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코린토 1서 7장 25~31절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늘 독서 2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읽으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쉽게 갈라서려고 하는 부부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밀린 숙제를 먼저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냉담하는 아이들을 방문해야 하는 개인적인 숙제가 있거든요.
그래서 몇 가정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음을 반복해서 읽는데..
문득 ‘그대는 ..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씀과 함께 몇 가지 스쳐지나간 모습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친척들과 갈라서려 했던 모습(?)입니다.
이 번 추석에 큰 집이나 외가에 가지 않았었습니다.
식구들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했는데요.
저녁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큰 집에 갔다 올까..’ 하셨는데,
제가 조금 피곤한 기색을 했더니 어머니도 가지 말자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이 없는데다가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불편합니다.
차라리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과는 조금 할 이야기라도 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아니면 몇 년 만에 만나는 친척과는 할 이야기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면 불편하기도 하고, 찾아가는 것도 귀찮아서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냥 명절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녁에도 막내 이모가 집에 온다고 했는데요. 슬쩍 자리를 피했습니다.^^;
피곤해서 목욕탕 갔다 온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은근히 마음속에 ‘이제 친척들 보지 말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신부님이 오늘 강론에 친척들끼리 모여라~’ 라고 하셨다고..
오늘 독서 말씀도 저에게는 이렇게 들리는 거 같습니다.
‘친척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의 편안함을 생각하며 끊어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묶여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친구와 갈라서려 했던 모습입니다.
성당에 같이 다니던 동네 친구가 있습니다.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명절이면 올라옵니다.
그럼 제가 전화를 할 때도 있었고, 그 친구가 전화를 할 때도 있었는데요.
몇 가지 서운한 일이 있어서 이 번에 전화가 왔었는데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몇 번이나 펑크 내는 친구랑 만나서 뭐해..’
하면서 조금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조금 후회가 되네요.
어린 시절부터 그 친구와 묶여 있었고 여러 가지 추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너무 쉽게 잘라버리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그 묶여 있는 관계가 주님께 나아가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되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일 텐데,
‘그런 거 없어도 주님의 일만 하면 되지..’ 했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바오로 사도는 그런 생각을 경계하고 말렸던 거 같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일에만 헌신하고 싶다고 지금의 관계를 끊어내고 갈라서려 하기 보다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돌보며 함께 갈 수 있도록 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떤 형제님이 혼자 사신다.
그래서 내가 “형제님, 여자 혼자는 괜찮은데 남자 혼자 계시니
조금 불쌍해 보이네요..”
그랬더니 형제님이 조그맣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불쌍하게 생긴 신부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어색하네요...”^^;
첫댓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돌보며 함께 갈 수 있도록 해 봅시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