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통령의 품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대통령각하!
아들이 전방부대에서
총기사고로 죽어갑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병사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정이었는데
대통령은 황급히
군용기를 타고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세부 상공에서
비행기 사고로 운명했다는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라몬 막사이사이
Ramon Magsaysay
(1907-1957)는
아직도
필리핀 국민들의
영웅이며 우상입니다.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했을 때
그는 자원 입대하였습니다.
비록
전쟁에서는 졌지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그는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막사이사이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는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1946년
그가 처음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옛날 게릴라 부대
동료 대원들이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보태 쓰라면서
성금을 보내왔지만
그는 "호의는
좋으나 이는 결코
나를 돕는 길이 아니다"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퀴리노 대통령이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그는 암살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당 지도자들과
담판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공산당 조직을
와해시켰습니다.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패한 군인들을
법대로 처벌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직과 헌신으로
나라에 봉사하는
군인들에게는
보상을 충분히 하고
군을 정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공산 게릴라 단체인
후크단도 대대적으로
토벌하였습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
관용차인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이용하지 않고
중고차를 빌려서 타고
입장할 정도로 검소했습니다.
반대파들이 "무식하다."고
비판하면
"나는 지식으로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혜와 인격으로
정치를 합니다." 라고 하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거처하는 말라카냥 궁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여 서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찾아와
그들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게
조치하였습니다.
또한
대통령 임기 중에
그는 그의 가족 및
측근들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전임자들과 달리 도로,
교량 및 건물 등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대통령 신분이면서도
반대파 인사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애국심에
호소하여 설득하였습니다.
또 대화로 설득하여
현안 문제점들을
풀어 나갔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을 시도하였고,
공직사회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공직자
재산공개를 과감하게
시행하였습니다.
막사이사이의
영도력으로
당시의 필리핀은
아시아 2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사고로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필리핀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의
경제선진 대국 자리를
내어주고
계속 추락하고 있습니다.
카페 게시글
예쁜글&감동글
라몬 막사이사이 @
조선의 국모
추천 0
조회 60
23.01.13 11:5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