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가다
기행중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문장가 허균
남들이야 혈뜯든 꾸짖든 내버려두고, 자기 나름대로 기뻐하며 17 즐거워하네
-성옹송-
한글소설의 효시 <홍길동전>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 는 허균( 1569~1618)은 소설뿐만 아니라 한 시, 비평, 논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학 문을 이룩하며, 중국까지 이름을 날렸던 조선의 대문 장가였다.
<성소부부고>
■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 Genius Poetess Heo Nanseolheon
(1563 ~1589)
천부적인 시재( Poetry Prodigy)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의 한 사람인 허난설헌은 1563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출중하였으며 아명을 초희라고 했다.
허난설헌은 화담 서경덕의 문인인 허엽의 딸이자, 미암 유희춘의 문인인 허성과 허봉의 동생이며, 유성룡과 이달에게 문장과 시를 배운 허균의 누이였다. 이런 가정환경과 문학교육이 허난설헌 시문학의 뿌리가 되었다.
허난설헌이 어린 나이에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천재성을 유감 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중국 <양조평양록>, 김만중의 <서포만필>에서도 허난설헌의 재능을 격찬한 바 있으며, 오빠 허봉도 "난설헌의 시는 배워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 라고 할 만큼 허난설헌의 재주가 천부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허난 설헌과 허균의 학통
사람들은 총명하고 민첩하기가 무리에 뛰어났다고 여겼으며 나도 역시 스스로 자랑할 뿐 .(중략).. 중형이 비로소 고문을 가르쳐 주었으며 뒤에 문장은 서애 유성룡 정승에게 배웠고 시는 손곡 이달에게서 배우고야. <이생에게 답한 글 (1609)>
허난설헌과 허균은 조선시대 손꼽히는 도가품의 학자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던 아버지 허엽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시절부터 장차 훌륭한 대문장가로서의 소질을 발휘했던 허난설헌과 허균, 이들 남매는 오빠이자 형이었 던 허봉에게 학문적 영향을 받았다. 당시 여성으로서 학문을 하지 못했던 허난설헌은 오빠 허봉의 도움으로 배울 수 있었고, 허균은 둘째 형 허봉에게 고문을 익혔으며, 뒤에 영남학파의 거두 유성룡에게 글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스승은 서얼 출신으로 삼당파 시인 의 한 사람인 이달이었다 이들 남매는 신분제도의 모순과 유교사회의 행동규범을 비판했던 손곡 이달의 사상을 고스란히 체득하고 있 었다.
■ 정한의 낙화
허난설헌은 15세 무렵에 안동김씨 성립과 혼인하였다. 남편은 문 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나갔으나 풍류를 즐겼으며, 고부간의 갈등도 심하였고, 사 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배 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삶의 의욕을 잃은 허난설헌은 끝내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다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은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 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의 세계를 이룩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사>, <빈녀음> <곡자>,<망선 <원부사><봉선화> 등이있으며, 유고집으로 <난설헌집>있다
# #시문학
첫댓글 허난설헌에 대해 단편적으로 겨우 인지했던 토막 상식이 전부이었는데, 다양한 접근 내용을 통해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