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탁월한 문명비평가
2006년 베네수엘라에서는 1936년 개봉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가 흥행영화로 떠올랐다.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우고 차베스 정부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홍보에 이 영화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모던 타임스>에서 공장 노동자로 등장하는 채플린은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사를 죄는 일을 한다. 지독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실려간다. 공장 강당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한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은 채플린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본주의 구조에 묶여 있는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재인식했다. 베네수엘라 사용자단체연합은 이 영화가 자본가를 착취자로 묘사하고 있다며 정부에 상영 금지를 요청했다.
대공황 이후 70여년 만에 전 지구적 경제위기가 찾아든 2008년에 <모던 타임스>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하는 일관작업 방식을 가리키는 ‘포드주의(Fordism)’를 풍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포드주의는 위기에 빠진 미국 자동차업체 ‘빅3’ 중 하나인 포드에서 일관작업 방식을 처음 도입해 붙여진 이름이다. <모던 타임스>는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는 ‘모던(현대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감독·제작·각본·주연을 도맡은 채플린도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인을 넘어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에 메스를 들이댄 탁월한 문명 비평가였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 독일의 히틀러를 닮은 독재자 역을 소화하며 파시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살인광 시대>(1947)에서는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공격하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살인이 공인되는 현실을 묘파했다. 채플린은 그러나 이 작품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미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채플린 파일’을 만들고 있던 터였다. 결국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52년 스위스로 떠난 그는 20년 뒤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하러 올 때까지 미국 땅을 밟지 못했다.
77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날, 채플린은 스위스 브베 인근의 코르시에에서 88년간의 생을 마쳤다. 54세 때 결혼한 네번째 아내 우나 오닐(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김민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