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장 상앙(商鞅)의 말로 (7)
"이 놈, 집까지 팔아먹고 가더니 꼴 좋구나.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단 말이냐?"
고향인 낙양의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진(蘇秦)이 가족들로부터 들은 첫 말이었다.
어머니는 몇 날 며칠 욕설을 퍼부었고, 형수는 눈을 흘기며 빈정거렸다.
심지어는 아내마저 베틀 앞에 앉아 소진(蘇秦)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너무 심한 박대였다.
소진(蘇秦)은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참다 못해 형수에게 애원했다.
"형수님, 배가 몹시 고프니 밥 좀 지어 주시오."
"땔나무가 없어서 밥을 지을 수가 없소."
형수는 싸늘히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소진(蘇秦)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렸다.
"이 한 몸 천해지니 아내도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 형수도 시동생으로 대하지 않고, 어머니도 자식으로 보지 않는구나. 아, 이것이 사람인가."
소진은 풀이 죽어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그날그날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도 심심하여 책을 넣어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이것저것 뒤지는 중에 한 묶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지난날 산을 떠날 때 귀곡(鬼谷) 선생이 친히 준 <음부경(陰符經)> 이었다.
당시 귀곡 선생이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 너희들이 이것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 깊은 뜻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늘 읽으면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소진(蘇秦)의 눈에 광채가 일었다.
'그렇구나. 선생께서는 오늘날 내가 이리 될 것을 아시고 이 책을 주신 것이로구나.'
그날부터 소진(蘇秦)은 문을 닫아걸고 본격적으로 <음부경(陰符經)>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그 안에 담긴 오의(奧義)를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잠이 오면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찔렀다.
피가 흘러 방바닥을 적셔도 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여가 지났다.
하루는 그의 머릿속으로 천하대세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각 나라의 움직임이 손금처럼 들여다보였다.
'아아.'
소진(蘇秦)은 황홀경에 빠졌다.
미친 사람처럼 방안을 왔다갔다 하며 기쁨을 억눌렀다.
'이제 자신 있다.'
그는 동생 소대(蘇代)와 소여(蘇厲)를 불렀다.
"나는 지금에야 비로소 공부를 성취했다. 머지않아 나는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릴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형을 도와다오."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형님을 도울 수 있습니까?"
"한 번만 더 여비를 마련해다오. 나는 다시 한 번 천하 열국을 주유하며 내 뜻을 펼칠 작정이다. 내가 출세하는 날 너희들을 반드시 이끌어주겠다. 그때를 대비하여 너희들도 이 <음부경(陰符經)> 을 익혀 두어라."
소대(蘇代)와 소여(蘇厲)는 형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식구들 몰래 황금을 마련해 주었다.
이에 소진(蘇秦)은 집안 식구들과 작별하고 제2차로 열국 유세의 길을 떠났다.
낙양성을 나온 소진(蘇秦)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느 나라부터 갈 것인가?'
그는 생각했다.
'지금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칠웅(七雄) 중 가장 강한 나라는 진(秦)나라다. 내가 진나라를 돕기만 하면 능히 제업(帝業)을 성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소진(蘇秦)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진혜문왕의 성격으로 볼 때 자신을 써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때 그의 머릿속을 스친 것이 바로 '합종(合縱)'이었다.
'그렇다. 진(秦)나라를 배척시키고 나머지 여섯 나라를 하나로 단결시켜 대항하면 진나라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중원으로 진출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상징하는 말 중 하나인 '합종(合縱)' 이란 말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소진(蘇秦)은 낙양에서 가장 가까운 조나라를 향해 수레를 몰았다.
조(趙)나라를 필두로 위ㆍ한ㆍ제ㆍ초 연나라를 차례대로 엮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 무렵, 조나라 수도는 한단(邯鄲).
한때 위(魏)나라 방연의 침공을 받고 빼앗긴 적이 있으나 곧 수복했다.
전국시대에 들어와 발전한 신흥 도시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진의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그 무렵 조(趙)나라 임금은 조숙후(趙肅侯)였고, 재상은 그 동생인 봉양군(奉陽君)이었다.
그런데 재상 봉양군(奉陽君)은 진혜문왕처럼 유세객을 무척 싫어했다.
갖은 말로 설득했으나 봉양군은 아예 소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놈!'
소진(蘇秦)은 끝내 봉양군의 닫힌 귀를 열지 못하고 조(趙)나라를 떠나야 했다.
그는 진(秦)나라에 가까이 있는 나라부터 설득할 계획을 바꾸어 가장 약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부터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 연(燕)나라로 가자.'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
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