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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상앙(商鞅)의 말로 (6)
순서상 소진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소진(蘇秦)은 오랜간만에 고향인 낙양(洛陽)으로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그 사이 과부가 된 형수, 그리고 소대(蘇代), 소여(蘇厲) 두 동생이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며칠 집에서 쉰 소진(蘇秦)은 하루빨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노모의 방을 찾아가 청했다.
"소자는 귀곡(鬼谷) 선생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천하 열국을 돌아다니며 벼슬 자리를 구할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비가 필요한데, 집과 살림살이를 팔아 돈을 마련할까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소진의 말에 어머니는 물론 형수, 동생들까지 나서 만류했다.
"몇 년 공부한 것으로 출세할 생각을 하다니 네가 너무 세상을 우습게 아는구나. 공연히 팔자에 없는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바라다가 집안 식구들까지 굶길까 염려스럽다. 헛된 꿈 꾸지 말고 우리와 함께 여기서 농사나 지으며 지내라."
"형님이 유세술(遊說術)에 통달했다면 가까운 주(周)나라 왕부터 설득해 벼슬을 얻어보십시오. 왜 굳이 머나먼 타국으로 나가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 하십니까?"
온 집안 식구가 반대하는 통에 소진(蘇秦)은 어쩔 수 없이 주나라 왕궁을 찾아갔다.
당시 주나라 왕은 주현왕(周顯王)이었다.
소진은 어렵사리 주현왕을 만나 부국강병에 대해 일장 연설을 펼쳤다.
그러나 주현왕(周顯王)은 하품을 해대며 소진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선 가서 기다리시오. 기회를 보아 다시 그대를 부르겠소."
소진(蘇秦)은 집으로 돌아와 주현왕의 부름을 기다렸으나 일 년이 지나도록 왕궁에서는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실망한 소진은 새로이 각오를 다졌다.
'주(周)나라는 유명무실하다. 내 어찌 망해가는 나라에 연연해 할 것인가.'
그는 어머니와 형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과 살림살이를 팔아 황금 1백 일(鎰)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그 돈으로 가장 좋은 흑초구(黑貂裘)를 한 벌 사서 입고, 좋은 수레 한 대를 구입하여 마부까지 고용한 후 유유히 고향을 떠났다.
그 후 소진(蘇秦)은 천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遊說)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임금이나 재상은 없었다.
결국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가지 소득이 있다면 각 나라의 산천 지형과 풍토를 낱낱이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진(秦)나라뿐이로구나.'
그는 이제는 낡아빠진 수레를 타고 서쪽 진나라를 향했다.
그무렵 진(秦)나라는 상앙이 죽은 직후였다.
잘하면 상앙을 대신하여 자신을 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다.
함양에 당도한 소진(蘇秦)은 궁문 앞으로 가 대뜸 진혜문왕을 뵙겠다고 청했다.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소진의 당돌함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궁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선생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셨으니, 장차 무엇으로써 과인을 가르치시렵니까?"
소진(蘇秦)이 대답했다.
"왕께서는 천하를 호령할 웅지(雄志)를 품고 계십니다. 신(臣)이 왕의 웅지를 실현시켜 드리겠습니다."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소."
"진(秦)나라는 동쪽으로 함곡관과 황하가 있고, 서쪽으로는 한중(漢中)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파(巴)와 촉(蜀)이 있고, 북쪽으로는 호학(胡貉)이 있으니 이것들은 모두 외국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천연요새입니다."
"또 안으로는 천 리의 비옥한 평원이 있으며 강맹하기 짝이 없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왕께서는 이런 보물들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만일 왕께서 신(臣)을 재상으로 삼아 병사들에게 병법을 가르쳐 천하를 병탄해 나간다면 왕께서 어찌 제왕(帝王)의 칭호를 듣지 않을 것이며, 천하를 지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능히 이 소진(蘇秦)에게 계책을 물으시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어려서부터 상앙을 보고 자라온 진혜문왕이었다.
누구보다도 세객(說客)을 싫어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모름지기 새는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능히 하늘을 날 수 없소. 정치(政治)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오. 선생의 말은 너무 높아서 과인으로서는 따르기 어렵소. 과인은 당분간 내정에 힘을 쏟을 작정이오. 우리 나라가 좀더 안정된 후 다시 의논합시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진(秦)나라로 건너왔던 소진(蘇秦)은 진혜문왕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자 크게 낙심했다.
그 뒤에도 여러차례 알현(謁見)을 청하고 고관대작에 줄을 대었으나 끝내 그는 왕궁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아아, 어디로 갈 것인가.'
갈 곳을 잃은 소진(蘇秦)은 당장 허기를 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입고 있던 흑초구(黑貂裘)를 팔아 밥을 사먹었고, 낡아빠진 수레를 팔아 여관비를 마련했다.
그의 발걸음은 어쩔 수 없이 한 곳으로 향했다.
고향인 낙양(洛陽)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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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