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10년 부터 1945년 까지 한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해방후 1963년까지 공식적인 외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방법 말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는 거래를 해왔습니다. 1961년 5.16쿠데타 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입니다. 이러하게 형성된 인맥을 만주인맥이라 합니다. 이 만주인맥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세지마 류조(瀬島龍三),고다마 요시오,정일권,백선엽,이주일,이한림,최규하,황종률,고재필,이선근,시이나 에쓰사부로,이스이 마쓰지로,야쓰이 가즈오,오노 반보쿠 등등 이 있습니다. 이 만주인맥은 박정희가 모든 정책에 영향을 줍니다. 1961년 11월 최고회의 의장시절 만주군관학교 교장,동기생들을 만나고 1963년 굴욕적인 한일회담, 그리고 1963년 12월 대통령 취임식 경축사절로 방한할 예정이었던 오노 반보쿠가 일본 현지 기자회견에서 "나와 박대통령과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와 같은 것이어서 아들의 경사스런 날에 아버지가 가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 이라고 했습니다. 이 친한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미국을 정점으로한 동북아체제 형성에 복무하고 있었고, 둘째, 반공주의와 우익적 성향이 두드러졌으며, 셋째는 정치 경제적 이해가 서로 일치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부산적기론'(부산이 적화(赤化)되면 일본의 적화도 멀지 않다, 위험하다) 등의 양국 의존관계는 일본측에는 박 정권 경제원조를, 박 정권에게는 일본의 각종 원조의 필요성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삼성그룹은 양국의 인맥들을 이용, 차관도 받고 금수품을 밀수하여 폭리를 챙기기도 했다.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은 이 와중에서 불거진 것이었습니다. 또한 종합상사를 통한 수출전략은 이토추 상사의 회장인 세지마 류조 가 조언해줬습니다. 또한 선거떄 마다 박정희를 도와준 쌀은 일본에서 지원해준것이었는데 원래는 반출불가 품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한파의 영항으로 반출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푸대갈이가 등장합니다. 또 수출할때마다 대일본무역적자가 더욱더 커집니다.
이 무역적자는 IMF이후에야 해소됩니다. 참고로 아베신조는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 입니다. 이렇듯 아직도 친한파는 양국에서 기세등등합니다.
첫댓글 볼테르님 좋은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