의 엮은 이가 인용하고 있는 경구는 한서의 70열전 가운데 위현전(韋賢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위현전의 주인공 위현은 무제, 소제(昭帝), 선제(宣帝) 때 활동한 저명한 학자이자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승상(丞相)의 자리에까지 오른 정치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오직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전력을 쏟았던 위현은 일찍부터 유가의 경전 연구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특히 그는 '위씨(韋氏)의 학문'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독자적인 학술체계를 세워서 세상 사람들로 부터 '추노대유(鄒魯大儒; 추노 지방의 대 유학자)'라고 불리며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명성 덕분에 무제 때에는 조정에서 특별히 그를 초청해 오경박사(五經博士)로 삼았다.
또한 소제 때에는 황제의 스승이 되었고, 선제 때에는 이미 70세가 넘은 고령이었음에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승상의 관직에까지 올랐다.
더욱이 위현은 시쳇말로 자식농사를 잘 지은 사람으로도 크게 이름을 날렸다. 그의 아들 네 명 가운데 큰아들 위방산은 지방 현령, 둘째 위굉은 동해태수, 셋째 아들 위순은 유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넷째 아들 위현성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또 다시 승상의 지위에 올랐다. 이 덕분에 위현의 집안은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승상을 배출하는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위현 자신은 물론 네 아들이 학자로서는 물론이고 정치가로서도 최고의 명성과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위현이 스스로 황금과 같은 재물보다 한 권의 경서와 같은 지식과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 자식들을 위해 훨씬 더 낫다고 여기고 힘써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위현과 그 자손들을 통해 "자식들에게 상자 가득 황금을 물려주는 것이 한 권의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遺子黃金滿贏, 不如敎子一經)"는 가르침을 깨우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