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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우파 가치 지키면서 혁신 … 중도까지 포용해야 집권 가능 이주영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 인터뷰 약속이 갑자기 당겨졌다. 19일 오후 개헌특위 제1 소위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주영(66)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은 소위원회에 모두 참석한다고 했다. 단임 대통령 대부분 끝이 안 좋아 “소위 논의가 진짜거든요.” 제헌절인 17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뒤 국회 개헌특위도 바빠졌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칠 계획이다. 지난 1월 5일 6개월 시한으로 발족한 개헌특위는 활동 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87년 체제 헌법이 상당히 민주화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죠. 그 5년 단임제 대통령이 무슨 횡포를 많이 부렸다거나 독재·독선이 심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대부분 말로가 안 좋았습니다.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는 2014년 3월 5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40일 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그는 참사 당일인 4월 16일 팽목항으로 바로 내려가 8월 20일까지 169일 동안 현장을 지켰다. 텁수룩한 수염, 장발과 ‘세월호 장관’이라는 별명이 그의 상징이 됐다. “그날 아침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나와 그 소식을 처음 들었거든요. 구조와 수습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인천 해경본부 상황실로 달려갔죠. 거기서 워낙 심각한 상황을 보고받고 오전 11시 바로 해경비행기로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인양을 반대한 일을 꺼내자 이 위원장은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세월호 문제는 안 다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 흘러간 이야기인데… 이미 인양해 미수습자 9명 중 4명 수습하고 5명 남아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 상처가 되살아나게 한다든지, 이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는 “보수 가치 이념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S BOX] 판사 시절 홍준표 대표 이름 바꿔주고 함께 정치 입문 이주영 위원장 부친은 은행원이었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마산상고를 나왔다.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한 이 위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다녔다. 그는 1995년 판사를 그만두고 96년 15대 총선에 출마했다. 그는 청주지법 판사 때 홍준표 검사를 만나 이름을 ‘판(判)표’에서 ‘준(準)표’로 바꿔줬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때는 3김 정당이 지배했다. 신한국당(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자민련(김종필). 새정치국민회의에 따라가지 않은 통합민주당에는 노무현·이철·제정구·원혜영·박계동 의원 등이 있었다. “홍준표하고 제가 의논하면서 그랬죠. ‘참신하고 개혁적인 정당이다. 젊은 의원들이 우리 희망이다.’ 같이 가기로 하고 제가 먼저 입당했습니다. 홍준표는 뒤에 입당하기로 했는데 마음이 바뀌어서 신한국당으로 갔죠.”
이 위원장은 17대 보궐선거를 포함해 16대부터 창원과 창원마산합포에서 5선을 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이주영(63) 해양수산부 장관 - 2014.11.8.조선 外 http://blog.daum.net/chang4624/8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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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나라 -2-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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