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채소를 돌보러
가을이 시작된 구월 첫날은 목요일이었다. 어제 우리 지역은 가을을 재촉할 비가 내려 야외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 그러함에도 새벽 창원천 천변을 산책하고 낮에는 집에서 책을 펼쳐 읽었다. 새날이 밝아온 아침은 비가 그쳐 텃밭에 심어둔 가을 푸성귀들의 생육 상태가 궁금했다. 배낭에는 갓 싹을 틔운 채소의 웃거름에 해당할 비료를 챙겨 날이 덜 밝아온 여명에 현관을 나섰다.
외등이 켜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가로수길로 접어드니 도심이지만 밤새 울어댔을 귀뚜라미 소리가 새벽까지 들렸다. 옛 도지사 관사 앞의 찻집 거리는 손님이 붐볐을 초저녁과 달리 새벽이니 인적도 차량도 없어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경남교육청 사잇길에서 도청 광장으로 향하니 동녘 하늘은 날이 밝아오는 즈음의 구름 색깔이 달라 보였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 조짐을 보였다.
법원 청사를 지난 창원축구센터에 이르니 내게는 선망의 군상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근처 단독주택과 아파트단지에 사는 중년 여성들로 당국에서 실시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이었다. 주말과 비 오는 날이 아니라면 축구센터 공원에서 전문가를 초빙한 에어로빅을 지도했는데 주민들의 참여도 높고 열기가 뜨거워 지나가는 이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축구센터 체육관 곁의 비탈에서 텃밭으로 향하니 나보다 먼저 나온 한 노인이 풋고추를 따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여산농장은 텃밭 구역에서 비교적 높은 지대라 그 할아버지의 텃밭을 지나쳐 경작지에 닿았다. 작업에 들기 전 배낭을 벗어 놓고 신발부터 바꾸어 신었다. 텃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운동화에 흙이 묻어 사후에 정리가 어려워 간편한 신발로 바꾸어 신고 작업을 한다.
채소를 심어둔 이랑을 살피니 흙이 비에 젖어 적은 양이긴 하지만 잡초의 김을 매줄 형편이 못 되었다. 젖은 땅에 호미질로 파 일구면 진흙처럼 엉켜 작물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다. 이미 파종 전후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쫓는 약을 두 차례 뿌려 주었는데 이번에 한 번 더 뿌려야 할 듯했다. 이와 함께 싹이 튼 이후 성장에 도움이 될 영양제를 뿌려 주려고 집에서부터 준비해 갔더랬다.
가을 푸성귀를 심어둔 이랑을 둘러본 뒤 농막에서 낫을 찾아 들고 고구마밭으로 갔다. 고구마는 지난봄 가뭄이 심해 유월 중순에 고구마순을 심었지만 생육이 순조로워 한 달쯤 지나면 캐도 될듯했다. 고구마밭 주변 호박넝쿨을 돌려 앉히고 환삼덩굴을 비롯한 잡초를 잘라 정리했다. 수확을 마친 동부 넝쿨도 잘라 놓고 시든 오이 넝쿨과 토마토 잎줄기를 자르고 지지대도 뽑아 치웠다.
이후 아까 봐둔 채소 이랑으로 가서 집에서 준비해 간 영양제를 무와 배추 이랑에 뿌렸다. 밑거름을 주긴 해도 싹이 튼 이후 웃거름도 살짝 주어 놓아야 생육이 빨라질 듯했다. 웃거름은 비가 오고 난 뒤나 비가 예보된 전날에 뿌려 줌이 적기이다. 웃거름과 함께 해충을 쫓는 가루약도 같이 뿌렸다. 약은 이번만 뿌려 주고 이후는 잎줄기가 굵어져 벌레가 붙어도 감당이 되지 싶었다.
채소밭을 돌보고 난 뒤 풋고추나 호박잎을 따려다가 마음을 거두었다. 이미 우리 집에는 몇 가지 찬거리가 확보되어 있어 밀릴까 봐서였다. 호박넝쿨에서는 애호박이 달려 있었는데 다음에 따가도 될 듯했다. 밭 가장자리 채소밭의 밑거름으로 쓰고 남은 두엄 포대가 있어 노끈으로 묶어 농막으로 옮겨 놓았다. 며칠 뒤 대형 태풍이 우리나라로 향한다는데 비설거지를 한 셈이었다.
텃밭을 돌보고 농로를 따라 내려가니 한 중년 사내가 모종을 심어둔 배추밭을 돌보고 있었는데 김장용으로 쓸 배추를 마음먹고 키우는 듯했다. 농장이 끝난 체육관에 이르니 아까 에어로빅을 하러 모였던 여성들은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 아무도 없었다. 날씨가 선선해서 축구센터 주변 산책로를 한 바퀴 거닐고 새벽에 지나왔던 도청 광장을 거쳐 도심 거리를 따라 집에까지 걸어왔다. 2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